강우근의 들꽃이야기
강우근 글.그림 / 메이데이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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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참 예쁘다.
풀꽃도 예쁘다.
이 꽃 저 꽃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

다음에 다시 태어
날 때 꽃이
되고 싶다  

 얼마전 초등학교에 다니는 조카가 나에게 이 노래를 들려 주었다. 섬진강 아이들이 시를 쓰고 백창우님이 노래로 만들었다는 <예쁘지 않은 꽃은 없다>라는 노래였다. 이 노래를 들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흐뭇했는지 모른다.  

세상에 예쁜 꽃은 화원에만 가야 있는 줄 알았던 시절이 있었다.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 있는 꽃들은 주로 놀이감으로 많이 이용하며 자랐다. 그렇게 나도 모르게 들꽃을 무시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었던 듯, 화원에서 파는 예쁘게 자란 꽃들만이 진정한 꽃이라고 생각했었던 어리석은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살다보니 길가에서 사람 손 타지 않고도 잘 자라는 풀들이 기특하게 여겨지게 되었다. 누군가에게 길들여지지 않아도 스스로 뿌리를 내리고, 잎을 키워내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다시 씨를 뿌리는 기특한 풀들이 우리 주변에 많이 살고 있다는 사실에 나도 모르게 감동하고 감탄하게 되었다. 

봄이면 여린 쑥을 뜯어다 쑥버무리나 쑥개떡을 해주시던 엄마, 막내딸이 특별히 좋아한다고 일부러 김장때면 고들빼기 김치를 담가 주시기도 한다. 된장 풀어 끓여 먹던 냉이국은 이제는 우리 아이들도 향이 좋다며 잘들 먹는다. 봄이면 산책길에 나물거리를 뜯는 아주머니들의 부지런한 손놀림에 놀랐었다. 

가을 산길에서 토도독 떨어지는 도토리, 참 많이 주웠었다. 할머니 따라 산길 걸으며 한 바구니 도토리를 주워 집으로 돌아오면 할머니는 맛있는 도토리 묵을 쑤워 주셨었다. 도토리 묵을 만드는 일은 쉽지가 않다. 앙금을 걸러서 그것으로 묵을 쑤는데 불조절을 잘 하지 않으면 다 눌러 붙는다. 열심히 저어 주는 것도 중요하다. 물론 도토리묵 누룽지도 참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가끔 할머니의 도토리묵이 그리워 가끔 사다 먹긴 하지만 역시 그 맛이 아니다. 

우리 아이들 데리고 산책할때면 아이들은 강아지풀을 유난히 좋아한다. 강아지풀의 부드러운 털을 손에 문지르면서 길을 걷곤 한다. 그리고 또 흔하게 볼 수 있는 왕바랭이도 좋아하는데 그것을 뽑아 우산을 만든다며 놀이도 한다. 

언제든 밖에 나가면 만날 수 있는 것들인데 너무 많이 잊혀지고 있던 것들이 아닌가를 생각한다. 이 책을 읽으며 새록새록 추억들이 떠올라서 행복했다. 그래서 한참에 걸려 이 책을 읽었던 것 같다. 매일 매일 조금씩 펼쳐보면서 즐거웠던 순간을 떠올리는 재미를 간직하려고 말이다. 얼마전까지도 아카시아 나무라고 알고 있던 아까시나무의 잎사귀는 사랑 점을 치던 것이 아니었는가 말이다. 생각해보면 그때는 참 순수했던 것 같다. 

기부문화는 가진 자들의 문화이다. 이런 자본의 문화가 노동운동을 갉아먹고 있다. 노동운동 내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무슨 기금 따위를 마련해서 해결하려는 얘기가 있다. 노동문화는 자선이 아니라 연대, 구걸이 아니라 투쟁의 문화다. 노동자도 노예가 아니라 인간이라도 선언하는 것이다. 조용히 자선을 베푸는 것, 그리고 그것을 구걸하는 것이 추해 보이기 시작하면 소리쟁이도 다시 보인다. 소리쟁이는 더러운 곳에서 더 잘 자란다. 똥개천이나 시궁창에서는 크게 무리를 이뤄 쑥쑥 자란다. 똥개천이나 시궁창을 정화하며 쑥쑥 자란다. 잡초들은 구걸하지 않는다. 연대하여 황무지를 숲으로 뒤집는다. 스스로 자라지 못하는 작물이 재배되는 밭에서나 자선과 구걸이 있다. 바람에 흔들리며 소래쟁이 열매가 만들어내는 소리를 들어 보라. 소리쟁이의 잡초 선언이 들리지 않는가. (203쪽)

묵을 만드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도토리 줍는 게 얼마나 재미있는지 아는가? 그걸 아는 사람이 숲을 망가뜨릴까? 그런사람이 책상머리에 앉아 얼마든지 돌아갈 수 있는 길도 지도 위에다 자를 대고 죽죽 그어 도로를 내고 터널을 뚫을 수 있을까? 그 재미를 아는 사람이 나무를 몽땅 베어내고는 골프장을 만들고, 산꼭대기까지 싹싹 밀어버리고는 스키장을 만들 수 있을까? (263쪽) 

들풀 가운데는 봄부터 가을까지 쉬지 않고 꽃 피는 풀들이 제법 많다. 그러나 강한 들풀이라도 겨울엔 씨를 남기고 말라버리거나, 땅속뿌리로 버티거나, 땅바닥에 잎을 붙이고 겨우겨우 겨울을 날 뿐 쉽게 꽃 피지 못한다. 더구나 줄기를 치켜세우고 꽃 피는 건 엄두를 내지 못한다. 그런데 한겨울에조차 꽃을 피우는 풀이 있다. 개쑥갓은 한겨울에도 꽃 핀다. 개쑥갓은 그야말로 일 년 내내 사계절 꽃이 피는 풀이다. 개쑥갓은 손바닥보다 좁은 땅과 햇볕 한 줌만 있으면 길가 빈터나 밭둑, 어디서나 자라나 아무 때나 꽃 피는 풀이다. 매서운 겨울바람 속에서도 줄기를 눕혀 땅을 기지 않는다. 그냥 따위로 줄기를 세우고 싱싱한 푸른 잎까지 달고 꽃 피고 열매 맺고 씨를 날려 보낸다. (359쪽) 

'손바닥보다 좁은 땅과 햇볕 한 줌'만 있어도 살 수 있었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 터무니없이 오른 전세값때문에 한숨을 쉬던 몇 달, 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했다. 들꽃같은 존재인 나는 분명 어딘가에 씨를 흩뿌리고, 뿌리를 내리고 있을테니까 말이다. 쉽게 포기하지 않을테니까 말이다. 

나도 다음에 다시 태어나면 꽃이 되고 싶다. 

덧붙이자면, 강우근님의 그림(판화)은 정말 인상적인 것들이 많았습니다. 멋진 그림과 함께 생각도 쑤욱 자란 느낌이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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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0-12-22 01:3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리뷰가 참 이뻐요~
꿈섬님의 글들, 좀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근데,이 밤에 도토리묵 먹고 싶어요~ㅠ.ㅠ


꿈꾸는섬 2010-12-22 01:46   좋아요 0 | URL
나무꾼님이 이리 반겨주시니 너무 행복해요.
이렇게 좋은 책을 나무꾼님께 선물로 받았단 생각에 더 가슴 벅차요.^^
다시한번 감사드려요.

근데, 도토리묵, 저도 먹고 싶어요.

읽는내내 정말 많이 행복했어요. 올 겨울 추위 거뜬하게 이겨낼 것 같아요.

알라딘 자주 들어 올 수 있게 노력할게요. 요새 조카들이랑 읽을 책 지도안 정리하고, 엄마들 만나서 할 것 만드느라...핑계가 많아요.ㅎㅎ

마녀고양이 2010-12-22 08: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쑥떡 먹구 싶다...............
그리고 리뷰가 참 이뻐요~2.

꿈섬님, 요즘 슬럼프인가 봐요? 아님 너무 바쁘신가?
그런데 나무꾼님이 자주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할 대사가 아닌듯,, 본인두 띄엄띄엄 오면서 말이죠. 큭큭.

꿈섬님두 이사해야 해요? 많이들 하시네,, 요즘.
저는여, 똑 부러지는 한들한 꽃 말구... 아주 튼튼한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어요. 천년된 나무.. 영기가 있는. 쿄쿄.

꿈꾸는섬 2010-12-22 09:41   좋아요 0 | URL
쑥떡 좋아하시는군요.ㅎㅎ

슬럼프라기보단 게으른거죠. 전 겨울되면 잠을 많이 자요. 아무래도 전생에 겨울잠 자던 동물이었을 것 같아요.ㅎㅎ

저흰 10월에 이사해야하는데, 아무래도 더 오르지 않을까 싶어요. 한번 오른 전세값은 다시 내려가진 않잖아요.ㅠㅠ

나무..좋죠..그 나무에도 꽃은 필거에요.ㅎㅎ

저절로 2010-12-22 10: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오늘 아침 출근길에
다음번엔 다리 튼튼한 나무로 태어나고 싶다고 생각하며 왔는데
님은 꽃으로 태어날거라네요^^
캬~내 나무밑으로 오세요. 잘해드릴게요.

꿈꾸는섬 2010-12-22 11:28   좋아요 0 | URL
ㅎㅎ에파타님도 나무로 태어나고 싶으시군요.ㅎㅎ
좋아요. 에파타님 나무 밑으로 갈게요. 잘해주세요.ㅎㅎ

같은하늘 2010-12-23 17: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너무나 보고싶은 책이예요.
리뷰가 참 이뻐요~~3. ^^;;

꿈꾸는섬 2010-12-23 22:50   좋아요 0 | URL
이 책 너무나 예쁘고 유익한 책이에요.^^
같은하늘님 생일선물로 점찍어 둘까요?

같은하늘 2010-12-24 00:11   좋아요 0 | URL
그때까지 아마 못 기다리고 구입하지 싶어요.ㅎㅎㅎ

꿈꾸는섬 2010-12-24 00:28   좋아요 0 | URL
ㅎㅎ좋은 생각이세요. 전 그럼 다른 것으로...

2010-12-24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읽을 책이 줄을 서 있어서 나오는 비명. 정말 행복한 비명이죠. 책과 친하면 사람에게 소홀해지는 면이 분명 있어요. 저도 그냥 그렇게 떠들고 노느니, 책이나 읽었으면 할 때가 많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