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형제들은 모두 2살 터울이다. 내가 막내이고 내 위로 언니 둘, 오빠가 있다. 내 바로 위의 언니가 2살 많다보니 자라면서 공감대가 많이 비슷했다. 자연히 둘째 언니와 많이 친하게 지낸 편이다. 그래도 결혼해서 각자 살다보니 둘이서 만날 시간이 많지 않았는데 오랜만에 언니와 단둘이 데이트를 하였다.
얼마전 큰언니네서 술 한잔씩 마시고 전에 형부가 부탁하셨던 둘째 언니의 재혼에 관한 얘기를 꺼냈다. (그런 얘긴 막내가 해야한다나 뭐라나.) 여하튼 취중이라 부담없이 얘기를 꺼냈고 언니가 화를 내면 어쩔까 걱정이 조금 되긴 했지만 다행히 화를 내진 않고 웃으며 그런 건 본인이 알아서 하는 거지. 라고만 말하고 집으로 돌아갔다.
어느새 6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대로, 산 사람은 산 사람대로 안쓰러운 게 사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 형부를 그리워하며 살아야 할까를 생각하니 언니가 더 안쓰럽다.
내가 중3 언니가 고1때 함께 다니던 교회에서 언니는 형부를 만났다. 난 그 당시 연애에 대한 관심이 없어서 언니가 형부랑 사귀고 있었던 것도 몰랐다. 다만 어느날부터인가 형부가 눈에 띄게 잘해주긴 했었다. 그때부터 시작한 연애가 스무살이면 끝이 날까 싶었지만 계속 지속되었고 형부가 군대에 간 이후에도 언니는 다른 남자를 만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대문 옆 우편함 속에 형부의 편지가 끊이지 않고 들어 있었던 걸 기억한다. 제일 먼저 집에 돌아오는 나도 그 편지가 기다려질 정도였었다. 제대를 하고 다시 직장을 다니고 그러다 둘이 결혼을 하겠다고 집을 찾아왔던 그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언니와 형부의 데이트에 참 많이 어울려 다녔었다. 성격 쾌활하고 부지런하고 성실한 형부에 대해 어른들도 흡족해 하셨었고, 사위 잘 얻었다는 소리를 참 많이 들었다. 형부 덕분에 조용하게 지내던 우리 가족들이 늘 활기차게 지냈다.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형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젊은 언니가 딸아이 하나 바라보며 무미건조하게 살아가야하는가를 생각하면 가슴이 좀 먹먹해진다.
재혼에 대한 이야기를 쉽게 꺼낼 수 없는 건 그 둘의 관계를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시간도 많이 흘렀으니 언니도 새 가정을 이루고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어제 함께 영화를 보자고 연락이 왔었다. 언니네 집까지 승요차로 40분정도 걸린다. 열심히 달려 간신히 늦지 않은 시간에 당도하여 함께 영화를 보았다. 원래는 줄리아 로버츠가 나오는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를 보고 싶었으나 시간대가 맞지 않아 장진 감독의 <퀴즈왕>을 보았다.

자신을 찾아 나선 여인 줄리아 로버츠, 그녀의 여행을 따라 다녀보고 싶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랑을 만난다는 것만으로도 언니에게 어느정도 자극을 줄 수 있지 않을까를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번엔 내가 이 영화를 보여주기로 했다.
<퀴즈왕>이 별로라는 평이 많다며 재미없으면 어쩌지? 언니가 걱정을 했다. 하지만 장진 감독이 재미없는 영화를 만들리 없다는 확고한 믿음이 있었다. 물론 나는 재미있게 보았다. 작품성 운운하면 물론 별로인 영화일 수 있다. 하지만 실컷 웃을 수 있는 영화였다. 물론 그 웃음 코드가 나와 맞는가하는 것인데 어거지일 수 있는 것들이 있긴 했지만 그것조차도 즐겁게 받아들이며 보았다. 캐릭터마다 나름의 사연이 없는 캐릭터가 없었고 인위적이고 조잡하다고 할 수 있는 것들 조차도 장진이니까하고 받아들였다. 언니와 나는 정말 실컷 웃으며 맘껏 영화를 즐겼다. 물론 무엇이 남았느냐를 묻는다면 작품 곳곳에 숨어 있던 진정성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를 사라지게 하기 위해서 꼭 정답만을 말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인생에는 정답이 없다. 그 어떤 것도 답이 된다.
영화를 보고 밥을 먹었다. 아이들 끝나는 시간 맞추느라 너무 서둘러 먹었다. 그래서 많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하지만 느낄 수는 있었다. 아이는 점점 커가고 언니 스스로 너무 아이에게 매여 있는게 아닌가를 생각한다. 자연 언니는 너무 외롭다는 걸 느낀다. 일주일에 한번 엄마를 찾아가야겠다고 한다. 요새 엄마도 당신이 치매에 걸릴까 걱정이 많으시다. 그런 엄마의 모습이 많이 안쓰러운가보다. 물론 엄마도 중요하다. 하지만 나는 우리 각자 스스로도 중요하단 생각을 한다. 엄마는 엄마 나름의 시간을 만들어야하고 언니는 언니 나름의 시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이다. 그러고나서 함께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니에게 좋은 상대가 생겼으면 좋겠다. 드라마 속 이혼녀들에겐 젊은 연하의 남자들도 잘도 생기던데. 인생이 드라마가 아닌 이상 언니에게 젊은 연하의 남자가 생길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다. 다만 언니를 행복하게 해줄 그 누군가가 있었으면 좋겠다. 재혼까지는 아니더라도 가끔 차 마시고 영화도 보고 술도 한잔씩 할 수 있는 그런 상대가 있었으면 하고 바란다.
언니가 다시 연애를 했으면 좋겠다. 다시 활기차게 생글생글 웃으며 다녔으면 좋겠다. 연애는 그런 것이 아닌가. 사람을 눈이 부시게 아름답게 만드는 마력을 가진 것. 그때의 그 기분들을 다시 느끼며 살아갔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