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최규석 작가의 책 두권이 배달되었다.
역시 좋다. 좋다는 말밖에 무슨 말을 해야할지를 모르겠다. 작가와 완전 똑같은 경험을 하고 자란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언저리 어딘가가 너무도 비슷해서 눈물도 찔끔나고 웃음도 하하 났다.
우리 아버지 어머니가 살았던 그 시절의 이야기가 어느새 어색한 이야기가 되어서 사라져버린 것 같았는데 그것들이 고스란히 담긴 <대한민국 원주민>이 잊혀지지가 않는다. 역사책 귀퉁이에도 기록되지 않을 그런 이야기를 담고 있다. 가족에 대한 작가의 애정이 느껴진다. 마치 내가 내 가족을 생각할때 느끼는 그런 감정처럼 느껴졌다.
<습지생태보고서> 기본 정보없이 덥석 책을 주문했다. 보는내내 웃음이 나왔다. 아이들은 "엄마, 왜? 왜, 웃어?"하고 묻는다. 그땐 그랬지. 라는 생각과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 정겹기도 하고 눈물겹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고 그랬다. 내 주변의 허무한 개그의 몸짓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모습과 너무도 닮았다. 하지만 그런 모습이 너무도 사랑스러운 건 나도 가난을 몸소 겪으며 살아왔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도 물론 풍족하진 않지만 그래도 그때는 왜 그렇게 가난했는지 돌이켜보면 가슴 아픈 기억들이다. 하지만 살아보니 그것도 나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아끼고 또 아끼는게 궁상맞다 싶었던 적도 많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아끼지 않는 것이 오히려 죄라고 생각한다.
신혼초, 남편은 여기저기 불을 켜고 다녔다. 부엌, 화장실, 안방, 작은방, 거실, 난 그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불을 끄고 다녔다. 남편은 내게 유난스럽다고 했었지만 지금은 전깃불 하나 아깝게 켜놓는 걸 남편이 오히려 못 보고 다닌다. 아이들도 마찬가지, 화장실 불 끄기, 선풍기 끄기, TV끄기, 아이들조차도 열심이다. 수도물 쓰기도 마찬가지, 그런데 우리 현수가 점점 자라 마음대로 돌아다니기 시작하면서 세면대의 수돗물을 마구 켜놓고 돌아다닌다. 스위치에 손이 닿기 시작하자 방의 불을 켜고 끄고를 반복하며 노는 현수에겐 아직 말이 통하지 않는다. 현수에겐 좀 더 시간이 필요한 듯 하다.
지금 자라는 우리 아이들에게는 이해가 가지 않는 이야기들이 될 수도 있겠단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살아왔었다는 걸 아이들도 알아갔으면 좋겠단 생각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