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태 책을 사용한다고 생각해본적이 없어요. 단지 읽는 것이라고만 생각해왔었거든요. 그런데 책을 사용한다는 말에 공감이 되네요. 되돌아 생각해보니 전 책을 읽었던 건만이 아니었어요. 책을 지금까지 잘 사용하고 있었던 거지요. 

제가 책을 사용하기 시작했던 건 한글을 깨치기 시작한 이후부터였던 것 같아요. 빈집에 홀로 남아 시간을 보내기에 가장 좋은 것이 책이었으니까요. 4남매중 유독 책을 좋아하는 것도 어린시절의 외로움을 함께 보낸 친구였기에 가능했던 것 같아요. 없는 돈에 책 판매원에게 할부로 책을 구입해주셨던 엄마 덕에 혼자 놀아야했던 시간들을 책과 함께 보낼 수 있었지요. 언니 오빠가 학교에 가고 어른들도 집을 비우고나면 텅빈 집 마루에 앉아 책장에 꽂혀 있던 책들을 한권씩 한권씩 빼내어 읽었지요. 그렇게 책을 읽고 내 마음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거에요. 글씨를 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책을 읽고 난 뒤의 생각이나 느낌을 간략하게 메모하며 일기를 써내려갔었지요. 매일 같은 책을 반복적으로 읽어도 늘 재미있고 신나고 즐거웠었지요. 형편이 어렵다는 걸 알았기에 다른 갖고 싶은 것들에 욕심 내본적이 별로 없었어요. 그래도 학교 다니면서는 책 읽고 독후감 써야하는 것들의 책은 꼭 사달라고 졸랐었어요. 그럼 엄마는 힘이 드셔도 책은 꼭 사주셨지요. 그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 생각하니 엄마가 그렇게 해주시 않았다면 내가 지금도 책을 좋아할 수 있었을까 싶기도 해요. 

중학교에 들어가고 외로움을 달래는 방법이 친구를 사귀는 것으로 바뀌었지요. 이때 친하게 지내던 친구네 집엔 세계 문학 전집이 책장에 꽂혀 있었죠. 그 친구네 집에서 빌려본 책들이 지금도 아련하게 생각이 나요. 제인에어, 폭풍의 언덕, 주홍글씨, 테스, 전쟁과 평화....등등 친구를 사귄게 꼭 책을 빌려 보려고 그랬던 것만 같아요. 물론 고등학교때도 책이 많은 집 아이들과 친하게 지냈죠. 쉽게 빌려 볼 수 있었잖아요. 제가 이때 도서관 이용법을 알았다면 정말 좋았을텐데라는 생각을 해요. 도서관에서 책을 빌려보면 좋다는 걸 다 크고 나서야 알게 되었지요. 

그리고 친구들과 버스를 타고 멀리 나갈 수 있는 용기가 생기기 시작하면서부터 지금은 사라진 종로서적을 주말마다 다녔었죠. 종로서적에 나가서 책을 읽고 돈이 생기면 한권씩 사서 집으로 돌아올때의 뿌듯함은 지금도 잊혀지지가 않아요. 요즘도 가끔 종로서적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들이 떠올라요. 

내가 돈을 벌기 시작한 이후 매달 월급을 타는 날 서점으로 달려가 책을 사기 시작했었죠. 매일 출근하는 버스, 지하철에서 읽는 건 물론이고 집에 돌아와서도 책을 놓질 않았어요. 책이 내 곁에 없었다면 아마도 피폐한 인생을 살고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드네요. 주로 읽던 책들은 소설이나 시이지만 가끔 잠이 오지 않는날엔 에세이집을 읽으며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잠자리에 들기도 했죠. 책은 외로움을 달래주는데도 좋았지만 머리가 복잡하고 심란한 날에도 책은 마음을 안정시켜주기도 하지요.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낳고나서는 내가 읽고 싶은 책보다는 아이들을 위한 읽는 책들이 더 많아졌고, 지금은 오히려 아이들 책을 읽으며 내 어린 시절의 2%부족했던 책읽기의 욕구를 채우고 있지요. 요즘은 어쩜 그리 재미난 책들이 많이 있는지 모르겠어요. 내게 가장 좋은 친구였던 책은 우리 아이들에겐 최고의 놀이감이 되었고 심심할때면 책을 읽으며 무료함을 달래고 잠을 자기 전에도 아이들에게 편안한 잠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책을 읽어주지요. 가끔 일이 있어 책을 못 읽어줄때도 있지만 우리 아이들에겐 늘 책이 함께 하고 있지요. 아이들 책을 읽으면 아이들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들을 배우고 이해하는 교육지침서가 되기도 하지요. 

책을 주문하면서 행복을 느끼고 책을 선물하면서 신이나고 즐거우니 책은 단지 읽기만 했던게 아니었던 것이지요. 나의 책 사용은 친구로 선생님으로 아이들 놀이감으로 그리고 좋은 잠자리를 위한 것들이었던 거지요.  

지금까지 나의 책 사용법을 생각하게 해준 마음산책 이벤트에 고맙네요. 아마도 앞으로 나이가 들어가도 늘 내 옆을 어김없이 지켜줄 것은 책이 아닐까 싶네요. 책이 있는 한 마음이 든든하네요. 

마음 산책의 <나의 책 사용법>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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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녀고양이 2010-07-11 10: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은 도피처 같아요... ^^

꿈꾸는섬 2010-07-11 11:0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도피처...그것도 맞네요.^^

순오기 2010-07-11 13: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섬님의 추억으로 책사용법을 알게 됐어요.^^
요즘은 책을 수면제로 사용하고 있어요.ㅜㅜ
오늘까지 마감이라 나도 꺼봐야지~ 생각은 하고 있는데...

꿈꾸는섬 2010-07-11 13:20   좋아요 0 | URL
다른분들 책사용법들도 읽어봤는데 정말 재밌고 유익한 정보들이 많더라구요. 순오기님의 책사용법도 기대되네요.^^

양철나무꾼 2010-07-12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짝짝짝~!참 좋네요~
종로서적을 종로서적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들,몇 안 될듯~^^
반디앤루니스라고 하더라구요,울 아들은.

꿈꾸는섬 2010-07-13 15:56   좋아요 0 | URL
종로서적에 대한 아련한 기억들이 참 많아요. 사라지기 전까지 제 약속 장소이기도 했구요. 없어진다고 했을때 눈물이 핑돌던걸요.

pjy 2010-07-12 2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종로서적...아련하네요~~지하말고 지상에서 책고르고, 읽던 기쁨^^

꿈꾸는섬 2010-07-13 15:57   좋아요 0 | URL
ㅎㅎ전 문학코너에 주로 있었어요. 종로서적만한 약속장소가 없었는데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