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우리집에 방문했던 책을 파는 아주머니, 난 그 아주머니가 지금도 참 고맙다. 돈이 넉넉치 않아 책 사는데 돈을 쓰는게 엄두가 나지 않았던 엄마, 아빠가 공무원이셨는데도 월급은 늘 할머니 차지였고, 엄마에게는 생활비도 넉넉하게 주지 않으셨다. 그때 그때 필요한 만큼만 그것도 늘 부족하게 주셨단다. 엄마가 곗돈이라도 불라치면 어느새 아시고 곗돈 타는 것도 꼭 가져가셨단다. 늘 어렵기만 한 시어머니에 가까이 살면서 늘 제집 드나들듯 하던 시누이, 한 지붕 아래 살던 작은동서네, 장가 안 간 막내 삼촌, 그리고 우리 4남매. 우리집은 정말 대가족이었다. 대가족 먹여 살리느라 엄마는 정말 살이 찔 새가 없었다. 늘 고단하고 손은 거칠었다. 지금처럼 뜨거운 물이 펑펑 나오던 시절도 아니었고, 빨래는 대부분 손빨래이고, 게다가 삶는 빨래도 매일 거르지 않았으니 엄마의 24시간은 정말 고된 노동의 하루였다. 큰 며느리라는 이름으로 너무도 많은 희생을 치르셨다.
여하튼, 엄마는 4남매의 고명딸로 태어났고, 외할아버지는 외삼촌대신 징용되어서 돌아가셨단다. 양평이 고향이셨는데 외할머니 혼자 사남매 먹여 살리는 것도 힘드셨을 거다. 그래서 엄마는 어느정도 나이가 드셨을때 엄마의 사촌 댁(서울)으로 들어가 살림을 도맡아 하셨단다. 그러다가 아빠와 중신이 서서 결혼을 하셨다는데, 결혼 예물도 제대로 구비하지 못해 신혼초에는 구박도 많이 당하셨단다. 심지어 아빠도 할머니의 은수저 타령에 엄마에게 화풀이 꽤나 하셨단다. 그래서, 내가 결혼할때 다른 건 몰라도 은수저는 꼭 한벌 해주고 싶었다고 하셨었다. 엄마의 사촌댁이 워낙 잘 사셨으니 결혼 예물을 잘 챙겨줄거라고 생각하셨었단다. 하지만 엄마가 그 집 딸이 아닌데 어찌 잘 챙겨 결혼을 하실 수 있었겠는가.
엄마가 43년생, 8살에 전쟁이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다니며 겨우 한글을 배우고 있던 시절 그나마 그래서 한글은 겨우겨우 아신다. 형편이 어려우니 학교도 제대로 다녀보지 못하셨다지만, 엄마의 총기는 정말 뛰어나셔서 집안의 대소사를 어디 기록해놓고 외우시는게 아니라 오로지 엄마 머리로 외우고 계신다. 먼 친척분들 생신까지 엄마는 모두 기억을 해놓고 계신다. 심지어 어린 손주들 생일까지 모두 외우고 계신다. 그럴때면 정말 엄마의 기억력을 닮지 못한 내가 좀 한심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어느날 우리집에 찾아온 아주머니, 아이들 책 꼭 사주라고, 책 사는 게 지금은 돈이 없어 못 산다고 해도 할부로 들여놓으면 한달에 얼마 안되고 아이들도 잘 클거라고 엄마를 설득하셨다. 엄마는 돈이 없으니 안되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동화책, 위인전집, 백과사전은 꼭 사주고 싶으셨단다. 그 책들을 사고 엄마는 매일 밤마다 뜨개질을 하셨다. 손재주도 뛰어나셔서 뜨개질을 정말 잘 하셨다. 코바늘로 예쁜 레이스를 만들어 식탁보도 만들고, 덮개도 만들고 재주가 정말 좋으셨다. 뜨개질 한장에 사오십원했던 것 같다. 할머니에게 들키면 안된다고 매일 불이 새나가지 않게 방문에 커튼을 꼭 쳐놓고 어두운 가운데 뜨개질을 하셨었다. 그리고 이불장 깊숙이 넣어두셨었다. 가끔 방 뒤짐도 잘 하시던 할머니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지금 생각해보니 그때 엄마는 얼마나 고단하고 힘드셨을까? 자식들 위해서 책 하나 마음껏 사주시지 못할 형편이라 당신 몸 아끼지 않고 일을 하셨으니 말이다.
그때 엄마가 힘들다는 사실을 잘 모르던 철부지 어린아이가 이제는 아이를 키우는 엄마가 되었다. 정말 내가 겪어보니 알 것 같다. 자식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는 엄마의 마음을 말이다.
그래도 가끔 엄마는 내게 말하신다.
" 그 놈의 책 읽으면 밥이 나오냐 떡이 나오냐."
한 가득 쌓여 있는 책들을 보며 엄마는 늘 아리송한 말들을 한다. 그래도 가끔 엄마가 사준 책을 제일 열심히 읽었던 내가 엄마는 참 좋았을 것이다.
집이 망해서 아주 궁색한 집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그 좋아하던 책들을 가장 먼저 버렸다. 그때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모른다. 물론 내가 고학년이 되었으니 아이들이나 읽을만한 책들을 가지고 있을 필요는 없었겠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는 그 책을 버리는 것이 못내 가슴 아팠었다. 그 책들은 나의 영혼을 살찌우던 진실한 친구였으니까 말이다. 하도 울어서 오빠한테 한대 맞기도 했었다. 우리 오빠는 나와 달리 책을 멀리하던 사람이었으니 그때 내 마음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책에 빠져서 하루종일 방안에 있었던 적도 있었고, 책을 읽다보면 어른들이 얘기하는 것을 잘 듣지 못할때도 많았다. 그래서 혼이 났던 그 어린시절이 오늘은 참 애닮게 그립다.
지금이라도 기억 저편에 있던, 엄마가 사주신 책의 추억이 되살아나서 좋다.
엄마, 나 어릴때는 왜 그렇게도 어리석은 행동을 많이 했을까요? 지금 되돌아보면 왜 그때는 그리도 엄마가 힘들거라는 생각을 못했을까요? 엄마는 당연히 그래야한다고 생각하고, 엄마는 늘 그렇게 해야한다고만 생각했어요. 죄송해요. 정말 많이 죄송해요. 그리고 고마워요. 엄마가 제 엄마라 늘 고마워요. 사랑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