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리터의 눈물
키토 아야 지음, 한성례 옮김 / 이덴슬리벨 / 2006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고등학교 다닐때 한동네에 살던 남학생이 그당시 화제가 되었던 김초희의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라는 책을 선물했었다. 난치병에 걸린 소녀가 한 라디오에 사연을 보내고 그녀의 이야기가 책으로 만들어졌던 것인데, 지금은 그 내용이 자세히 생각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때 잠깐 그녀의 난치병을 부러워했던 어리석은 생각을 했었다. 그때 내 삶이 도대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내가 원하는 삶을 살게 도와주지 못하는 부모님에 대한 원망이 좀 있었다. 그래서 늘 죽음이라는 극단적인 생각을 했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생각하면 참 어이없고 부끄럽다. 내가 볼 줄 아는 세상이 그만큼 작았던 탓이라고 생각한다. 

며칠동안 이 책을 읽었다. 읽자고 달려들면 단숨에 읽어낼만큼의 분량이었다. 하지만 아야가 몇년동안 고통에 시달리며 써내려간 글을 훌쩍 읽어버리는게 너무도 미안했다. 15세 소녀의 안타까운 투병일기, 하지만 슬픔보다는 아야의 씩씩하고 솔직하고 건강한 정신이 나를 더 많이 부끄럽게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아야를 지켜낸 그녀의 가족들, 그 모두에게 삶의 또 다른 면을 배우게 되었다. 

   
 

  화장실까지 3m를 기어서 간다. 복도가 차갑다. 발바닥은 부드러워 손바닥 같다. 손바닥과 무릎은 발바닥처럼 딱딱하다. 보기 흉하지만 어쩔 수 없다. 단 하나의 이동수단이니까.......
  뒤에서 인기척이난다. 기는 것을 멈추고 뒤돌아보니 엄마도 기고 있었다. 아무 말도 없이......바닥에 뚝뚝 눈물을 떨어뜨리면서......억누르고 있던 감정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와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
  엄마는 나를 꽉 끌어안아 주고, 울고 싶을 만큼 울게 내버려두었다.
  엄마의 무릎이 내 눈물로 흠뻑 젖었고 엄마 눈물이 내 머리카락을 적셨다.
  "아야. 슬프지만 힘내자. 엄마가 곁에 함께 있으니까. 자, 엉덩이가 차가워지니까 방에 들어가자. 엄마에게 아야를 업을 힘 정도는 충분히 있어. 지진이 나든 불이 나든 널 가장 먼저 업고 나가 살려줄 테니 아무 걱정 말아라. 쓸데없는 생각은 절대 하지마."
  라고 말하고, 나를 안고 방으로 옮겨 주었다.

 
   

 아이들을 낳고나서 그러니까 내가 엄마가 되고나서는 모든게 엄마의 마음이 먼저 읽힌다. 아야의 불치병에 가슴 아프고 그녀가 그래도 씩씩하게 남은 삶을 살아가서 고마웠다. 포기하지 않고 자신의 삶의 끈을 놓치 않았다. 주변의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많은 사람들에게 고마워하는 마음을 가지고 세상을 떠났다. 그녀의 그런 삶에 버팀목이 되어준 엄마가 없었다면 어땠을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그녀가 더이상 일기를 쓸 수 없게 되었을때, 엄마는 그녀의 일기장을 모아 책으로 만들 계획을 세운다. 그녀가 세상에 남기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것, 엄마는 그것을 만들어 주고 싶었던 것이다. 공부도 꽤 잘하는 편이었고, 하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런 그녀에게 내일이라는 희망이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학을 들어가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보통 사람들이 꿈꾸던 꿈조차 꿀 수없는 상황이 되어 버린 그녀의 삶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워서 눈물을 흘리며 보았다. 스스로 일어나 걸을 수 있다는 것, 스스로 밥을 먹고, 화장실을 다녀오고, 정말 누구나 하는 돌 지난 어린 아이들이 하는 보통의 것들 조차 할 수 없게 되어버린 그녀. 이 책을 읽으며 그런 것들 조차도 이렇게 소중하고 누군가는 그것만이라도 잘 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생각하니 게으르게 살아온 인생이 부끄러워졌다. 또한 그녀를 돌보아준 그녀의 엄마, 그녀가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수 있게 도와준 그녀의 엄마에게 삶을 대하는 자세를 배운다.

그녀의 주변에 좋은 사람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점점 상태가 나빠져 병원에 입원을 하고 간병인을 두게 되었는데 그녀의 실수를 이해하고 감싸안아주신 분도 있지만 그렇지 않고 그녀의 병을 무기 삼아 협박하는 나쁜 간병인들도 있었다니 더 가슴이 아팠다. 몸이 불편하니 쉽게 할 수 있는 용변의 실수, 물론 타인의 용변을 치우는 건 정말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간병인을 자처했다면 감수했어야 하는 건 아니었는지. 아야가 중증 환자라 간병인들은 서로 맡으려고 하지 않아 간병인도 여러차례 바뀌었다고 하는데, 아야가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생각하니 내맘도 함께 아팠다. 

<1리터의 눈물>, 과장되지 않은 눈물의 양, 그래서일까, 더 많이 가슴이 아팠다.  

벌써 20여년도 넘은 이 책의 아야가 앓았다는 척수소뇌변성증은 여전히 고칠 수 없는 병인 것 같다. 의학이 나날이 발전하고 있으니 어서 고칠 수 있는 신약이 나오길 간절하게 바란다.

늘 아이들을 뱃속에 끌어 안고 있을때 생각했던 것이, 부디 건강한 아이로 자라달라는 것이었던 나의 태중 기도가 늘 이루어지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또 내가 그리고 남편이 건강한 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며 살아야겠다.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아야, 더이상 고통없는 세상으로 갔기를 바래. 부디 너가 꿈꾸던 내일을 헛되게 보내는 사람이 되지 않을거야. 고마워, 잘 견뎌주어서, 이 세상을 사랑해 주어서. 아야 너를 기억하며 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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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오기 2010-03-05 01: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 딸의 뒤를 따라 바닥을 기는 엄마는 또 얼마나 아팠을런지...
그래도 사는 동안 엄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다 갔으니 그도 다행이네요.
우리도 열심히 살아야 되는데...

꿈꾸는섬 2010-03-05 14:58   좋아요 0 | URL
딸의 병을 받아들여 죽는날까지 굳세게 살다가게 도와준 엄마에요. 딸의 아픔을 함께 하는 엄마 정말 멋지죠. 저라면 그럴 수 있었을까 싶어요. 그래서 또 배워요.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일이라는 걸요.^^

마녀고양이 2010-03-05 08: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눈물이 정말 1리터는 나오는 소설이지요.
딸아이를 낳은 이후로 아이가 아픈 책, 먼저 보내는 이야기는 상상하기조차 싫어졌답니다.
TV의 병원 관련 다큐 있잖아요.. 그것도 절대 못 보겠어요.

꿈꾸는섬 2010-03-05 15:00   좋아요 0 | URL
저도 TV의 병원 관련 다큐 잘 못봐요. 그나마 책이니 읽는건데, 너무 마음이 아프더라구요. 우리 모두 건강한 것만으로도 감사해야겠단 생각을 잊지 말아야겠어요.^^

같은하늘 2010-03-05 23: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꿈꾸는 섬님의 리뷰만으로도 눈물 나는 이야기네요. 이렇게 살아 있다는 것을 고맙게 생각하며 열심히 살아야겠지요?

꿈꾸는섬 2010-03-06 17:59   좋아요 0 | URL
우리 함께 열심히 살아요. 그 누군가가 살고싶어하는 오늘일 것만 같아요. 그동안 너무 게으르게 살았던게 후회되고 부끄러워요.^^

비로그인 2010-03-07 1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도 건강한 웃음을 지으며 하루를 잘 보내고 있으시죠? ㅎ

며칠 무리했더니 입술에 물집 잡혀버렸는데요. 저도 오늘은 아주 푸욱 쉬면서 건강한 웃음을 좀 지어봐야겠습니다. ^^

꿈꾸는섬 2010-03-07 17:56   좋아요 0 | URL
^_________^활짝 웃으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