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에 친구처럼 지내게 된 남편의 친구 부인에게 전화가 왔다. 오랜만에 온 전화라 반가운 마음에 그동안 밀렸던 수다를 오랫동안 떨었다. 마침 현수가 잠을 잤고, 현준인 혼자서 끄적끄적 그림도 그리고 퍼즐도 맞추어서 우리의 수다에 방해는 없었다.
우리집 아이들과 똑같은 5살, 3살을 둔 L은 큰아이의 유치원 선정문제로 지난 하반기에 무척 바빴다. 드디어 결정한 곳은 아기스포츠단, 큰아이가 유난히 배가 많이 나왔고 처음에 보내려고 했던 놀이학교에 비해 저렴하다는 이유, 비용을 줄여서 작은아이까지 보내겠다는 계획을 차근차근 이야기했다. 얘기하면서 내가 부러웠던 건, 우리집 주변에도 아기스포츠단이 있었다면 현준이도 그곳에 보내고 싶었던 것, 아직은 마음껏 뛰어 놀고 여러가지 운동을 통해서 협동심도 배울 수 있다면 좋을 것 같아서 나도 예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 우리는 그냥 가까운 유치원을 보내기로 결정했다. 현준이가 다닐 유치원은 최근에 지어진 최신식 건물에 일주일에 한번씩 수영을 한다. (유치원내에 있는 수영장에서) 7개월정도 다녔던 수영장에 다니지 못하게 되면서 현준이가 많이 심심해했던탓도 있지만 가장 마음에 들었던 건 유치원의 한 공간을 열린도서관으로 꾸며놓은 것, 그리고 옥상에 생태공원을 만들어 놓은 것 등 시설이 너무도 훌륭한 곳이라 선뜻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야기 도중 L은 큰아이가 3개월동안 원어민 영어교실에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하게 되었고, 나는 솔직히 좀 놀랐다. 벌써 영어에 투자를 하는구나 싶었다. 그것도 원어민 영어교실, 그곳을 다녀오면 집에는 5시쯤 오게 된단다. 5살짜리 아이가 어린이집을 다니고 거기서도 영어수업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린이집이 끝나면 영어교실까지 다녀온단다. 난 아직 현준이를 어떤 곳에도 보내지 않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교육 계획과 너무도 다르다는 생각이 들면서 언뜻 내가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가?하는 의심이 들었다. 현준이도 어딘가를 보내야하는게 아닐까? 이런 마음이 살짝 들기 시작한 것이다.
저녁을 먹으며 남편과 일제고사에 대한 얘기를 나누다가 L네 아이들 얘기가 나오게 되었고 우리는 잘 하고 있는걸까? 그랬다. 사실 어제까지도 남편은 현준이 중학교까지 학원에 보내지 말자고 얘기를 했었다. 나도 응, 그래도 되지.라고 맞장구를 쳤었는데 오늘 오전에 그 마음이 깨어지고 그 속으로 우리가 잘 하고 있는걸까? 하는 마음이 들려고 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우리가 학교를 다니던 그때 그시절과는 너무도 다르다. 반에서 손에 꼽힐 정도의 아이들이 학원을 다녔던 기억이 나는데 지금은 학원에 안다니는 아이들이 손에 꼽힐 것 같다.
공부는 스스로해야하는게 아닌가. 누군가 주입시켜주는 교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내가 현준이를 갖게 되었을때부터 나는 어떤 부모가 되어야할까?를 늘 고민했었다. 물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그런 좋은 엄마로는 부족한게 너무도 많다. 그래도 내가 늘 현준이를 위해 기도했던 건 늘 건강했으면 좋겠다는 것 - 몸도 마음도 - 그리고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것, 늘 이 두가지만 생각하겠다고 기도했었다. 그래서 현준이가 공부에 마음이 없다면 굳이 공부를 꼭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다만 현준이가 살아가면서 즐겁게 살아갈 수 있게 책을 벗삼고, 좋은 그림도 볼 줄 알았으면 싶고, 좋은 시도 볼 줄 알았으면 싶고, 즐거운 음악도 들으면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었다. 언제든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길은 열어주고 싶다는 생각은 했었다. 나는 잘 타지 못하는 스케이트도 탈 수 있었으면 했고, 물놀이에 겁내지 않게 수영도 할 수 있었으면 했고, 피아노든 바이올린이든 배우고 싶다면 배우게 하고 싶다 - 난 사실 돈이 많이 드니 안해도 그만이다 싶다. 꼭 내가 해야 맛은 아니다 듣고 즐기는 것도 나쁘지 않으니까 - 축구든 농구든 어떤 운동이든 하고 싶다면 한가지 정도는 시켜보고 싶다는 생각도 있다. 물론 안한다면 그만이다. 내가 생각했던 인생에서 필요한 건 이런 것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여기저기서 들리는 건 오로지 영어...영어...다. 내가 생각할때 영어보다 더 중요한 건 우리의 역사, 사회, 문화, 문학......이런게 더 중요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들은 모두 영어가 모든 것에 우선인 것 같다. 그러다보니 나도 가끔은 흔들린다. 하긴 영어도 중요하지......대한민국의 아이로 태어나서 국어보다 영어를 먼저 배우는 아이들......정말 행복할까? 그게 성공한 인생일까?
물론 나도 집에서 현준이와 영어 노래를 부르고 영어 관련된 책을 들춰본다. 이제는 제법 색깔에 대해 얘기하고 간단한 인사는 할 줄 알긴 하는데 그게 먼저라서가 아니라 현준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주눅들지 않았으면해서 함께 공부를 하긴한다.
앞으로 어떻게 아이들을 키우게 될지 솔직히 겁도나고 자신도 없다. 아이들을 마냥 학원으로 몰아대는 부모가 되지는 않아야지, 아이들은 놀면서 자라야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데 함께 놀 아이들이 없다. 그게 문제다. 언제든 실컷 놀게해주고 싶다. 여기저기 다니며 구경도 하고 인생을 즐겁게 살았으면 좋겠다. 그 즐거움에 머리 싸매고 공부하는 것도 포함된다면 기꺼이 공부에 대한 뒷바지라지를 게을리하진 않겠지만 그걸 사교육에 맡기고 싶진 않다. 그리고 학교에 계신 분들께도 당부하고 싶은 건 아이들을 사교육의 현장으로 자꾸만 몰아내지 말라는 것이다. 모르는 걸 배우러 학교에 가는데 학교에서 가르쳐주지 않고 집에 가서 숙제로 해오라고만 하면 아이들 가르치는 것에 자신없는 엄마들 그냥 편하게 학원으로 보내게 된다. 물론 덕성여중 교장처럼 무지막지하게 선생님들 다루시는걸 원하는 건 아니다.
조금은 천천히 가도 되지 않는가, 왜 선행 학습을 해야하고 왜 특목고를 가야하고 왜 서울대만을 가려고 하는건지......내가 학부모가 되면 또 어떤 마음으로 바뀔지 모르겠지만 늘 나를 되돌아보며 아이들을 닥달하는 그런 엄마는 되지 않게 노력하고 싶다. 그냥 좀 예의바르고 공손하고 겸손한 아이가 되라고 닥달은 할지 모른다.
이 글을 쓰면서 자꾸만 한숨이 나온다. 내가 변하지 않아야할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