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필경사 바틀비 - 미국 ㅣ 창비세계문학 단편선
허먼 멜빌 외 지음, 한기욱 엮고 옮김 / 창비 / 2010년 1월
평점 :
가장 많이 접하고 읽은 책들이 영미권 소설들이 아닐까한다. 그만큼 미국 문학은 친숙하고 익숙하다. 미국편에 특히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이 실려 있어 더 반가웠다. 몇해 전 단편소설의 묘미와 즐거움을 알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던 시절에 우연히 읽게 된 윌리엄 포크너의 '에밀리에게 장미를'를 읽고는 전율에 가까운 느낌을 받았었다. 그 후 윌리엄 포크너의 영향을 받아 남부를 배경으로 한 '에밀리에게 장미를'와 묘하게 닮은 듯 다른 남부를 배경으로 한 작가 카슨 매컬러스의 '슬픈 카페의 노래'를 읽게 되었고 자존심이 걸린 치명적인 사랑을 하게 되는 그녀들의 사랑이 짙으면 짙을수록 고통이 느껴져 두 여주인공에게 남다른 애정이 생겼었다. 그래서 기억 속에, 추억 속에 간직하고 있던 '에밀리에게 장미를'를 다시 읽어보며 그녀의 사랑을, 선택을 다시금 생각해보려 한다.
그녀는 모두가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던 노동자 출신의 호머 배런을 사랑하게 된다. 그녀는 그가 원하는 모든 것을 이해하고 싶어 한다. 비록 그가 사랑하는 사람이 그녀가 아니라 '그' 일지라도 말이다. 작가 윌리엄 포크너는 비극적이고 충격적인 결말을 위해 그녀가 호머 베런과 데이트를 시작하고 사랑을 느끼던 모습과 호머 배런이 사라진 후 남은 세월을 몰락한 남부를 상징하듯 무너져 내린 모습으로 변해가는 과정을 그녀의 외모와 머리카락의 색으로 표현해준다. 그래서 마지막 결말에서 그녀의 변해가던 모습을 되돌이켜 생각해보면 경악과 전율이 따르게 되고 '귀여운 여인'의 올렌카의 모습을 엿볼 수 있어 경악스러웠고 사랑에 대해 여러 생각이 떠오르게 하였다. 그저 아름답고 행복할 것만 사랑의 모습은 한 단면이었음을 이 작품을 통해 새삼 소름돋게 알려준다.
과연 그녀에게 '사랑'은 무엇이었을까? 올렌카처럼 되고 싶었던 것일까? 그가 원하는 모습으로 변해주는 것이 사랑이라고 생각했을까? 아님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소유욕이었을까? 하는 여러 상념들이 동시에 들게 해주는 작품이라 한동안 모든 사랑이란 무엇일까 하는 상념에 빠지게 만든다. 에밀리는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했다고 본다. 그래서 그녀가 세월 속에 그녀의 사랑 속에 가두어 두었던 사랑은 무서우리만큼 그녀의 집념이 보이지만 비극적인 아름다움을 갖는다. 아마도 사랑은 치명적인 것을 알면서도 끝까지 갈 수밖에 없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에밀리와 아멜리아 그녀들의 사랑처럼 말이다.

그밖에 너무나 기억하고 싶은 주옥같은 단편들이 가득한데, 헨리 제임스의 '진품' 에드거 앨런 포우의 '검은 고양이', 처음 읽게 된 샬롯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 '필경사 바틀비'가 마음에 남는다. 그 외의 작품들도 미국 단편 소설의 정수라 할 수 있어 읽는 동안 즐거웠다. 작가 헨리 제임스의 '진품'은 자신들의 '진품'임을 강조하며 삽화가에 나타난 가련한 부분의 이야기를 다루며 진짜와 가짜라는 설정을 통해 인간이 가지는 한계와 경계선을 보여주며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의 모습과 진짜임을 강조하다보니, 스스로에 덫에 갇힌 사람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샬럿 퍼킨스 길먼의 '누런 벽지'는 스스로 미쳐가는 과정을 그린 소설인데, 제대로 공포다. 마지막 장면에서는 나 역시 남편과 같은 행동을 하고 싶었다. 포우의 '검은 고양이'는 어린 시절 공포의 결정체가 되었던 작품이었고 '필경사 바틀비'는 다소의 짜증과 애정이 동시에 생기게 만든 작품이었다.
사실 세계문학 미국편은 가장 많은 작가의 이름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더 반가웠었다. 비록 작가들의 작품을 다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이렇게 단편을 통해서 작가들과 고전문학을 읽는 즐거움을 알게 되었으니 나에겐 큰 수확이지 않을 수 없다. 다른 작품들도 단편의 함축된 의미와 즐거움을 느끼며 오래도록 읽고 또 읽고 싶어졌고 이젠 단편소설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