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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덱의 보고서
필립 클로델 지음, 이희수 옮김 / Media2.0(미디어 2.0) / 2010년 4월
평점 :
품절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는 가슴을 조여오는 아픔을 준다. 브로덱이 겪은 숱한 고통은 인간이, 인간일 수 있는 시간들을 무자비하게 지워버린 시대의 아픔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며 어리석은 개인들이 집단의 무지한 힘으로 일으키는 어처구니 없는 사건들은 공포, 그 자체이다. 자신들의 치부를 보여주는 거울 같은 존재를 거부하고 그 거울을 산산조각 내버리는 집단의 두려움은 나의 모습이, 우리들의 모습이 아니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닮은 사람들 같아 스르륵 돌아서고 싶기도 하고 맞서고 싶기도 해진다. 사람들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잡은 집단 이기심과 수치심이 만들어낸 두려움과 어리석움의 모습이었고 그로 인해 브로덱과 안더러('다른 사람, '타자' 라는 뜻)는 이유도 모른 채 '이방인'이 되어 죽음보다 더 고통스런 시간들을 견뎌야 했고 안더러는 잠시 승리자였던 이유로 인해 비싼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끔찍한 전쟁을 겪은 지 얼마되지 않는 시기에 프랑스와 독일의 국경지대의 폐쇄적인 작은 마을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그들만의 독특한 방언을 쓰며 낯선 자에 대한 거부감과 심한 불관용성을 지닌 마을 사람들 눈에는 그가 신기한 존재에서 이물질과 같은 존재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집단 광기는 표출되고 결국 사건이 일어난다. '에라이그니스'(방금 일어난 일)이 일어났던 그날 밤 슐로스 여인숙에 모인 마을 남자들에 의해 갑자기 사라진 안더러 사건의 전말을 보고서로 작성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게 된다. 알고 싶지도 않았고 끔찍한 진실은 더욱 더 모른 채 조용히 살고 싶은 브로덱에게 물증은 없지만 마을 전체가 작당모의한 집단 범죄임이 확실한 사건을 조사해 보고서로 제출하라는 지시에 브로덱은 사건을 조사해 가는 과정에서 전쟁 전과 후의 사건들과 브로덱의 겪어야 했던 사건의 진상을 알게 되고 안더러가 자신과 같은 또 다른 '낯선 자'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에 브로덱은 요청받은 보고서외에 진짜 숨은 진실을 담고 있는 비공식 보고서를 쓴다.
30여 년을 가족처럼 지내왔던 사람들에 의해 배척당하고 내몰려 '인간 브로덱'에서 '똥개 브로덱'으로 보내야 했던 지옥의 시간을 경험한 브로덱과 그들과 '다름'을 지녔고 타자의 눈으로 그들의 진짜 모습을 볼 줄 알았던 안더러는 그들에게는 그저 공포를 전해주는 '낯선 자(타자)'였다. 타자에 대한 무지한 어리석음이 모인 두려움이 얼마나 극한 상황으로 내몰 수 있는지, 이기적인 집단 광기에 의해 한 개인이 철저하게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마을 사람들이 보여주는 집단 광기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은 전쟁을 일으켰던 이들의 잔혹성을 점차 닮아가고 사건은 파국으로 치닫게 된다.
'다름'을 인정하지 않고 편을 가르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평화는 깨지고 인간은 더 이상 인간이 아니게 되는 순간을 화들짝 느끼게 된다. 집단 무의식이든 어리석음이 동반한 두려움 때문이든, 여전히 '타자'를 인정하지 못하고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는, 나는 그 폐쇄적인 마을에서 추악한 모습의 '같음'만을 추구하는 그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된다는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나와 다른 생각, 모습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만 인간은 인간일 수 있게 된다는 진실을 브로덱의 보고서를 통해 새삼 깨닫게 된다.
'필립 클로델'의 '브로덱의 보고서'는 눈물이 메말라지는 아픔을 준다. 인간이 가장 인간다워진다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생각에 가슴이 울컥하고 인간이 보여주는 추악하고 무자비한 잔혹함에는 더 이상 눈물이 나오지 않는 메마름과 깊은 한숨이 나온다. 마음속 혼돈을 잠재운 채, 그저 담담하게 보고서를 작성하는 브로덱의 글에서, 목소리에서 그의 눈빛에서 무수한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