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막 세상에서 일하는 노마드를 위한 안내서 - 누구와, 어떻게, 무엇을 위해 일할 것인가?
제현주 지음 / 어크로스 / 201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15년차 직장인이다. 처음 직장생활을 시작할 땐, 회사 생활 "열심히"만 한다면 과장되고 차장되고 부장되고... 쑥쑥 승진도 하고 잘 될 것이란 희망이 있었지만, 지금은 뭘 하고 살아야 하나 그 걱정 뿐이다. 회사라는 곳이 일정정도 다니다 보면 그 한계가 보이니 다시 공무원 시험을 보겠다고 준비하는 친구도 있고, 얼마전 임용시험에 합격해서 회사를 그만 둔 직장동료가 한없이 부럽기도 하다. 

대체 일이란 무엇이기에.... 제현주씨의 일에 대한 정의. 참 깔끔하다.

 

p.6 어떤 일을 나의 일이라고 부른다는 것은 그 일이 를 설명한다는 의미일 것이다. ‘나의 일을 가지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은 직장이나 직업이 나를 설명할 수 있게 되기를, 내가 매일 하는 를 이루는 중요한 부분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

p.22 “난 왜 일에 의미를 부여했을까. 일일 뿐인데. <미생>

p.41 노동자로서의 정체성은 잊고, 당당한 소비자 행세만 하며 살아가는 쪽이 편리하다는 요즘 세상에서도 일은 여전히 우리 삶의 중심을 이룬다. 일로서 이루고픈 많은 것이 여전히 결코 소비로서 대체될 수 없다. 우리는 일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누리고 싶고, 사회적 인정도 받고 싶으며, 즐거움도 누리고 싶고, 좋은 사람과 교류하고도 싶다. 직장에 첫발을 내딛고 조금만 시간이 흐르면 일에 이렇게 많은 의미를 부여해봤자 실망할 것이 뻔하다는 것을 십중팔구 깨닫게 된다. 그러나 일에 투사하는 수많은 욕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래서 일하는 우리는 씁쓸함에 시달린다.

일은 일일 뿐인데, 나와 일을 동일시. 내가 큰 회사에 다니면 좀 큰 사람이 된 것 같고, 작은 조직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또 한없이 작아진다. 내 스스로도 그런 생각을 하지만, 또 명함을 받아들 때 상대에 대해 그런 평가를 하게 된다. 이런 몹쓸.... ㅠ.ㅜ

p.48 일에 대해 생각한다는 것은 일을 이루는 활동, 일이 낳는 결과와 함께 일이 놓인 차원과 일을 통해 형성되는 국면을 이해하는 일이다. 이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라는 문제를 훨씬 더 정교하게 구성하게 된다. 무슨 일을 어디서 누구와 얼마나 오랫동안 어떤 방식으로 할 것인가? 재미있는 일을 원한다면 나는 어떤 것에서 가장 큰 재미를 느끼는가? 나는 어떤 상황을 가장 견딜 수 없어하는가? 돈을 벌어야 한다면 얼마를 벌어야 하는가? 나에게 가장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어째서 그것을 가장 가치 있게 생각하는가?

회사를 옮겨보니 알겠다. 나는 어떤 조직에 있고 싶고, 어떤 일을 하고 싶고, 누구와 일하고 싶은 가를. 좀 더 객관적으로 보게 된다. 저자가 말했듯 "괜찮은 일자리에 있는 사람들조차 다음 자리를 고민한다. 대우가 좋아 선택한 직장은 일이 단조로워 괴롭다. 흥미로운 일에 끌려 옮긴 직장은 월급이 쥐꼬리다. 간판이 번듯한 직장에서는 위계질서가 나를 짓누른다. 더 나은 일자리를 찾는 이들의 마음은 모순된 욕망에 끊임없이 시달린다."  그런데, 어쨌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나와 잘 맞아야 한다. 아무리 월급이 안정적이라 한들 책임회피형 직장상사를 만나거나, 싸가지 없는 부하직원과 같이 일한다면 그게 뭐 그리 좋겠는가.

 

p.131 한발 더 나아간다면 직접 존 에이브램스가 되기를 꿈꿔보는 것도 방법이다. 이런저런 눈치를 보지 않고도 마음껏 일하거나 일하듯이 놀기 위해서. 쉬운 일은 아니겠지만, 또 못할 일도 아니다. 마음 맞는 사람을 모아 공동으로 소유하고 공동으로 경영하는 회사를 만드는 것이 꼭 에이브램스만 할 수 있는 일이겠나. 사우스마운틴컴퍼니가 화려한 위용을 자랑하는 회사가 아니라는 것도 큰 용기를 준다. 내게는 스티브 잡스나 빌 게이츠보다 에이브램스가 훨씬 더 만만한 롤모델처럼 보인다. 에이브램스의 책 <가슴 뛰는 회사>를 읽으면서 제목 그대로 내 가슴도 뛰었던 이유다.

p.178 어쩌면 우리에게 필요한 스토리는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대답이 아닐지 모르겠다. 우리가 물을 것은 내 옆에 누가 있는가. 그리하여 가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일을 통해 어떤 이야기를 발견할 것인가를 물어야 한다. 함께하는 손이 있을 때야 비로소 시시포스에게 새로운 가능성이 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일이라는 것은 결국 '나'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문제이다.  

 

p.230-231 능력을 갈고 닦는다고 해서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다. 대체 불가능한 사람이 되려면 등가성을 따지지 않고 내 존재의 의미를 발견해주는 일터에서 일해야 한다. 내 존재 자체를 일의 규정에 포함해 주는 일터가 필요하다. 그런 일터는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없다면 우리 스스로 무리를 이루어 만들어낼 수는 없을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