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녀의 세계 - 사랑한 만큼 상처 주고, 가까운 만큼 원망스러운
김지윤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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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의 엄마와의 관계 이야기를 읽으면 이렇게 울고 웃을 수 있다니... 작가 말발 못지 않는 글발 때문인가. 


결혼하고 시어머니가 신랑의 누나를 대하는 태도에게 충격에 충격을 받았었다. 임신을 하고 아기를 키우면서 수많은 육아서를 읽을 때 마다 시어머니와 형님을 생각했다. 지시적이고 명령적인 어머니의 말투. 나이 50에도 엄마에게 외모 지적을 받아야 하는 형님... 그래서 남편과 어머니의 말투나 양육방식에 대한 얘기를 나눌때면, 신랑은 자신은 한번도 엄마가 "폭력적"이라고 느낀 적이 없단다. 나는 보이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정리가 쫙 됐다. 

k-장녀 시어머니. 위로 오빠 둘이 있는데, 오빠들 도시락 싸주고 오빠들 교복 다려주는 역할을 해야 했고 어린 동생들 도보는 역할을 도맡았으니, 그 동생들 휘어잡으려면 명령조일 수 밖에. 일찍 결혼해서 딸을 낳고, 그 딸이 또 다른 나라고 생각하니 예쁘고 날씬했으면 하는 바람. 그러다 보니 운동해라 옷은 이거 입어라 이거 먹어라 ... 할 수 밖에. 아들에게 하지 않을 잔소리를 딸에게는 계속 하게 된다. 아들은 여전히 느끼지 못하는 엄마의 딸에 대한 통제. 

시어머니와 형님을 보면서 엄마의 딸을 관계를 제 3자의 입장에게 혼자 분석해보게 되었다. 

렇다면 나와 엄마의 관계는?


나와 엄마의 관계도 얽히고 섥히고 ... 뒤죽박죽이지만 감히 말을 꺼내기도 어렵고. 객관화 하기가 어렵다. 

얼마 전 엄마는 부동산 사기를 당했다. 당했다고 표현할 수 도 없는 게 사기 친 사람이 몇 년 동안 엄마에게 "언니"라고 부르면서 친근감을 표시했고 엄마는 그 사람 말에 홀라당 넘어가서 말도 안되는 맹지를 1000만원이나 주고 사버렸다. 그 일로 인해 엄마와 나 사이에 험한 말이 오갔다. 내가 그 사람 사기꾼이라고 계속 말했는데, 왜 그 사람을 믿냐고. 화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 시간이 흐르고 가만 생각해 보니, 나 역시 "사기"라는 걸 몇 번 당했는데, 그렇게 사기를 당한 것이 엄마처럼 귀가 얇아서 그런가? 엄마를 닮아서 그런가? 엄마가 영리하고 때로는 영악한 사람이었다면 엄마의 그런 점을 닮았다면 나도 그런 일을 없었을 텐데 하는 말도 안되는 억지까지 부리게 됐다. 


마흔이 훌쩍 넘어 낳은 아들을 잘 키우고 싶은 마음에 각종 육아서를 섭렵하고 있다. 그러면서 불쑥불쑥 느껴지는 억울함. 우리엄마는 왜 나를 그때 그렇게 키웠던가. 하는. 

우리 엄마의 시대적 맥락을 이해한다면 그땐 그게 최선이었을 거다. 그리고 엄마에게 받은 다른 좋은 문화적 유산들도 많잖아? 

이 책 읽으면서 나에게 있는 두 어머니, 친정 어머니와 시어머니를 많이 생각했다. 솔직히 시어머니를. 

왜일까? 시어머니는 그냥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겠는데, 울엄마와의 관계를 끄집어 내자니 마음이 벌써부터 아파와서. 시간이 필요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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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81-82 40대 이후의 삶에 대한 책임은 과거에 있지 않고 전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했다. 아쉬운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현재와 미래를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만들어가면 된다. 


p93 첫째들은 어느 새 적응하며 책임감을 키워간다. 그러나 아직은 어리기 때문에 동생들을 돌보는 게 어렵다. 즉, 설득보다는 통제가 쉽다. "야! 이리 와", "하지 마!", "이거 안 준다!", "너만 안 준다!", "내 말 들어라잉~ 퍽!" CCTV처럼 매사 동생들의 안위를 살피는 엄마의 기대주 첫째들은 일단 동생들의 기를 휘어잡고 본다. 어쨌든 결과가 좋으면 패스니까. 


p128 우리 어머니들은 남녀 간의 사랑을 배워야 할 지식이나 기술의 영역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부부간에 문제가 생겨도 그냥 칼로 물이나 베면 되는 거다, 하고 생각하던 시절에 태어나 그저 각개전투를 하듯이 각자 나름대로 어려운 사랑을 지속했다. 그렇게 굳어진 엄마들의 왜곡된 시선을 교정해줄 인도자는 아마도 주변에 없었을 것이다. 


p129 이건 좀 비뚤어진 시각일지 모르겠는데 사람들이 '엄마에게는 딸이 있어야 한다'는 말을 할 때 나는 그 말이 마치 엄마에게는 '아주 편하고 만만하고도 마음을 의지할 대상'이 있어야 한다는 소리로 들리곤 한다. 사람들은 대개 여성에게 있어야만 하는 '아주 만만하고도 편한 그 독특한 대상'을 '딸'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 


p139 옳고 그름과 안전은 꼭 가르쳐야 하는 것이고, 취향과 성격기질은 인정하고 내버려두어야 하는 것들이다. 


p149 딸과 엄마의 관계도 그렇다. 때로는 남을 대하는 것 같은 존중감과 거리감이 모녀 관계를 지켜준다. 


p183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우리가 그랬듯이 아이들도 무력감과 분노를 느낀다. 아이는 쉽사리 감정을 처리하지 못하고 그저 오련 무력감을 한 번 더 저장할 뿐이다. 아이가 독립적인 인간으로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다. 아이의 경계선, 결정권을 지켜주는 일은 아이가 성인이 되었을 때 자기 자신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므로 제발 상냥한 폭군이 되어 모든 것을 제 맘대로 하지 말자. 부디 경계선을 지켜주는 엄마이면 좋겠다. 


p184 친밀간이란 공유와 밀착만 가지고 형성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공유와 경계선이 균형 있게 지켜질 때 형성될 수 있다. 경계선을 무너뜨리며 딸을 통제하는 방식은 내 어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또 그 어머니가 그녀의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정신적인 유물과도 같은 것이다. 그러므로 이 대물림을 종식하기 위해서는 인식하고 질문하며, 질문에 대한 답변을 존중하는 것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러지 않는 한 경계선 침범은 계속 될 수밖에 없다. 


p208 생활 습관에 관한 일은 주양육자가 편히 돌볼 수 있게 배려해주는 것이 우선이지만 아이의 가치관이나 가족의 신념과 관련된 문제는 부부가 핵심이 되어 반드시 주도권을 가지고 개입해야 한다. 그리고 결국 이것이 주양육자에게 필요 이상의 짐을 전가하지 않는 태도이기도 하다. 


p213 그러니까 화나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 있어 미숙하고 공격적이거나 억압적인 경향을 지닌 엄마가 있다고 할 떄 그 원인을 파악하려면 개인의 성향과 성장 과정, 인생의 중요한 사건들을 살펴보아야겠지만, 한 인간이 성장하고 처한 거대한 배경이자 맥락인 사회적, 문화적 특수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p225 아이들이  매 맞는 경험을 통해 진심으로 반성하거나 바르게 성장한다고 믿지 않는다. 아이들은 보다 더 끈기 있고, 정교하고, 전략적으로 지혜롭게 다루어져야 할 존재이다. 때려서 일순간 억압하고 통제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으나 때려서 교화하고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낸다? 글쎄다. 


p231 때리는 부모는 애증으로 남게 마련이지만 대화하는 부모는 존경과 사랑으로 남지 않을까? 


p272 엄마들이란 이처럼 지혜로운 존재들이다. 그녀들이 겪어낸 삶의 무수한 과정들이 그녀 자신의 삶과 딸들에게도 지혜라는 유산으로 전해지고 있다. 


p273 엄마가 당신을 온 힘을 다해 사랑했던 그 고귀한 순간들이 엄마의 역기능에 덮이지 않으면 좋겠다. 해결할 문제는 해결하고, 그와는 별개로 당신이 받은 사랑을 간직할 줄 아는 균형도 가지면 좋겠다. 구글도 알려주지 못하는, 세상 어렵고 복잡하며 애매한 문제들에 대해 무릎을 탁 치는 답을 무수히 내장하고 있는 지혜의 데이터베이스 '엄마'를 가졌다는 것은 당신에게 분명 대단한 축복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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