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정상가족 - 자율적 개인과 열린 공동체를 그리며
김희경 지음 / 동아시아 / 2017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 가족"이란 게 무엇인가. 

예전에 출판사에 다니며 초등학생 학습용 영어 교재를 편집할 때, 예문에 "할머니가 나를 돌봐주신다"라는 예문을 보고 차장이 이런 예문 넣지 말라고 지적했던 적이 있다. 할머니가 돌봐주는 '이상한 집' 예라며. 물론 십 수년 전 이야기긴 하다만, 지금이라고 다를까? 

대개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가족의 개념 중 정상의 범위가 있다. 

그래서 거기에 조금만 어긋나도 "이상한" 이란 말이 붙는다. 하지만,.... 이제 그 '이상한'이 오히려 정상처럼 보이기도 한다. 


특히 내가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부분은 "동반자살"이다.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보는 것. 언론에서 너무 많이 접해서 그냥 "동반자살"이라고만 인식했지, 이건 명백히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이라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어제 mbc 실화탐사대라는 프로에서도 자막에 '동반자살'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다. 순간, 저건 아닌데 싶었다. 


p80 더 이상 '동반자살' 또는 '일가족 집단자살'이라는 표현은 쓰지 말아야 합니다. 부득이하게 그러한 사건을 보도할 경우 언론은 "부모가 자녀를 살해한 뒤 자살했다"라고 써야 합니다. 


p190 가족주의를 떠나서 보편적으로 부모와 자녀의 심리적 분리는 부모뿐 아니라 자녀에게도 어려운 일이다. 자신 안에 내면화한 부모의 모습과 싸우고, 달래고, 도망치고, 협상하고, 이해하는 과정이 곧 사람이 자기 자신이 되어가는 성장의 과정이다. 나이가 든다고 끝나는 일도 아니고 어쩌면 평생 지속해야 하는 과제이다. 


역시 체벌은 폭력이다. 내가 어린 시절 체벌을 겪으며 컸다고 해서 내가 잘 컸다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폭력일 뿐이다. 체벌이 아닌 "교육"이 필요하다. 

p217 부모의 체벌금지를 비롯한 모든 종류의 체벌을 금지하는 법의 목적은 단순하다. 명백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매우 선명한 메시지를 내보내는 것. 폭력과 비폭력 사이에 아주 단순하고 선명한 줄을 긋는 것이다. 어른의 책무는 아이들에게 폭력이나 협박, 위협에 기대지 않고도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있음을 가리치는 것이며, 정부의 책무는 비폭력적으로 아이를 키우는 게 가능한 환경을 만들어주는 것이다. 


공공의 영역이 강화되어야 한다. 개인이 해결할 수 없는 문제가 있다. 임신, 출산, 육아, 돌봄의 영역은 특히 그렇다. 결혼 전, 그리고 임신을 하기 전, 나 역시 왜 그런 문제를 정부가 해결해 줘야 하냐는 생각이 있긴 했다. 너무 무지해서. 그런데, 아이가 우리의 미래라고 데 동의한다면 공공의 영역에서 돌봐줘야 하는 게 맞지 않나? 

p232 스웨덴의 경험이 보여주는 것은 삶은 개인주의적으로 살고, 해법은 집단주의적으로 찾을 때 저출산을 비롯하여 우리가 겪는 위기를 해소할 길이 보일 수도 있다는 점이다. 스웨덴과 비교하면 한국은 거꾸로다. 삶은 집단주의적이고 해법은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의 개별성을 별로 인정하지 않는 가족과 온갖 배타적 관계에 둘러싸여 집단주의적으로 살아가면서 육아, 교육, 주거 등은 다 각자 알아서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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