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뻔뻔한 엄마가 되기로 했다 - 엄마는 편안해지고 아이는 행복해지는 놀라운 육아의 기술 34
김경림 지음 / 메이븐 / 2018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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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동안 내가 읽었던 육아서는 엄마가 아이를 영어 영재로 키우기 위해 노력한 이야기, 혹은 이런 저런 걸 했더니 아이 성적이 상위권이고 무슨 대회에 나가 상을 탔다는 내용이 많았다.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니 엄마도 책을 내나보다 싶은 생각도 있었고. 

그런데, 이 책은.... 큰 아들은 아팠고, 그 큰 아들 돌보느라 작은 아들은 오히려 초등학교 저학년 때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다. 그런 엄마가 책을 냈다. 너무 솔직한 책이라 읽으면서 당황스럽기도 하고, 눈물도 나고, 오히려 큰 공감이 됐다. 

우리 부부는 공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라는 말을 많이 나눴는데, 정작 내가 임신을 한 후 남편과의 대화 중 남편이 상위 1%는 의미가 없고 1등만이 의미있다는 말을 해서 깜짝 놀랐던 적이 있다. 내심 다 내 자식만큼은 정상과 표준을 훨씬 뛰어 넘는 1% 혹은 1등을 원하고 있다. 하지만, 그게 어디 맘대로 되나. 인생이 자식이. 1%의 영재 자녀가 된 것도, 아픈 아들을 둔 것도, 순전히 우연이다. 자신의 교육방식이 좋았다고 자랑할 것도 기도빨이 좋았다고 할 것도 아니다. 인생 길게 봐야 한다.   

어제 산모교실에 갔는데, 강연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육아용품은 아기를 위한 것일까요, 양육자를 위한 것일까요?" 모두들 "아기"라고 대답했지만, 강연자는 결국 엄마를 위한 것이란다. 엄마 편하자고 이런 저런 용품들을 사들이는 거라고. 어쩜 육아 방법도 나는 아이를 위한다고 하지만, 혹시 나를 위한 육아를 하게 되진 않나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본다. 

그 동안 읽었던 공부 잘하는 아이 이야기도 좋았지만, 이 책을 읽길 잘했다 싶다. 쉼표같은 책이다. 


p17 책을 쓰는 도중에 '좋은 엄마'에 대해 생각하다가,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보는지 궁금하여 중학교 2학년인 작은아이에게 "네 생각에 엄마는 좋은 엄마니?"라고 물어보았다. 아이는 눈을 껌벅이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가 뭘 잘했기에 좋은 엄마야?"라고 다시 물었다. 아이는 "뭘 잘해서 좋은 엄마가 아니라, 내가 엄마를 좋아하니까 좋은 엄마지"라고 답했다. 그러면서 "엄마, '좋다'라는 건 사람마다 기준이 다 다르잖아. 그러니까 '좋은 엄마'라는 건 없고, 그냥 '내가 좋아하는 엄마'가 있는 거 아니겠어??"라고 말했다. 


p22 엄마로서 가장 큰 고통을 당한 듯 살아온 10년이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나는 고통의 주변인이었다. 고통의 중심부에는 몸으로 병을 직접 겪고, 신체 기능의 일부를 상실한 아이가 있다. 누구 못지 않게 헌신하고 기도했으나 결국 아이를 먼저 보내야 했던 엄마들도 있다. 고백하건대, 나는 그들이 겪은 고통이 얼마만큼인지 감히 알지 못한다. 다만 내가 고통의 중심부에서 비껴 난 것이 순전히 우연이듯, 그 고통은 내게 왔을 수도 있고, 언제든 내게 올 수도 있을 것이며, 누구에게도 갈 수 있다는 것만은 안다. 


p92 아이는 부모와의 관계에서만 자라지 않는다. 또래 친구도 있고, 선생님도 있고, 가까운 친척도 있다. 그러므로 부모와의 관계에서 상처를 받았대도 얼마든지 치료할 수 있다. 어른들도 몇 년의 상담과 분석을 통해 자신의 삶을 근본부터 바꾸어 내는데, 배우고 회복하는 일이라면 아이들이 누구보다 전문가 아니던가. 어쩌면 '결정적 시기'란 부모의 불안과 두려움, 게으름을 합리화하는 핑계일지 모른다. 부모는 완벽할 수 없고, 늘 실수한다. 중요한 건 할 수 있는 만큼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p162 그때 분명히 잘잘못을 가리고 책임을 지도록 민원을 넣거나 법적인 절차를 밟았어야 했다. '차별 금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내가 그 일을 했어야 했다. 갈등을 두려워하지 말았어야 했다. 혹시 다른 교사나 다른 학부모에게 누가 될까 봐, 내 아이가 피해를 받을까 봐 움츠러들지 말았어야 했다. 좋은 게 좋은 게 아니라는 걸, 나쁜 건 나쁘다는 걸 말했어야 했다. 


p205 그러나 어떤 경우이든 평생 엄마 노릇을 하는 인생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성장하는 삶, 자유로운 삶이란 더 많은 정체성을 경험하면서 풍부해지는 삶이 아니던가. 


p236 육아지 기자로 일했던 나는 어떤 게 '정상'이고 '표준'인지 비교적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 지식들은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얼마나 믿을 만한가?', '그 지식들은 실제로 아이를 '잘' 키우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되는가?' 같은 질문들은 한 번도 해 보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상'과 '표준'을 아이를 채찍질하는 잣대로 삼았다. 내심으로는 '정상'과 '표준'을 뛰어넘어 특별한 1%가 되길 바랐다. 


p241 육아 지침들이 진정 중요해지는 지점은 한 부모와 한 아이가 처해 있는 '맥락'에서다. 기질이 소심하여 자신의 욕구와 기분을 잘 표현하지 못하는 아이가 유치원에서 친구를 때리고 왔다면, 공격적인 행동에 집중할 게 아니라, 아이가 드디어 자기표현을 했다는 걸 먼저 기뻐해야 한다. (중략) 절대적으로 옳은 가치는 그 어디에도 없으며, 엄마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원칙대로 아이를 키우는 것이 나쁜 일일 리 없다. 


p285 영국의 문화인류학자 그레고리 베이트슨은 이런 상황을 '이중 구속double bind'이라고 정의하면서 정신분열증(조현병)의 원인이 된다고 설명했다. 베이트슨은 발리 섬 주민 사이의 상호작용을 관찰한 결과, 이 이중 구숙 상태가 주로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 나타남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어머니가 아이에게 "힘들면 쉬어야지"라고 말하고 돌아서면서 혼잣말로 "그래서 어떻게 살려고...." 한다면 아이는 쉬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라 혼돈에 빠지고 몸을 어떻게도 반응할 수 없는 정신 상태가 되는데, 이게 지속되면서 병증이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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