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량한 차별주의자 (리커버)
김지혜 지음 / 창비 / 2019년 7월
평점 :
품절


내 자신이 "갑"의 위치보다는 "을"의 위치에 서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고, 나름 학벌차별, 지역차별을 겪어봐서 나는 차별에 반대한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여기 나오는 예시를 보면, 나 역시도 분명 선량한 차별주의자였다. 

'결정장애'란 말을 아무생각없이 썼고, "이제 한국 사람 다 되셨네요~"같은 비슷한 뉘앙스의 말도 많이 썼으니까. 

어떤 상황에서 차별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근조근 설명하는데 정말 무릎을 치게 만든다.

뭔가 기존의 것에 반하는 의견을 제시하는 사람에게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고 비난할 게 아니고, 또 차별적 발언을 듣는 상황에서의 대처도 중요하다. 

사실, 우리는, 아니 적어도 나는 차별 당하는 쪽에 서고 싶지 않다. 그래서 슬슬 대다수의 의견에 동조하는 지도 모른다. 그런데, 정말 내가 다시 생각해야 할 것은 이제 차별 받고 싶지 않다보다 차별하지 않겠다 아닐까?  


p10 이 끝도 없는 평행선을 어찌하면 좋을까?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민사회에서는 차별금지법을 제정하라고 요구하지만, 정부와 국회는 '사회적 합의'를 이루라며 손 놓고 가만히 있는 상태이다. '


p79 우리의 생각이 시야에 갇힌다. 억압받는 사람은 체계적으로 작동하는 사회구조를 보지 못하고 자신의 불행이 일시적이거나 우연한 문제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차별과 싸우기보다 "어쩔 수 없다"며 감수한다. 유리한 지위에 있다면 억압을 느낄 기회가 더 적고 시야는 더 제한된다. 차별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을 이해하지 못하고, "예민하다" "불평이 많다" "특권을 누리려고 한다"며 상대에게 그 비난을 돌리곤 한다. 


p91 유며, 장난, 농담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누군가를 비하함으로써 웃음을 유도하려고 할 때, 그 '누군가'는 조롱과 멸시를 당한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놀려도 되는' 특정한 사람들에게 집중되고 반복된다. 우리가 누구를 밟고 웃고 있는지 진지하게 질문해야 하는 이유이다. 


p98 "여자는 공부 잘해봐야 소용없어. 남자가 공부를 잘해야 큰일을 하지." 옆에 앉아 있던 학생들은 이 말을 유쾌한 웃음으로 받아넘겼고, 나도 그랬다. 돌아오는 길에 나는 그 일을 생각하며 뒤늦게 화가 나기 시작했다. 그 말을 한 원로 변호사에게 화가 난 만큼 그 자리에서 웃는 모습을 보인 나 자신에게도 화가 났다.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말에 웃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문제제기를 할 만큼 순발력이 없다면, 그런 상황에서 웃지 않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소극적 저항이라고 생각했다. 


p143 무수한 차별이 싫다는 감정에서 나오고, 그 감정이 누군가의 기회와 자원을 배제할 수 있는 권력으로 작동한다. 주류 집단이 누군가를 싫다고 지목함으로써 '낯선 것'을 솎아내는 판옵틱한 감시체제가 작동을 시작하고 공공의 공간을 통치한다. 


p151 민주주의가 실현되려면, 기본 전제로 그 안의 모든 구성원이 평등한 관계를 가지고 동등한 입장에서 토론할 수 있어야 한다. 


p188  차별을 둘러싼 긴장들은 '내가 차별을 하는 사람이 아니면 좋겠다'는 강렬한 욕망 혹은 희망을 깔고 있다. 정말 결정해야 하는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불평등과 차별을 직시할 용기가 있느냐는 것이다. 차별에 민감하거나 둔감할 수 있는 자신의 위치를 인식하며, 너무나도 익숙한 어떤 발언, 행동, 제도가 차별일지도 모른다는 의심으로 세상을 볼 수 있는가? 내가 보지 못한 차별을 누군가가 지적했을 때 방어하고 부인하기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경청하고 성찰할 수 있는가? 


p189 우리 생애에 걸쳐 애쓰고 연마해야 할 내용을 '차별받지 않기 위한 노력'에서 '차별하지 않기 위한 노력'으로 올기는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