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 백 -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박창진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9년 2월
평점 :
품절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책은 회사 생활을 10년 이상 해 본 사람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만하다.

회사 내 갑질, 내부 고발자, 회사 갑에게 찍힌 사람을 스스로 배척해 내는 을들....  이런 일들을 직 간접적으로 겪어본 사람이라면 잘 안다. 그래... 머리로는 잘 안다는 것이지, 내가 약자를 돌보거나 내부고발을 할 용기는 또 없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하고 마음이 아팠다. 

이 책을 사회 초년생들에게 특히 대한항공 신입사원들에게 쥐어준다면 얼마나 공감할 수 있을까? 본인은 절대 이런 일을 겪지 않을거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자신은 아닐 거라고 자신하지 않을까? 

부당함과 불합리함보다는 취직이 우선이고, 직장 생활을 유지하는 것이 우선이니까. 

 

갑의 부당함에 대항할 수 있으려면 을이 뭉쳐야 하는데, 잘 될 수 있을까?

돈 앞에, 권력 앞에 약한 게 인간이니까. 

 

회사에, 특히 재벌기업 입사를 원하는 취준생이 이 책을 읽어보길 바란다. 혹은 입사가 확정된 사람들이. 앞으로 펼쳐질 회사 생활에 어떤 고난이 닦칠 지 모르지만, 인간의 존엄성은 잃지 말자고. 그리고 을끼리 제발 그러지 말자고. 

 

p115 오로지 갑과 을로 규정된 수직적인 관계가 만들어지다 보니 부당한 거짓 진술 요구를 받은 순간에도 나도 모르게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내뱉고 말았다.

 

p119 한때 법조인들에 대한 나름의 존경심을 갖고 있었다. 법이라는 도구로 세상의 옳고 그름을 가리고, 누군가의 삶의 궤도를 바꿔놓기도 하는 그들은 마치 범접할 수 없는 다른 세계의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그날 법정에서 마주한 변호사들로 인해 내 생각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의뢰인을 위해서라면 없던 일도 있었던 것처럼 둔갑시키고, 피해자를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가해자의 죄를 없애려는 그들의 형태를 보며 이루 말할 수 없는 배신감을 느꼈다. 그리고 그날 그들의 매서운 공세로 받은 모멸감과 수치심 때문에 정신은 더욱 피폐해졌다. 이는 그 뒤로 우울증과 공황장애가 심해지는 빌미가 되었다.

 

p135 이상하게도 우리 사회는 개인보다 조직을 우선적으로 보호받아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조직을 위해서 개인이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논리도 심심찮게 보인다. 이것이 유교적 가부장제에서 비롯했는지, 식민지와 전쟁 그리고 군사독재 등 굴곡진 현대사에서 비롯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러한 기형적인 사고방식이 우리 사회에 매우 깊숙이 뿌리내리고 있다는 건 명백하다.

 

p136 무릇 사과를 하려면 우선 피해자 입장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 피해자가 아직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면 안정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게 도리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불리한 상황을 타개할 목적으로, 일방적으로 미안하다는 메시지를 내던지고 가는 행위는 결코 진심 어린 사과라 할 수 없다.

 

p147 회사 눈 밖에 난 사람과 가까이했다간 자신도 낙인찍힐 것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된 조심스러운 행동이라는 것을 잘 안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로는 이해해도 가슴 한구석에서 올라오는 외로움까지 어떻게 할 수는 없었다.

 

p149 그야말로 노예의 본능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동료들과 다른 위치에 있는 우월한 존재가 되었다고 생각할 것이다. 회사가 씌워준 감투가 실은 노예를 다루기 위한 사슬이라는 것도 모른 채 화려하게 도금됐다는 이유로 왕관이라 착각한다. 주인의 눈 밖에 나는 순간 그 황금색 사실이 자신들의 숨통을 조이는 도구가 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말이다. 슬픈 현실은 이렇게 노예의 삶을 자처하는 이들이 의외로 많다는 점이다.

 

p161 누군가를 위로하고 싶을 때는 그저 아무런 말없이, 호들갑 떨지 않고 조용히 일상의 여느 날들처럼 곁에 있어주기만 해도 충분하다는 것을 그때 처음 알았다.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전화 걸고 싶어지는 그 친구들에게 차마 고맙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p243 자신의 권리와 인격이 처참하게 짓밟히던 그 순간조차 노예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다. 그렇게 내면화된 노예의 습성을 깨닫고 벗어나기까지는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업무적 불이익, 사내 따돌림과 인격 살인, 사회적 매장을 당했고, 그들이 내 숨통을 끊을 치명적인 한 방만을 남겨두고 있을 때 비로소 내 위치를 자각했다. 그리고 그 후로 모든 사람이 알고 있듯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p245 난 더 이상 그들이 나의 존엄성을 훼손하게 놔둘 수 없다. 땅콩회항 사건 이후 내 삶은 오로지 존엄성을 지키기 위한 싸움의 연속이었으며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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