쉿, 나의 세컨드는 - 김경미 시집
김경미 지음 / 문학동네 / 2006년 3월
평점 :
구판절판


사랑, 그러니까 믿음, 소망, 사랑 중에서 으뜸이라는, 사랑이란 단어를 참 오래 전부터 '사랑'했었다. 고등학교 때 만든 시화집의 이름조차 'LOVE'였고, 존 레논의 'LOVE'는 애창곡이었으며 한동안 신문의 구석탱이를 장식했던 귀여운 일러스트와 'love is~'라는 사랑의 의미를 슬쩍 전달해주는 코너는 스크랩을 해서 코팅까지 해 놓을 정도였으니까(도대체 그때 코팅한 책받침 love is~는 어디 갔을까? 생각해보니 선물 받은 것도 같고, 내가 만들었던 것도 같고 잘 모르겠지만;). 그렇다고 내가 '사랑'에 목숨을 걸만한 인물은 안 되지만 어쨌든 그때부터 주~욱 '사랑'은 좋았다. 그래서 아마도 그래서! 책을 읽어도, 영화를 봐도, 사람을 만나도 사랑과 관련해서는 무조건 관심을 보이는 것 같다(아, 서두가 너무 길었네;). 

지난번에 여행을 갈 때 어떤 책을 들고갈까, 고민을 하다가 과연 여행 가서 책을 읽을 시간이라도 있기나 할까, 생각해보니 전혀 그렇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가벼운 책을 하나 넣는다는 것이 오소희의 <사랑 바보>였고, 그것도 아쉬워(가져간 책을 다 읽고 읽을 책이 없을 때의 그 난감함은 당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책꽂이를 째려보다가 고른 것이 김경미 시인의 시집이었다. 그 중 밑줄 잔뜩 그어 놓은 <쉿, 나의 세컨드는>. 시집은 다 읽었다고 던져두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디서든 읽고 또 읽을 수 있으므로 가져간 책을 다 읽었어도 난감한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시 여행을 가서 책을 읽을 시간은 당연 없었지만 시집을 읽을 시간은 많았다. 크지 않고 두껍지 않아 작은 가방에도 들어가니 어디든 들고 다니며 쉴 때마다 꺼내 읽을 수 있었다. 다시 읽은 시집은, 내가 정말 이 시집을 다 읽어보기나 했던 건가 싶을 만큼 새롭게 그은 밑줄이 많았는데, 그 점이 나도 놀라웠다. <쉿, 나의 세컨드는>이 다른 시집보다 특별히 더 맘에 들었고 내 맘을 흔들었던 것은 사실이나 어째서 지난 번엔 들어오지 않았던 시구가 이렇게도 많았는지. 김용택 시인의 시집 제목처럼 정말 '시가 내게로' 올 때가 있긴 한 것 같다. 

김경미 시인의 <쉿, 나의 세컨드는> '자아의 처절한 고통'이 담긴 시집이란다. 공감이 간다. 한데 내겐 그 고통이 온통 '사랑'의 실패로 인해 오는 자기 반성, 자학, 실패, 아픔으로 읽혔다. 하긴 내가 찾아 읽는 시라는 건 모두 그렇다, 시인의 의도와는 상관 없다. 내가 그 시를 어떤 식으로 읽고 이해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일 뿐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실연을 당했거나 아픔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천생이 사랑이라는 감성으로 꽉 차 있는 나로서는 매일매일이 사랑이기 때문이다. 아직 철이 안 든 탓이다. 

이번에 다시 읽으며 느낀 것은 예전에 내가 공감했던 그 사랑의 고통으로 인한 '자학'의 시들이 삶에 대한 새로운 해석으로 다가온 점이다. 김경미 시인이 느끼는 '고통'들이 사랑을 넘어서 나라는 개인에 대한, 이래도 저래도 어쩌지 못하고 한없이 빨려들어가는 삶의 고통에 대해 진짜 '처절하게' 혼란스러워했다는 점이다. 이런 것,  

(...) 고통, 식빵처럼 가장자리 때어버리지 말 것/ 상실의 딱 한 가지 반찬만 일 것/.../한 모금 식후 물처럼 또 한 번 삶, 을 잘 넘길 것 

_식사법이란 시다. 전에는 맘에 들어오지 않았던 시였다. 한데 요즘 삶에 대해 '멸치똥 같은 날들'에 대해 '생의 규칙적인 좌절'에 대해 많은 생각이 있었던 탓인지 읽는 순간 저절로 밑줄을 그어댄 것이다. 또한 _술을 많이 마신 다음날은의 마지막 행도 그렇다. 

(...)아무래도/ 책상 밑이나 신발장 속 같은/ 좀더 깊은 데 들어가 자야겠다/ 그러한 동안 그대여 나를 버려다오 아무래도 그게/ 그나마 아름답겠으니 

경험이 전해준 고통이랄까, 어느 틈에 늘어버린 술을 마시느라 의도한 것인지 사고를 친 것인지 다음날 일어나 당황해 하고 보니 시가 예사로 보이지 않았던 것. 맞아! 이런 젠장, 밑줄 좌~악 

또 이런 것, 

(...) 나는 좌절하는 자세가 좋다/ 바닥에 이마를 대고/ 유리창처럼 투명하게/ 뿌리의 세계를 들여다본 것들/ 마치 하늘에 엎드려 굽어내려보는 신 같은 

마치 바닥을 봐야만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일까, 좌절하고 좌절한 후에야 비로소 다시 일어날 수 있을 것만 같은. 그래서 _나는 좌절하는 것들이 좋다 며 고개 끄덕거렸다. 그리고 _봄, 군인처럼은 그런 좌절 끝에 느끼는 나에 대한 감정이었다. 

(...) 난 아무것도 아니다/ 난 정말 아무것도 아니다/ 이 미물은 맹세코 아무것도 아니어서 계급이여/ 이제라도 그 과분함에 충성하겠다/ 묵묵한 모든 것들에게마다 진심으로 충성하여/.../ 

주말에 집에 내려오며 다시 이 시집을 들고 왔다. 어찌된 것인지 또 나는 다른 시에 밑줄을 그었다. 맘 같아서는 시집의 시를 통째로 베껴보고 싶다. 아직도 이 시집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 하며 나와 같은 공감을 갖을 사람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혼자 고통스러워하긴 싫다는 이기적인 생각?! 그래서 쓰게 된 리뷰아닌 리뷰. 그리고 다시 시집을 펼쳤다. 

나는 왜 극장처럼 어두워서야/ 삶이 상영되는 느낌일까// 극장 매점의/ 팝콘처럼 하얗고 가벼운/ 나비 같은 생은 어떤 감촉일지// 가끔씩 나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병아리 깃털이나 잎일 수 있는지/ 후, 불어보고 싶어진다 _방명록 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