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노코와 마들렌 여사
마키메 마나부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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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들렌 여사는 툇마루에 누워 앞으로 쭉 뻗은 앞다리에 턱을 얹은 채 두 여자애가 다회를 준비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스즈가 방석을 두 개 깔자, 가노코가 쟁반에 과자 접시와 찻주전자를 얹어 위태로운 발걸음으로 들어왔다.
"저런, 아니외다. 손님은 그냥 계시구려."
일어나 거들려 하는 스즈를 가노코가 제지하고 방석과 방석 사이에 조심조심 쟁반을 내려놓았다.
"그럼 다회를 시작하겠소이다."
가노코는 스즈의 정면에 마주 앉아 자세를 갖추었다.
"여기 과자를 준비했소이다."
"생큐외다."
"덥소이까?"
"약간 덥소이다."
"그렇다면 선풍기 스위치를 켜겠소이다."
"송구하외다."
쟁반을 가지러 가기 전에 가노코는 '선생님이 읽어주신 책에서 앤이 한 것처럼 어른스러운 다회를 하자 앤 못지않게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로 해보자'고 스즈와 사전회의를 했다. 보아하니 '정식으로, 어른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비결은 좌우지간 말끝에 '-외다'를 붙이는 것인 모양이었다. 

 

이 사랑스러운 책, 『가노코와 마들렌 여사』를 읽으며 어찌나 즐거웠는지. 결혼은 하지 않았지만 조카를 키워본 입장에서 가노코처럼 '게릴라성 호우'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 '고릴라 아닌 거'라고 말하는 걸 이해하고, 스즈가 콧구멍에 엄지를 찔러 넣은 채 나머지 손가락을 팔랑거리며 '코 나부나부'를 하는 거나, 찻기둥은 못 세우고 또~옹기둥을 세우며 좋아라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아, 정말 눈물이 날 정도로 즐거웠다. 이건 너무 아이들스럽잖아!  

더구나 저 위의 문장처럼 소꿉장난이랄까, 딴에 <빨간 머리 앤>에 나오는 상황을 재연하는 설정이라 해도 아이가 아니고서는 할 수 없는 재미난  행동들. 조카와 이미 저런 경험을 해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그 재미가 어떤지를 알기에 읽으면서 내내 키득거렸다. 맞아맞아, 조카랑 나도 저렇게 계속 주고받았지. 킥킥, 아이들은 다 이런 놀이를 하는구나!(한데 난 아이가 아닌데 왜?) 

난 조카에게 고모가 아니고 친구다. 친구 중에서도 아주 말 잘듣는 친구. 어찌나 말을 잘 들어주는지 언젠가 조카가 이렇게 물었다. "고모는 왜 한번도 싫다는 말을 안 해?" _어이구, 내가 왜? 너한테 싫다는 말을 하겠니. 이 세상에서 내가 제일 사랑하는 사람인데. 난 네가 원하는 것은 다 들어줄 거야! 이 대답에 조카는 좋아라 했을까? 뭐 그건 모르겠지만, 아무튼 의기양양한 것 같기는 하다. 

짧게는 일주일에 한번, 길어야 삼 주에 한번 우리가 만나는 주말은 그래서 내가 조카와 또래가 되는 행복한 날이고 그 덕분에 난 아직 철이 들지 않은 것 같다. 

뒷부분이 좀 짠해, 라고 책을 추천해준 친구가 말했지만 이 정도의 짠함은 당연한 것. 일본소설 좋아하지 않다고 늘 입버릇처럼 말하지만 가끔, 그래 아주 가끔 이렇게 예쁜 이야기를 담은 소설을 읽으면 기분이 아주 좋아진다. 책을 덮은 후에 조카에게 카톡을 날렸다. "꼭, 읽어보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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