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려라, 아비
김애란 지음 / 창비 / 2005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이 책의 제목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아비'가 '아버지'임을 미처 알지 못했다. '왜 작가는 아버지가 아닌 낮추어 이르는 아비로 칭하였을까...' 했던 나의 궁금증은 그녀의 책을 읽고서야 답을 얻었다. 그렇다고는 하나 나는 작품들 속에 간간이 모습을 드러내는 아버지들의 모습이 낯설기만 하다. 내 가슴에는 용광로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와 쇳가루 날리는 현장에서 주말도 없이 날마다 야근을 하시며 가족을 위해 헌신하셨던 한 아버지의 모습만 기억되어 있을 따름이다. 아버지의 그늘 밑에서 자랄 때는 부모가 자식을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붇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으며 내가 자식을 낳아 부모가 되고서야 그 자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게 되었고, 세상에는 또 다른 아버지의 모습이 존재하고 있음을 살피게 되었다.

 이 책은 독자에게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현대를 살아가는 자신의 삶에 생각해 보게 한다. <달려라, 아비>에서 태어나던 날 세상 밖으로 달려 나가버린 아버지나 <사랑의 인사>에서 놀이공원에서 실종된 아버지, 그리고 <그녀가 잠 못 드는 이유가 있다>에서 어느 날 불쑥 나타나 TV리모콘이 삶의 희망인 냥 붙들고 하루 종일 TV에만 매달려 있는 아버지... 그러나 자식들은 그런 아비를 원망하거나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시각으로 해석할 따름이다. 그리고 이것이 마음을 할퀴고 간 상처나 큰 충격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고 위안을 삼아 살아가는 힘을 지탱하는 방식이다. 세상 밖으로 달려 나가버린 아비를 둔 작품 속의 그들은 그렇게 자신의 상처를 감싸 안으며 살아갈 것이고, 나는 내 안에 굵은 기둥으로 자리한 아버지에게 깊은 감사를 표하련다.

 <나는 편의점에 간다>는 정형화된 도시인의 삭막한 삶과 인간관계의 일면을 젊은 작가의 감성적인 필체로 그리고 있다. 불빛이 깜박거리면서 검은 선에서 상품의 정보를 읽는 바코드검색기에 의해 읽히는 개인의 사생활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같은 상점에서 같은 물건들을 사는 사람은 많이 있기 때문이다. 이 책에 실린 단편들 속에 존재하는 '나'는 이렇게 몰개성적인 인간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데, <노크 하지 않는 집>에서 이름도 없이 1호실~5호실 아가씨로 칭해지는 다섯 사람이 결국은 하나의 모습을 취하고 있는 것에서 현대인의 몰개성과 획일화된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섬뜩해지고 만다.

 <영원한 화자>에서는 자신이 어떤 인간인지를 자주 생각해보고 질문하는 '나'를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누군가로 규정해 보려 하는 사람을 만날 수 있다. 지하철에서 조우한 '그녀'는 '나'에게 밀착하여 기억나지도 않는 과거의 인물에 대해 대화를 시도하지만 그 둘의 대화는 서로 다른 방향을 쳐다보며 서로 다른 기억을 떠올리듯 불협화음만 연출한다. 합일점을 찾지 못하는 이 둘의 대화는 독자로 하여금 언제 그들의 공유했다고 믿는 기억이 가짜임이 드러날까 하는 아슬아슬함을 느끼게 한다. 사실 '나'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 글을 읽으며 지루한 관계가 만들어내는 불협화음 속에서 서로 다른 목소리를 내며 살아가는 현대인들 속의 나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작가가 들려준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작품은 바람에 의한 포스트잇의 일렁임으로 잠들어 있는 물고기가 금방이라도 기지개를 켜며 헤엄칠 준비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종이물고기>이다. 무수한 생각과 글들을 조각조각 이어 붙여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작가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고나 할까... 어쩌면 내 안에도 단편적인 언어와 문장과 기억을 담은 수많은 포스트잇이 일렁이고 있을지도 모를 일. 그 종이 비늘들을 지닌 물고기를 깨워 세상 밖으로 풀어줄 날이 나에게도 올까? 나에게 그런 일렁임을 가져다 준, 젊은 작가 김애란과의 또 다른 만남을 기다려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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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드 2006-01-13 00: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땡투는 눌렀는데, 언제 살지는 몰라요. 포스트잇 이야기 좋네요. 전 '아비'가 아비정전의 그 '아비' 인줄 알았어요.

아영엄마 2006-01-13 00: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그렇지만 책정보를 안 읽어보고 제목만 보면 '아비'를 사람 이름 정도로 알기가 쉬워요. 앞의 '달려라'라는 문장때문에 더 그런 듯 합니다.

깍두기 2006-01-13 01: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책 엄청 여기저기서 사라고 부추기는구만요.
내가 언제까지 버티나 함 볼까^^

돌바람 2006-01-13 02:0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 종이 비늘들을 지닌 물고기를 깨워 세상 밖으로 풀어줄 날이 아영엄마님에게도 오기를...

Kitty 2006-01-13 0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샀어요 홍홍홍 사자마자 친구가 빌려갔지만 ^^;;;

바람돌이 2006-01-13 04: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호오~~~ 이게 갈수록 압박이 심해지는군요. ^^

mong 2006-01-13 07: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괜찮게 읽고 동생에게 선물했어요
^^

진주 2006-01-14 21: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또..이소룡 흉내내는 외마디 소린줄 알았죠~ 아뵤~~~~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