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너를 만나는 일은 전쟁에 나가는 일처럼 되어버렸나 하고 생각한다.

아무리 용감히 맞서 싸워도 지게끔 결정지어진 부당한 전쟁의 패잔병처럼

나는 하루 종일 억울한 패배감에 사로잡힌다.

 

너는 이제 나에게 독인가 하고 생각한다.

한때는 더없이 친절했던 너

한때는 누구보다 서로에게 착했던 너를 만나고 난 후

온몸에 독이 퍼져나가는 것만 같이 나는 하루 종일 여기저기가 아프다.


하루 종일 덜컹덜컹 소리가 나고 눈알이 빠질 것만 같은 두통이 계속되고 

하루 종일 역겨움에 속이 뒤집힐 것만 같이 울렁거리고 

하루 종일 온몸과 온마음이 상해간다.


너의 독은 너무도 침착하게 어디 한군데 놓치지 않고 구석구석으로 퍼진다.

너의 독은 너무도 사려깊고 공평하게 어느 곳도 무사하지 못하게 퍼져 나간다.

너는 이제 나에게 독.  완전무결하다.  너의 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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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dan 2005-11-30 21: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덕분에 어떤날의 '11월 그 저녁에'를 들을 수 있었어요.
방금까지 그 노래를 듣다가, 오늘이 11월의 마지막 날이고 이 노래를 알려주신 분은 레이니 님이었다는 걸 떠올렸는데, 꼭 그래서는 아니지만 어쨌든 인사 남겨요.
글 잘 읽고 가요.

rainy 2005-11-30 23: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제가 좀 '젖는'노래들을 밝혀요..
즐찾이 열댓명이 되었길래 저도 살짝 가슴철렁하면서(^^)
'숨어있기 좋은방'이란 서재소개를 바꿀까부다 생각하던 차에
저 글을 올리고 나니 , 우연인지 두분이 나가셨길래..
잠시 생각했어요.. 아, 글에서도 '독'이 퍼져나갔나부다..
그 독을 누군가는 피하고 싶었나부다..라고..
겨울을 미치도록(아, 진부한 표현이닷) 좋아해요..
겨울엔 착해질 수 있을 것 같아요 ^^

sudan 2005-12-01 00: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두분은 왜 나가셨을까. 그럼 저는 저 독에 중독된건가봐요.

rainy 2005-12-01 15: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 안돼요 수단님..
제가 좋은 독으로 개발해볼테니.. 나쁜 독은 멀리 하셔요^^
 





가을은


가을은 노을빛에 물든 단풍으로

우울한 입맞춤 같은 은행잎으로

가을은 손끝을 스쳐가는 바람 속에

허한 기다림에 꿈을 꾸는 이슬 속에

내가 거친 숨결의 사랑이란 이름으로

굳게 닫힌 분노 속에 살아갈 때

다가가라고 먼저 사랑하라고 다가가라고

말해주네


가을은 회색빛에 물든 거리 위로

무감히 옷깃을 세운 모습들 위로

가을은 낙엽을 쓸고 가는 바람 속에

텅빈 하루를 보낸 고개 숙인 마음속에

내가 바쁜 걸음의 희망이란 이름으로

가슴 가득한 절망 속에 살아갈 때

화해하라고 나의 어리석음과 화해하라고

말해주네

화해하라고 말해주네

<동물원>


갑자기 '풋'하고 웃음이 난다.  나를 아주 잘 아는 ㅁ양이 떠올라서. 그녀는 말할 것이다. ' 또 이노래유?' 하지만 어쩌랴.. 때는 가을이고.. 나는 나의 어리석음과 한번도 제대로 화해하지 못했어서.. 매년 가을이면 새삼 이노래가 이토록 아프니 말이다.. ㅁ양~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그게 될때까지 기다려 줄수 있는거지? ^^

사진은 지난주에 찍어두길 잘했다.. 그 사이.. 비가 내렸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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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1-09 20: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짜쿵 몰카 찍고 다니는군.
은행잎이라고 그걸 모르는 줄 아느뇨!
ㅁ양은 죽어도 기다릴 것이라네, 걱정 마시게나. 게다가, ㅁ양은 이미 당신이 모르는 사이 그 화해를 매번 하고 살아간다고 믿는다네.

rainy 2005-11-14 0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응.. 타협이 아니라 화해라면.. 좋겠지.. 모..

sudan 2005-11-23 23: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겨울 노래랑 겨울 사진을 올려주셔야 할 때가 됐어요. 겨울에 어울리는 동물원의 노래가.. 곰곰.

rainy 2005-11-24 10: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수단님 ..
어떤날의 11월 노래 하나 올려요 ^^
 

 

내일, 아니 오늘 새벽에는 김밥을 싸야 한다.

지금은 새벽 3시..

조금이라도 자는 게 나을까,

잠드는데 어차피 최소 1시간인데 그냥 깨어 있는 게 나을까..

그게 결론이 나지 않아 잠을 청할 수가 없다.

이건 도대체 무슨 병이람..


이십년 가까이 지나간 한 시절에 관한 이야기들이 

기억의 수면위로 떠오르는 일이 가까운 사람을 통해 있었다. 

그 이야기는 스토리 상으로 나에게 전혀 무거운 이야기가 아니다.

누구나 지나왔을.. 지나오면서 누구나 그랬을...

그때는, 그 시절에는 내가 그랬었지.. 하면서

어쩌면 웃을 수도 있을.. 아니 즐겁게 웃기도 했었던..

십대를 마감하고 이십대로 넘어가야만 하는 그 시기에 누구나 가지는

견딜 수 없던 존재의 불안함.. 그 불안함에 쫒기던 거친 시간들..

그런 시간들 속에서도 분명히 존재했던 아주 명징한 기쁨들..


그런데 지금의 나는 그 때를 기억하면서 웃을 수가 없다..

구체적인 어떤 것 때문에 그럴 수없는 것이 아니라

아직도 나는 그 시절에 느꼈던..

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우수수 빠져 나가듯 뭔가를 놓쳐야 했던

속수무책의 심정으로부터 벗어난 적이 없는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건 어쩌면 그 스토리가

그 이후로 계속 반복되는 실패의 징조 또는 전주곡이었을 거라고 

내 무의식이 내내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걸 오늘 새벽 나는 굳이, 참으로 굳이 글로 풀어 쓰고 있는 것이다...


그 이야기를 다르게 해석하면 그뿐인데..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는데..

내가 그 이후로 다르게 살았다면 그뿐인데.. 다르게 살 수도 있었는데..

나는 생긴대로 살아왔고.. 생긴대로 살아 왔으므로.. 극복하지 못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이십년 가까이나 지나버린 이야기를 가지고 새삼스레

어떤 기승전결을 필요로 하는 내 자신이

또 그 오래된 이야기에다 온갖 이유를 뒤집어 씌우는 내 자신이..

문득 너무 구질구질하다..

김이 샌다...


내가 가벼운 사람이었으면..

내가 이리도 무겁고 복잡한 사람이 아니었으면..

좋겠다고.. 정말..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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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0-25 13:0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언니가 지금 있는 그대로 좋은데,
언니는 누가 뭐래도 언니가 스스로 만족할만한 경지가 되어야 자기애가 비로소 실현되는 형인가봐.
어쩌면, 일련의 일들에서 생기는 딜레마보다는,
그런 고고한 자족감에의 갈망 때문일지도...

rainy 2005-10-26 13: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내 생각에 그건 늘.. 결핍의 문제인 것 같아..
우리가 늘 [father]에 관련해서.. 영화를 보거나, 주위에서의 일들을 접할 때..
일단.. 허기를 느껴버리는 것..
논리도 부족하고, 정확한 근거도 부족하지만..
그냥 허기가 느껴져서 가슴이 뻐근해 지고 다리가 후들거리는 것처럼..
그래서 어쩌면 니말이 맞을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을 거야..
단 한번만 배부른 충족감을 느낄 수 있다면..
어쩌면 그 다음부터는 많은 것이 달라질 텐데.. 라고..
늘 비겁하게 결론짓고 마네..
 

 

           비망록

 


     남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남보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가난한 식사 앞에서


     기도를 하고


     밤이면 고요히


     일기를 쓰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구겨진 속옷을 내보이듯


     매양 허물만 내보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사랑하는 사람아


     너는 내 가슴에 아직도


     눈에 익은 별처럼 박혀 있고




     나는 박힌 별이 돌처럼 아파서


     이렇게 한 생애를 허둥거린다


                      <문정희>



할 수만 있다면

남을 사랑하는 것보다 나를 더 사랑하면 좋겠어.

나의 허물이 매번 그토록 드러난들 또 어때..

가볍게 가볍게..

힘주지 않고.. 그렇게 살고 싶어.

박힌 돌 따위에는 결코 마음 두지 않고

더구나 절대로 아파지지 않도록..

그냥 시들시들..

코웃음이나 쳐가면서.. 그렇게 살아졌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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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0-21 12:1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 좋은데, 시들시들 말고 활짝 피어서 !

rainy 2005-10-21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게 포인트라오 ^^;;;
 



아침 고요 수목원.  가을 짧았던 여행길에 우연히 들르게 되었던.

 



내가 좋아하는 마가렛 종류의 꽃.

 



이름을 모르겠는. 원래 이뻐하는 종류는 아니지만. 함께 모여 있으니 참 고왔다는.

 



마치 꽃 시장의 양동이에 담긴 듯 사이 좋게 모여있던 . 싱싱한 국화들.

 

돌아내려오는 방향..  마음에 닿아왔던 길..  오랜만인 깊은 호흡.
델마와 루이스는 못되었지만..  너와 함께여서 평화로웠던 여행..  고마웠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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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10-18 08:5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히히
이제보니 나름대로 올릴 것을 염두에 두고 찍은거 같기도 하구만. 멋지당!

rainy 2005-10-18 16: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 이렇게 주욱 펼쳐 놓으니까.. 뿌듯하다^^
그날의 공기와 햇빛과 바람이 사진에 담긴 것 같아서 너무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