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



     비 오는 날 차 안에서 음악을 들으면, 누군가 내 삶을 대


    신 살고 있다는 느낌. 지금 아름다운 음악이 아프도록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어야 할 곳에서 너무 멀리 떠나


    왔다는 느낌.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될 삶, 누구의 것도 아


    닌 입술, 거기 내 마른 입술을 가만히 포개어 본다.


 

<이성복>

 

이렇게 시라도 한편 떠올리고

옮겨 적는 날은

그래도 한결 나은 거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쓰고 싶어지고

뭔가 읽고 싶어진다는 건

조금씩 나아진다는 거라고..

 

하루 종일 하늘이 짙고 무거웠던 날

그 무게를 이기지 못한 비가 온종일 내렸던 날

뜨거운 차를 앞에 놓고

숨을 고르고 있는 이 시간은

온전히 한명의 시간입니다.

아, 한명의 시간을 얼마만에 떠올리는지..

 

무엇보다 내 삶은

굳이 내가 살지 않아도 되는 삶이 아니라 

꼭 내가 내 발로 살아내야 하는 삶인 것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난 참 잘 살아내고 있습니다.

세상 누구라 해도 나만큼은

세상 누구라 해도 이 보다 더는

이 상황을 잘 건너갈 수 없을 거라고..

내 자신을 다독입니다.

그 다독임에 취하는지 마음이 금방 뜨뜻해져..

창문을 조금 엽니다..

더 이상 들리지 않는 빗.소.리.

하늘은 그 무거움을 조금은 덜어내었나 봅니다. 

저는.. 조급해 하지 않기로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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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수맘 2007-04-21 10: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편의 시를 떠올리는 모습이 저에겐 낭만적으로 보여요.
저도, 항상 자신에게 천천히를 내되어봐야 겠어요.

rainy 2007-04-21 10: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살다보면 마음이 유난히 초조해질 때가 있는데
그때야말로 '천천히 천천히'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 싶어요.

음..시나 음악이.. 저에게는 뭐랄까..
그렇게 낭만적이거나 한 것은 아닌 것 같아요.
말하자면.. 찬물에 말아먹는 맨밥같은..
오히려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일이 저에겐 훨씬 여유로운 대상(?)이랄까
여유를 가져야만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비로그인 2007-04-21 1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 참 좋군요.
마음이 각박해서 시를 통 못읽는데, 알라딘에 오면 이렇게 좋은 시들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어 참 기쁩니다. 적어주신 노트도 참 인상적이구요...:)

rainy 2007-04-21 15: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체셔고양2님..
저는 마음이 각박하고 답답하거나 뿌옇다고 느낄 땐
비슷한 걸 느끼면서도 나는 딱 그렇게 표현을 해내지 못했던,
그래 이거지.. 싶은 시를 떠올려요. 찾아보기도 하고요 ^^
이상하게 그렇게 시에서 직면하면 좀 낫달까요?
천천히 여러번 읽다보면 내 마음이 그마음 같고 ㅎㅎ
시가 나를 위로 하는 것 같고..
그나저나 날씨가 정말 화창해요. 조금 움직이면 이마에 땀도 약간 송글거리고..
주말~ 잘 보내세요. 이번주도 꽃미남? ^^

benie 2007-09-28 22: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사이는 고3때 들은 시의 제목을 날마다 한 번 읽어 보고 시작합니다...그 제목은 "오늘 부른 나의 노래는"...나의 하루를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멋진 글인듯 합니다. 그때 울 담임의 너무나 미운 댓구도 같이 생각나 넘 싫지만..뭐냐고요..나훈아의 "잡초"...ㅠㅠㅠ

rainy 2007-12-14 12: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한해가 저물고 있구나..
그냥 오늘은 친구, 올 한 해 수고 많았다.라고 말해주고 싶다..
 

 

 노래


 내가 사는 등촌동에는 노래 한 가닥이 밤이고 낮이고 이곳

저곳 떠돌아다니는 것을 봅니다.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가끔 그 노래 한 가닥은 내 이층 창문을 열고 들어오기도

하고 나의 잠 속에 들어와 나의 잠을 가져가기도 하고 내가

우리집에 심어 놓은 몇 개의 까닭을 흔들다가는 그 잎을 데

려가서는 소식이 없곤 했습니다.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다.


 그 노래 한 가닥은 내 안에서 날이 갈수록 가락의 끝이 날

카로와져 요즘은 내 몸 곳곳에 상처를 냅니다. 오늘은 노래

가 지나간 길 여기저기에 긁힌 자국이 남아 노래가 가고 난

뒤 다시 보니 그 자국들이 하나하나 노래가 되어 풀밭을 헤

치며 가고 있습니다.


 어느새 내 안의 상처도 하나하나 노래가 되어 다른 노래

와 함께 떠납니다. 노래가 되어 떠나간 자리를 더듬어 보니

아직 태어나지 않은 노래들이 내 손을, 내 손을 참 싸늘하게

합니다.


                               <오규원>


마음의 풍경을 만드는 몇 자락의 노래들..

한없이 서정적이고 나른한 어떤 노래.

한없이 궁상맞아 바닥을 죽죽 기는 듯한 어느 날의 노래.

예쁘기도 또 착하기도 한 맑간 노래 몇 곡..

요즘 내 노래들은 어땠을까..

가락의 끝이 날카로와져 내 마음 곳곳에 기스를 내며 돌아다니던 그 노래들.

그 노래들도 시에서처럼 하나하나 새로운 노래가 될 수 있을까..

마음이 시끄러운 밤.. 조용하면서도 단단한 노래가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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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출처 : 바람구두 > 정일근 - 묶인 개가 짖을 때

묶인 개가 짖을 때

정일근


묶인 개가 짖는 것은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 은현리를 지날 때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움찔거리지도, 두려워 물러서지도 마라
묶여서 짖는 개를 바라보아라, 개는
그대 발자국 소리가 반가워 짖는 것이다
목줄에 묶여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
그 소리 구원의 손길 같아서
깜깜한 우물 끝으로 내려오는 두레박줄 같아서
온몸으로 자신의 신호 보내는 것이다
그래서 묶인 개는 짖는 것이다
젊은 한때 나도 묶여 산 적이 있다
그때 뚜벅뚜벅 찾아오는 구둣발 소리에
내가 질렀던 고함들은 적의가 아니었다
내가 살아 있다는 불빛 같은 신호였다
컹! 컹! 컹! 묶인 개가 짖는다면
쓸쓸하여 굳어버린 그 눈 바라보아라
묶인 개의 눈알에 비치는
깊고 깜깜한 사람 사는 세상 보아라

 

 

 

 


정일근 시집, "마당으로 출근하는 시인", 문학사상사, (2003)

------------------------------------

"세상의 작은 인기척에도/ 얼마나 뜨거워지는지 모른다"는
시인의 말이 엄살이 아니란 걸 안다.
그러나 젊은 한때, 그때 내게 들려오던
뚜벅뚜벅 발소리에 대해 나는 적의에 가득차 짖었음을 고백한다.
그러나 컹컹컹 적의에 가득차 짖었다하여
내 눈빛이 젖지 않았었다고는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흘러내리는 세상
흘러내리는 증오가 사랑이 아니었다고,
사랑이 필요했던 것이라고는 믿지 마라.

믿지 마라. 외롭다고 짖는 개를
믿지 마라. 젖은 눈으로 쳐다보는 개를
믿지 마라. 쓸쓸하게 굳은 눈으로 언제라도 앙 물어댈 수 있는 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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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ainy 2006-11-23 14: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배 한갑이 남았다는 계산이 어긋나고 똑 떨어졌을 때,
너무 따뜻해 보이는 창밖 햇빛에 손 내밀었을 때. 기대를 묵살하는 차가움.
그런 오후 2시에 읽는 이런 시..

waits 2006-11-23 20:1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감한 오후 2시였군요. 잘 지내시나요? ^^;;

rainy 2006-11-23 21: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지갑엔 그래도 초록색이 두어장 있고, 창밖이 번쩍 차가울만큼 집안은 그다지 춥지 않고, 이런 시의 신호에 반응할 만큼은 아직 살아 있고.. 이 정도면 잘 지내는 거죠? 브리핑을 보니 님도 오랜만에 좀 올리셨네요^^ 이제 거기로 읽으러 가요^^
 

 

          무너지는 것들 옆에서


  내가 화나고 성나는 날은 누군가 내 발등을 질겅질겅

밟습니다  내가 위로 받고 싶고 등을 기대로 싶은 날은

누군가 내 오른뺨과 왼뺨을 딱딱 때립니다 내가 지치고

곤고하고 쓸쓸한 날은 지난 날  분별없이 뿌린 말의 씨

앗,  정의 씨앗들이 크고 작은 비수가 되어 내 가슴에

꽂힙니다   오 하느님, 말을 제대로 건사하기란 정을

제대로 다스리기란 나이를 제대로 꽃피우기란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

인지요

  나는 내 마음에 포르말린을 뿌릴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따뜻한 피에 옥시풀을 섞을 수는 없으므로 나는 내

오관에 유한낙스를  풀어 용량이 큰 미련과 정을 헹굴

수는 더욱 없으므로 어눌한 상처들이 덧난다 해도 덧난

상처들로 슬픔의 광야에 이른다 해도, 부처님이 될 수

없는 내 사지에 돌을 눌러 둘 수는 없습니다


                      <고정희>



철없는 마흔..

외로움을 제대로 바로 잡기란 철없는 마흔에 얼마나 무거운 멍에인지요.

나는 그럴 수 없으므로, 나는 그럴 수 없으므로, 나는 그럴 수 없으므로..

무수히 많은 내가 그럴 수 없는 이유들을 얼마든지 찾을 수 있으므로..

나는 결정적으로 그럴 수 없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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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오늘 저녁이 먹기 싫고 내일 아침이 살기 싫으니

이대로 쓰러져 잠들리라

쥐도 새도 모르게 잠들어 버리리라

그러나 자고 싶어도 죽고 싶어도

누울 곳 없는 정신은 툭하면 집을 나서서

이 거리 저 골목을 기웃거리고,

살코기처럼 흥건하게 쏟아지는 불빛들.

오오 그대들 오늘도 살아계신가.

밤나무 이파리 실뱀처럼 뒤엉켜

밤꽃들 불을 켜는 네온의 집 창가에서

나는 고아처럼 바라본다.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

그름처럼 부풀어 오른 애인들의 배를 베고

여자들 남자들 하염없이 평화롭게 붕붕거리지만

흐흥 뭐해서 뭐해, 별들은 매연에 취해 찔끔거리고

구슬픈 밤공기가 이별의 닐니리를 불러대는 밤거리

올 늦가을엔 새빨간 루즈를 칠하고

내년엔 실한 아들 하나 낳을까

아니면 내일부터 단식을 시작할까

그러나 돌아와 방문을 열면

응답처럼 보복처럼, 나의 기둥서방

죽음이 나보다 먼저 누워

두 눈을 멀뚱거리고 있다


<최승자>



시동을 걸려고 하는데

어설프게 헛손질만 되풀이될 뿐

시동이 잘 걸리지 않는다.

중언부언 찌질한 소리는 더 이상 내뱉고 싶지 않다.

아니면 나는 한번도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한 건지도..

최승자의 시에선 기둥서방이란 말이 종종 나온다.

그녀는 외로운가 문득 멍청한 생각이 든다. 

기둥서방 한 놈 있으면 가을을 지내기

훨씬 따스할까 더 지랄스러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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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10-15 04: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1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39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6-10-15 04: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10-15 11: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시동을 걸고 돌진해 갈 대상은 바로바로 <나의 게으름>이랍니다^^

치니 2006-10-15 15: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늘 나도 간만 알라딘에서 책5권을 구매!
하린군의 래브라도 식구 들이기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말리와 나>를 구입하려다가 이렇게 되었지.
그중에 최승자 시인의 <어떤 나무들은>이 품절이 아닌 걸 확인, 잽싸 넣었어.
이 시를 읽고보니, 더욱 더 잘했다라는 생각이 든다. 이히.

2006-10-15 16:51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6-10-16 1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치니.
래브라도의 나날들이구나. 책사고나면 부자된 것 같지^^
나는 어제 서점에서 실컷 위시리스트만 작성해 왔는데
이젠 적기도 귀찮아 디카로 막 찍어왔어.
사람이 갈수록 이상한 요령만 ㅋㅋ

속삭인 님.
살아있는 것들, 살아서 옆에서 부대끼는 것들은 정말 그래요^^
그것들에게 일관성을 가지는 것은 ,
아이에게조차 쉽지 않을 걸 보면 애시당초 가능치가 않은 문제인가봐요..

로드무비 2006-10-16 16:3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고아처럼 바라보는 남의 집 불 켜진 창가.
그런 심정에서 많이 벗어나진 않은 것 같아요.
일촉즉발의 사랑 속에서 따스하게 숨쉬는 염통들이라는
구절이 참 좋습니다. 읽을 때마다.^^

rainy 2006-10-16 18:2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 님..
아, 가을.. 가을인가봐요.
배고프고, 발시리고, 최승자를 찾게 돼요^^

프레이야 2006-10-17 08: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담아가고 싶어요. 괜찮죠? ^^

rainy 2006-10-17 18: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배혜경 님..
아이고 챙피시렵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