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신문에서 눈에 띄인 글귀..

'징역3년, 집행유예15년, 거기에다 평생 보호감호."

이게 바로 엄마라는 이름을 얻는 것과 동시에 얻어지는 것이라는..


하지만.. 바로 그것이겠지..

세상 어디에 서로를 이만큼이나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관계가 있을까..


오늘 아침에는 도저히 일어나기 힘들어

이불속에서 개기고 있었더니 우리 지연이 왈


"엄마~ 힘들어? 더 자구 싶어?

내가 메이지 비디오 한번만 보고 오면

그때 버얼떡 일어나아~~~"


헤벌레 좋아서 이불속으로 파고드는 나를 향한 일침..

"엄마~ 초콜렛 우유는 주고 다시 누워야지~~"

아무리 생각해도 나보다 한수 위인 것이 분명..


나는 아이에게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지만..

아이의 눈동자는 내게.. 왜 살아 가냐고..

또.. 어떻게 살아갈 것이냐고.. 묻는다..


그리고 그 눈동자는 늘.. 내게 말하고 있다..

자기를 바라보라고..

우리가 사랑할 수있는 시간은..

바로 지금이라고..


(2003년 어느 봄날의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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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겐 너무 나빴던 금자씨와 찬욱씨]


칼부림과 피범벅이 너무 심했다는, 단지 그래서 싫었다는 얘긴 아니다.

이제 복수3부작의 완결편을 만들면서

보여줄 수 있는데 까지 가보자고 마음먹었겠단 것도 이해 간다.

그런데 정말 자기가 가고 싶은 곳을 마음껏 간 것일까?

박찬욱 감독이 중간에서 어영부영 길을 잃을 타입이 아니란 걸 알겠다.

그래서 나는 정말로 박찬욱이 무서워져 버렸다.

보여주고 싶은 게 넘쳐 잠깐씩 길을 잃었을 거라고 생각하면

오히려 조금은 마음이 편할 것 같다.

형식에 관해 얘기해야할지, 내용에 관해 얘기해야할지,

잠깐 난감해진다.

영화의 후반부 내내 나는 몹시 불편했고, 거의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

박찬욱은 영화 내내 말하는 듯 했다.

이제 내 방식의 과감함을 마음껏 펼쳐 보여줄테니

너희들 두 눈 똑바로 뜨고 잘 보아라 하는 불편한 거만함으로..

사람들은 대부분 친절모드가 이영애에게 너무 잘 어울리고

사악모드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 잘 한 건 알겠지만 절대 어울리진 않는다고 말하지만

나는 아닌 것 같다. 그게 이입인 걸까. 그만큼 이영애가 잘 해낸 걸까.

복수시리즈의 전작들에선 누구도 이해가지 않을 만큼 무작위로 나쁜 짓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거기선 누구나 다 피해자였다. 잔인한 인생의 장난질에 어이없이 걸려든 피해자.

하지만 친절한 금자씨에서는 상처를 입고 복수를 결심하는 금자씨도,

원래 토나오게 나쁜 인간 백선생도 하물며 아이를 유괴당한 부모들까지도...

구역질이 날 것만 같았다.

아, 나는 너무 단순무식하게도 악한 사람을 벌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오직 착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하고 있나보다..  그래 나는 그렇다.

이제 금자에겐 누가 복수할 것인가.

나를 잠시나마 정서적 패닉 상태로 몰아넣고, 또 아이를 잃은 부모들을 그렇게 놀림감을 만들어버린

제기랄 친절한 금자씨로부터 입은 누더기가 된 나의 정서를 위해선 누가 복수하냔 말이다..

종교를 놀려먹고 - 종교만큼 놀려먹기 쉬운 대상이 또 있을까 -

아이들의 유괴로 이미 제정신으로 살기는 글러먹은 부모들을 놀려먹고..

꼭 그래야 직성이 풀렸을까.

원래도 그런 거 의연하게 대하진 못하지만 아이를 기르면서는 특히나 아이들에 관한

질병, 사건과 사고 등은 도무지 제정신으로 접할 수가 없다.

마치 들여다보면 현실이 되고 말 듯한 불길함에 눈을 돌리게 된다.

그래서였을까. 영화가 힘들었던 건 단지 유괴라는 사건을 , 그 현장을 , 그 참혹함을

너무 자세히 들이대고 보여줘서?

그 부분 때문에 나는 필요이상으로 반응하고, 필요이상으로 거부하는 것일까..

복수를 하겠다는데, 그것도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겠다는데

제 삼자가 이러쿵 저러쿵 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금자를 이해하는 건 나로선 무리다. 하지 않겠다.

나는 영화 친절한 금자씨에 관해선 절대로 친절하고 이성적으로 영화를 보고난 소감을

얘기하고 싶지 않다.

빛을 발하길 오래 기다려온 그래서 반가웠던 박찬욱의 영화 재능도, 그의 끈기도,

지금은 쳐주고 싶지 않다.

너무도 화려하고, 슬프고, 인상적이었던 음악도..

 

사족 - 정말이지 떼거지로 달겨드는 까메오들은 뭐란 말인가.

그게 유머고, 그게 영화의 잔재미라고? 안 그래도 몰입하기 힘들 상황에서

흐름을 툭툭 끊는 그 익숙한 얼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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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8-21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 차이는 거기 있었나보다.
나는 애시당초 이해 같은 건 염두에 두지 않고, 미학적인 것만 두고 보겠다는 심보로 내내 앉아 있었던 거 같네
금자에게 누가 복수해주겠나... 라고 생각해본다면, 찬욱씨는 금자의 딸이 있지 않냐고 하겠지...
그리고 불편함을 얻은 우리들에겐 어떻게 할 거냐고 묻는다면,
찬욱씨는 또, 그럼 안 보면 되잖냐고 하겠지...
그런 사람인거 같아서, 정이 안가나봐.

rainy 2005-08-22 11: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난, 이미 알고 있는 거지만, 참 결정적인 것에 휘둘리는 사람이란 생각을 했어.
전체적으로 두루두루 파악한 것들, 느껴지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난 결정적인 것에 좌우되는 사람인 것 같다고..
사람도, 책도, 영화도, 사물도.. 늘 나를 흔드는 것은 어떤 결정적인 것..
좋은 것도, 싫은 것도.. 극단적으로 표현하게 되는 것이 그 때문인 것 같아..
어린애들이 우기듯.. 다른 것은 다 소용없어져버리게 만드는.. 결정적인 것..
 

 

       올 봄


     

      올봄엔 때없이 바람이 불곤 하였습니다


      저물녘에 잠들었던 바람이


      한밤중에 깨어나


      잠긴 문을 아무 데나


      흔들어대곤 했습니다


      아무도 문 열지 않았습니다


      나도 이불 속에서


      생각을 생각하며


      생각이 자리 잡히지 않아


      돌아눕곤 했습니다


      잠들어 누운 대로 눈 뜨면


      새벽별 하나가


      금간 벽 틈으로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곤 했습니다




                <김용택>

 

새벽별 하나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는 느낌

그 몹시 민망하지만 한편 외롭지 않은 느낌

내가 말할 준비가 되길 기다리는 느낌

그 물끄러미가 담고 있는 질문의 느낌

이제 내 자신에게 답을 말해야 할 것 같은 순간들이 오고

나는 여전히 망설이면서 여전히 설레이고

어느 날은 못된 생각들로 마음의 가지를 잘라내고

어느 날은 착한 생각들로 마음의 가지를 잘라내고

하지만 잘라내고 나서도 여전히 남겨진 마음과 정직한 욕심들

그런 날엔 그저.. 손톱을 깎으며 마음도 깎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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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자꽃 설화

사랑하는 사람을 달래 보내고
돌아서 돌계단을 오르는 스님 눈가에
설운 눈물 방울 쓸쓸히 피는 것을
종탑 뒤에 몰래 숨어 보고야 말았습니다


아무도 없는 법당문 하나만 열어놓고
기도하는 소리가 빗물에 우는 듯 들렸습니다
밀어내던 가슴은 못이 되어 오히려
제 가슴을 아프게 뚫는 것인지
목탁소리만 저 홀로 바닥을 뒹굴다
끊어질 듯 이어지곤 하였습니다


여자는 돌계단 밑 치자꽃 아래
한참을 앉았다 일어서더니
오늘따라 엷은 가랑비 듣는 소리와
짝을 찾는 쑥국새 울음소리 가득한 산길을
휘청이며 떠내려 가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멀어지는 여자의 젖은 어깨를 보며
사랑하는 일이야말로
가장 어려운 일인 줄 알 것 같았습니다


한 번도 그 누구를 사랑한 적 없어서
한 번도 사랑받지 못한 사람이야말로
가장 가난한 줄도 알 것 같았습니다
떠난 사람보다 더 섧게만 보이는 잿빛 등도
저물도록 독경소리 그치지 않는 산중도 그만 싫어
나는 괜시리 내가 버림받은 여자가 되어
버릴수록 더 깊어지는 산길에
하염없이 앉았습니다 

<박규리>

잔잔한 바람이 통과하는

고요하고 사람이 없는 뒤뜰에서

결이 고운 슬픔에 한동안 젖어 있다가

돌아오고 싶다..

지금 나의 슬픔은.. 너무 거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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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가 발을 다쳤다. 준비할 틈 없이 나타난 복병 같은 가벼운 사고..

아이와 함께 보낼 즐거운 휴가를 위해 많은 준비를 했었다.

그것부터가 방정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었다.

둘이 함께 하려던 많은 계획이 취소되었고..

이유가 아이라는 것 때문에 대놓고 힘들어하지도 못하겠는 기분으로

일주일을 꼬박 숨이 가빴다..

겁이 많은 아이는 도무지 발을 땅에 딛으려 하지 않아서..

집안에선 컴퓨터의 의자를 휠체어삼아 생활을 했다.

화장실과 거실, 컴퓨터가 있는 방에서 침실로 아이를 안고 나르면서

내 굵은 팔뚝은 덕분에 확실히 더 굵어졌을 것이다..

외출은 동생의 아이에게 물려주었던 유모차를 다시 가져와서 해결해야했다.

그나마 병원을 갈 때와 잔인한 더위를 피하러 에어컨이 있는 친정을 가는 일

외의 외출은 엄두도 내지 못하던 겁쟁이 우리 모녀..

처음 며칠은 몸부림도 치지 못하고 거의 잠도 못자더니

이제 조금씩 몸부림을 치는 것을 보고 안심한다.

두려움과 아픔이 아이의 꿈길에까지 따라붙는 것이 너무 안타까웠었는데...

그렇게 지내다 문득 달력을 보니 입추가 지나있다.

아무리 더운 여름도 지나갈 것이고 가을은 올 것이다.

그 생각을 하면 조금.. 조금 숨이 쉬어진다...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앞으로만 흘러가겠다는..

시간의 약속에 위안을 받는다.

그 약속은 절대로 어겨질 리가 없을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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