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함께 가자.. 동막골로]
어제인가 비가 쏟아진 다음날.
오랜 친구와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났다.
내가 대학로 근처로 이사를 온 후
우린 한달에 한두 번 쯤 영화를 보기 위해 만난다.
우리식으로 말하자면 우린 [이 와중]에도 영화보기를 포기 하지 않은 것이다.
영화가 시작되기 30분전에 만나서 티켓을 받고
상영관 밖의 검은 의자에 잠깐 앉아서
나는 이틀 전에 겪은 기분 아주 제대로 드러워졌던 일에 관해 잠깐 얘기를 했다.
그리고 친구의 가정사에 관한 보고를 잠시 받은 후 영화관으로 들어가면서
또 한번 [이 와중에도 동막골은 보게 되었구나]라고 말하며 함께 웃음을 나눴다.
정말 이 와중임에 분명한 날들이었다.
누군가 방법을 가르쳐 준다면 아주 말 잘 듣는 순한 아이처럼
그대로 따라하고 싶을 만큼 대책이 서지 않는..
이 영화에 관한 기대는 어쩌면 다른 곳에 있었을지도 모른다.
책도 영화도 하필이면 이럴때 그런 것을 골랐나 싶을 정도로
판단미쓰 선택미쓰의 우연이 몇 번 반복이 되다보니
내게 분명히 착할 것임이 분명한 이 영화를
행여 놓칠까봐 서둘러 약속을 잡았던 것이다.
감정조절이 잘 되지 않는 날들이었다. 하필이면..
굳이 이유를 찾아본다면 날씨 탓이라고 해 두자.
가을.. 가을이 왔으니 말이다.
거기다가 나는 눈물이 심하다.
그렇다. 인정하고 싶지도 않고 굳이 발설하고 싶지도 않지만..
하는 수 없다. 내가 생각해도 그쪽이 좀 고장이 난 건 확실한 듯하니..
늘 문제는 예고편부터다.
[너는 내 운명]의 예고편 속의 진짜 농촌노총각 같은 황정민 때문이었다.
굳이 핑계를 찾자면 말이다.
그 신파. 그 가을맞이 멜로. 그 진부하고도 철철 넘쳐나는 사랑.
짜증나는 건.. 진부하다 하면서도 벌써 눈물은 흐르기 시작한 것.
아무래도 그건 진짜 농촌노총각같은 황정민 때문인데 말이다.
드라마나 영화를 볼 때.. 어두운 극장에서
영화는 보지 않고 눈물을 흘리거나 딴 생각에 잠겨 있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왜 하필 영화관에 가서 저럴까.. 저럴 거면 영화관 말고 다른 데를 가지..
[이 와중]에도 영화한편 보는 시간을 내려고 종종거리는 내 눈엔..
늘 그게 거슬렸었는데 말이다.
아무튼 그래도 다행이었던 건 예고편에서 돌발 눈물을 좀 흘려준 후엔
다시 본 영화가 시작될 때는 그나마 조금 수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내 눈물은 원래가 상황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경우가 꽤 되고..
수도꼭지가 한번 열리면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절대 쉽사리 잠겨주지 않는데..
하는 수 없이 날이 서버려 조율이 안되는 감정상태로 영화를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그나마 다행이었던..
책이건 영화건 나는..
분명한 이유로 아주 좋거나 아니면 분명한 이유로 나쁜..
그럴 경우에 리뷰가 금방 써진다.
(써놓고 보니 남들도 그러지 않겠나 싶다. )
좋은데 한두 가지 이유가 아니거나, 전반적으로 좋을 뿐 딱히 왜 좋은지 모를 때나,
싫은 느낌이 구체적이지 않고 별로 따지고 들고 싶지 않을 땐
쓰는 것이 좀 더디다.
웰컴 투 동막골은 그랬다.
보는 내내 약간은 맛이 간 상태로 많이 울고, 또 많이 웃으면서 보았다..
보는 내내.. 그래 동막골이 실제했음 좋겠다고..
꼭 어딘가에 있었음 한다고.. 마음이 간절해지기도 했고..
내가 원했던 ‘장진’식 착함.. 그냥 마냥 선한 게 아니라
아주 개구쟁이 같은 착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어 참 좋았다..
영화를 보고 나서 친구와 차를 마시면서
나는 정말 잘 보았다고 , 이제야 내 마음이 좀 내 마음 같아진 것 같다고 했다..
그런데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니..
그저 동구엄마를 바라보던 정재영의 애틋한 눈빛 빼고는
간절히 마음에 남겨진 것이 별로 없는 것이다.
충분히 좋았다고, 충분히 따뜻했다고 느끼고 있는데...
참으로 묘한 일이다..
그런데.. 흠..
이걸 [영화]에 넣어야 하나.. [느낌]에 넣어야 하나?
선뜻 판단이 서질 않는다... 이건 또 뭐람...
요즘은 정말이지 사소한 일에 에너지를 너무 쏟는 거 아닌가 몰라....
중구난방의 이 글은.. 내일 다시 읽으면 퍽 난감하리라..
그래도 나는 뻔뻔히 올리고.. 자러 갈테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