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아포리즘 중<296>


고통으로부터의 해방은 고통의 응축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마치 전압이 극도로 오르면 퓨즈가 끊어지듯이.



나는 충분히 아팠나 생각해봅니다..

나는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했던가요..


내가 필요로 한 건 승부가 아니었습니다..

어떤 지속적인 가치..

그것이 소멸되고 다시 생성되는 것을 지켜내는 것..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리하여.. 나는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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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이를 찾아 헤매는 하이에나처럼(푸훗)

재미있는 꺼리를 찾다가 영화를 한편 보기로 마음먹고

선택한 것이 [여자는 남자의 미래다]였다.

홍상수는 여전하게도 무사히 자기식의 이야기를 펼치고 있더라.

성현아는 인상적이리만큼 똑 떨어지고 예쁘게 연기를 참 잘 하더라.

유지태는 유지태가 싫어질 만큼 그 역할을 더도 덜도 아니게 참 잘 하더라 .


그런데.

나는 홍상수가 불편하다.

살맛을 찾아 영화를 보려 한 것인데..

이 영화를 보고 나니 그나마 남았던 살맛도 떨어지더라.

살맛 뿐 아니라 밥맛도 떨어지더라. 

내가 갑자기 미숙아 같아지는 기분이 되더라.

즐거움은 고사하고, 모든 작지만 예쁜 것들이 모조리 지리멸렬해지더라.

남자.. 여자.. 섹스.. 연애.. 그런 것들에 관해

그나마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도 모조리 오리무중이 되는 것 같더라..


[돼지가 우물에 빠진 날]을 보았을 때의

충격적이면서도 낯설지 않은.. 뭔가 잘 알 것 같은.. 그런 느낌도 없고..

[강원도의 힘]을 보았을 때의

삶은 원래 그런 거라는.. 그러니 폼 잡지 말라는..

무겁게 우울했으나 한편으론 마음편한 웃음도 나오지 않고 

[생활의 발견]을 보았을 때

재미있게 잘 만든 영화임은 알겠으나 나랑은 맞지 않는 듯 하다는

내 생활의 발견은 아니었다는 

접수 되었으나 나랑은 참 많이 다르구나 하는 명쾌한 느낌도 없었다.


피곤하다.

영화건. 책이건. 사람이건.

나와 맞지 않는 대상을 위해 시간을 소비하고

더구나 이해씩이나 해보려고 애쓰는 건.

너무도 피로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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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니 2005-09-10 0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나는 그저, 과연 여자는 남자의 미래네, 라고 생각했었던 기억이...^-^
홍상수 영화에 나오는 모든 남자들이 찌질이 인것도 그래서일까.
암튼 요즘 언니 상황에서 그닥 좋은 선택은 아닌 거 같으네.

rainy 2005-09-10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고 보니 여자들은 거의 성격들은 각자 달라도 일정부분 똑떨어지는데
남자들은 대부분 찌질이들이구나.. ㅋㅋ 그래서 재미가 없었나봐..
영화에서만이라도 좀 제대로 된 남자를 봐줘야 하는데 말야.. 후훗..
 

      8월



    여름이 문을 닫을 때까지


    나는 바다에 가지 못했다


    흐린 날에는


    홀로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막상 바다로 간다 해도


    나는 아직 바람의 잠언을 알아듣지 못한다


    바다는


    허무의 무덤이다


    진실은 아름답지만


    왜 언제나 해명되지 않은 채로


    상처를 남기는지


    바다는 말해 주지 않는다




    빌어먹을 낭만이여


    한 잔의 술이 한잔의 하늘이 되는 줄을


    나는 몰랐다


    젊은 날에는


    가끔씩 술잔 속에 파도가 일어서고


    나는 어두운 골목


    똥물까지 토한 채 잠이 들었다


    소문으로만 출렁거리는 바다 곁에서




    이따금 술에 취하면


    담벼락에 어른거리던 나무들의 그림자


    나무들의 그림자를 부여잡고


    나는 울었다


    그러나 이제는 어리석다


    사랑은


    바다에 가도 만날 수 없고


    거리를 방황해도 만날 수 없다


    단지 고개를 돌리면


    아우성치며 달려드는 시간의 발굽소리


    나는 왜 아직도


    세속을 떠나지 못했을까


    흐린 날에는


    목로주점에 앉아


    비를 기다리며 술을 마셨다


    인생은


    비어 있음으로


    더욱 아름다워지는 줄도 모르면서  



                <이외수>

 

 

8월이 갔다.

견디기 어려웠던 더위들.

시간의 약속만을 믿고 기다리던 날들.

9월이 왔다.

약속을 지켜준 시간에게

난 무엇으로 답해야할까..

막상 바다로 간다 해도

바다의 잠언을 알아듣지 못할 나..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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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1027 12:50.PM

난 퍼즐맞추기를 좋아한다. 

삼선동으로 이사와서 짐도 제대로 정리하기 전에 퍼질르고 앉아서 맞췄던

1000조각 퍼즐

그림은 내가 고흐의 그림중에 제일 좋아하는 [아를의 침실] 

내 익서스500 의 첫번째 사진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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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9-02 02:29   URL
비밀 댓글입니다.

rainy 2005-09-05 01: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저도 처음으로 퍼즐을 대한 것이 지연이를 가졌을 때부터랍니다.
어떨땐 아무 생각없이 퍼즐만 하고 있었음 좋겠단 생각을 할 정도로
좋아하게 되었지만..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자꾸 쌓아둘 수만도 없어서
가끔씩 마음이 쉬고 싶을 때나 나 자신에게 선물을 주고 싶을 때
한번씩 구입해서 하곤 한답니다.

여행을 나설 땐 늘 책 한권쯤 가방에 담지만
막상 그걸 읽으면서 시간을 보내게 되진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혹시나 책이 꼭 필요한 순간이 올지도 모른다른 생각에
무거움을 감수 하고 책을 챙겨넣게 되지요^^
하지만 여행은 책이 필요한 순간이 적을 수록 좋겠다 생각해요..
님의 말씀처럼 그저 나 외의 것에 홀리는 그것이 여행의 착한 점 같아서..

'낯섬'과 '익숙함'에 대한 균형은 어렵지만
아주 잘 조절해 내고 싶은 것들 중에 하나.. 지요?
 

 

비, 어느 골목을 네가


내리는 대로 비에 젖으며

어느 골목을 어떻게 걸어보아도

너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막 새가 날아간 가지처럼

흔들리는 마음 어느 한구석에

네 목소리 울려오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소리치며 소리치며 지나가는 거리에서

잘못 보기라도 한 양

어느 집 창문 하나 열리지 않으리란 것을 안다

빗속으로 해가 질 무렵에

거짓말처럼 열리는 창하나 있어도

그 아래 내가 설 수 없음을 안다

사랑하는 사람은 버림받은 사람

돌아서고 또 돌아서도

끝내 갈 곳이 없음을 안다

그렇지만 한 가지

지금 이처럼 비가 내리는

내가 모를 어느 골목을

네가 걷고 있음을 안다.


<고원정>


비온다..

생각들은 한 곳으로 모여들었다가

다시 천갈래로 갈라진다...

마치 집을 나서 춥고 헐벗었던 몸들, 허적허적 오래 걷던 몸들이..

따듯한 불빛과 쉴 곳을 찾아 집으로 기어들듯이..

그리고 또 다시 그곳을 떠나고 싶어 하듯이...

그러므로 한곳으로 모여든 생각과 천갈래로 갈라지는 생각은

결국 한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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