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지 워쩌!
표윤명 지음 / 가쎄(GASSE)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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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윤명 작가의 [갈마지 워쩌!]는 충청도 예산의 갈마지라는 작은 마을을 배경으로 혼란과 고통으로 점철되었던 우리 역사의 뒤안길을 뒤돌아보고자 그려낸 것이다.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 인간의 탐욕, 권력에 대한 욕망, 돈과 여자에 대한 갈망, 그리고 혹독한 현실 속에서도 살아나고자 하는 인간의 삶에 대한 의지, 이러한 것들로 욕망을 그려내고 있다.

 

라고 일단은 소개되어 있다. 문고판의 구분을 어떤 기준으로 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작고 아담한 사이즈로 서문이나 추천평등의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본편의 소설만 들어있어 들고 다니면서 읽기에 좋다.

 

처음에는 70년대 급변하던 시기 우리 아버지 세대의 혼란스럽고 신산스러운 삶을 잘 그려냈을 거라는 기대에 읽게 되었는데 결과만 얘기하면 기대만은 못했다.

 

전체적인 분위기는 다소 [전원일기] 풍이다. 구수한 충청도 사투리에 구두쇠 땅 부자와 대학까지 나온 성실한 농꾼 그리고 그를 사랑하는 아가씨에 겉바람만 들어서 기타만 퉁기는 청년까지, 농촌 드라마에 나올법한 인물들이 다양하게 등장하여 이야기를 만들어 간다. 문제는 전체적인 이야기도 [전원일기]같은 옴니버스 드라마처럼 전개된다는 것이다. 단편 모음이나 시리즈라면 이게 별 문제가 안 되겠는데 이게 전체 한 편의 소설이라는 것이 문제다. 하나의 줄기로 이야기가 쭈욱 흐르지 못하고 뜬금없이 몇 달을 훌쩍 넘어 이야기가 진행되기도 하고 어떤 배경이나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큰 사건이 뿅 하고 튀어나오기도 하는 식이다.

 

대체로 이런 식이다 보니 주인공이 누구인지도 모르겠고 대체 작가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엇인지도 모르겠다. 다양한 인물 군상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해 자연스럽지 못하고 어색해 집중도가 떨어진다. 작품의 큰 줄기는 이른바 '떴다방'이라는 당시의 부동산 투기에 당하는 이야기와 그나마 주연급으로 봐 줄 수 있는 성실한 청년 '경민'의 삼청교육대 사건이 가장 큰 줄기인 것 같은데, 부동산 이야기는 유야무야 대충대충 어떻게 된 것인지도 모르게 임팩트 없이 대충 처리되어 버리고 아무런 복선도 없이 뜬금없이 튀어나온 '경민'의 삼청교육대 이야기도 별다른 충격이나 감동도 없는 앞서 다른 작품들에서 많이 소개된 삼청교육대 이야기의 재판일 뿐이다. 게다가 좀 어이없는게 등장인물들 중 서울서 내려온 '신상무'나 복덕방 사장들을 제외하고는 모두 충청도 토박이라 아주 진한 충청도 사투리를 사용하는데 유독 '경민'과 그의 연인 '은히'만은 또박또박 서울말을 쓰고 있다. 주연급인데다 둘의 애달픈 사랑 이야기가 충청도 사투리로 전개되면 맥이 빠질 것 같아서 그랬을까? 작가만이 알 일이겠으나 결국 마무리는 두 사람의 결혼으로 끝을 맺게 되는데, 어려운 가운데도 희망이 있다는 종류의 메시지를 보여주려는 결말이 아닐까 하는데 이마저도 그저 상투적이고 어설픈 느낌일 뿐이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오락물이라면 별 상관이 없겠으나 [갈마지 워쩌!]에서 이야기 하는 문제는 그렇게 가볍게 다룰만한 문제가 아니라는 게 문제다. 작가가 어떤 의도로 이 작품을 내놓았는지는 모르겠으나 깊은 성찰과 고민 없이 준비가 부족한 상태로 써내려 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작가의 이력이 그리 가볍지는 않은데 어찌된 일인지 모르겠다. 앞으로는 좀 더 완성된 작품이 나와 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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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리고 무한 - 칼링가 상 수상자 대표작 김영사 모던&클래식
조지 가모브 지음, 김혜원 옮김, 곽영직 해제 / 김영사 / 201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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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그리고 무한]은 빅뱅이론의 창시자 조지 가모프가 수학과 과학의 기본 개념을 통해 '과학이란 무엇인가? 우주의 생성 원리는 무엇인가?'에 대해 일반 대중들에게 쉽고 재미있게 소개할 목적으로 쓴 책이다. 총 4부로 나누어진 책은 1부와 2부에서 수 체계와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정리하여 3부, 4부의 미시우주와 거시우주를 본격적으로 이야기 한다. 물리학의 기초적인 전체지형도를 그릴 수 있게 하여, 현대물리학에 본격적으로 입문하기 전 기초필독서로서의 역할과 가치를 지닌다.

 

어디에서 그리고 무슨 내용으로 만났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분명히 필자는 '조지 가모프'의 이름을 들어봤다. 평소 SF를 좋아하다 보니 기초 과학에 대한 개념을 SF를 통해 심심치 않게 만나게 되는 편인데, 이런 SF 소설이나 영화를 이해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그렇다고 새삼 대학이라도 가서 전공 강의를 수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일반교양의 수준에서 좀 더 기초 과학의 개념을 배울 수 있는 책을 찾던 중에 예스 24 리뷰어 클럽에서 서평 이벤트로 이 책을 만나게 되어 신청하였는데 감사하게도 서평단에 선정되었다.

 

그러나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필자는 이 책 [1,2,3 그리고 무한]의 내용을 절반도 이해하지 못했다. 같은 리뷰어 클럽 내에 '난쏘공(난해한 책을 향해 쏘아지는 공격적인 리뷰)'란이 있는데 필자의 기준으로 이 책은 '난쏘공'에 분류되어야 하는 책이 아닐까 싶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이것은 책이 어렵다거나 하는 문제가 아니라 필자의 수준이 문제인듯 하다. 책 자체가 일반인들을 위한 교양서로 쓰여졌고 실제 독자의 평도 쉽고 술술 읽힌다는 평인데다 직접 읽어본 느낌도 여러 재미있는 일화들과 함께 저자가 손수 그린 많은 그림들까지 더해서 비교적 쉽게 설명하고 있는듯 한데 왠지 필자는 전체 흐름을 매끄럽게 타지 못하고 계속 겉도는 기분으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겠다. 특히 중고 수준의 간단한 공식들이 등장할 때마다 고등학교 때 수학하고 물리공부를 좀 열심히 할껄 하는 후회가 마구 밀려든다.

 

책으로만 보자면 두툼하면서도 단단하게 잘 짜여진 양장으로 멋스럽다. 양장이라면 이렇게 나와 줘야 한다는 느낌이랄까? 내용 또한 위상 기하학, 4차원 세계, 상대성 이론, 원자화학, 핵물리, 엔트로피, 유전자, 진화, 우주론등 과학 전반에 대한 폭넓은 저자의 지식을 기반으로 수의 개념부터 공간, 미시우주, 거시우주로 점차 확장되는 식으로 전반적으로 논리적으로 진행되고 무엇보다 저자가 손수 그린 수많은 그림들에서 정성이 느껴진다. 50여 년 전에 쓰여진(1948년 초판 1961년 개정판) 책이 지금까지 살아남아 출판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가치를 알기에는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500여 페이지의 잘 빠진 양장의 정가가 1,4000원이니 가격까지 착하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우수한 책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인 필자의 문제다. 이번 주에 직장을 옮기게 된 필자의 어수선한 주변 상황을 핑계해 본다. 조만간에 마음에 여유가 생기면 다시 한 번 느긋한 마음으로 도전해 보리라 마음먹으며 부족한 리뷰를 마무리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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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아찔한 경성 - 여섯 가지 풍경에서 찾아낸 근대 조선인들의 욕망과 사생활
김병희 외 지음, 한성환 외 엮음 / 꿈결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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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OBS 특별기획 프로그램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에서 우리 근대의 변화상을 담은 여섯 가지 주제를 골라 엮어낸 책이다. 정확한 워딩은 기억나지 않지만 내용 중에 역사를 바라보는 관점에는 전체 흐름을 따라가는 거시적 관점과 어떤 사건과 이야기를 통해 시대상을 파악하는 미시적 관점이 있다고 했는데 [이토록 아찔한 경성]은 전형적인 후자의 경우라고 할 수 있으리라.

 

한국의 근대화는 일제 강점기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가 있다. 얼마 전에 읽었던 한홍구 교수님의 [특강]에서 교수님 자신이 한국 근현대사 연구에서는 원로급이라는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만큼 실제적으로도 그리고 정서적으로도 우리의 근현대사에 깊이 접근하는 것에 일종의 터부가 있었음을 농담 섞인 말로 표현하신 것이리라. 그런 의미에서 이런 프로그램과 책이 나와 주는 것은 그만큼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 책에서는 TV 방영분중 총 6가지 주제를 정리해 놓았는데 살펴보면, 1부 '광고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의 여러 광고를 보여주며 그 시대의 소비문화를 엿볼 수 있다. 2부 '대중음악으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당시에는 어려운 노래였다는 트로트의 기원과 변천사를, 3부 '사법제도로 본 근대의 풍경'은 사법제도를 통해 일본의 수탈 중심의 식민지 사관을 잘 보여주며 나아가 현재에까지 이어지고 있는 식민지식 사법제도의 문제점을 꼬집고 있다. 4부 '문화재로 본 근대의 풍경'은 우리 문화재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신 '간송 전형필' 선생님의 삶을 위주로 문화재의 수탈과 환수 문제를 이야기 하고 있고, 5부 '미디어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신문, 라디오를 중심으로 당시의 언론 환경과 문화 그리고 일제에 이용당한 이야기들을, 마지막 6부 '철도로 본 근대의 풍경'에서는 철도가 놓이는 과정을 통해 우리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삶의 애환을 이야기 하고 있다.

 

가장 인상 깊었던 이야기는 광고와 사법 그리고 미디어에 대한 이야기였다. 당시의 수많은 광고 사진들과 문구들이 상당히 재미있게 느껴졌을 뿐 아니라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의 심리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도 재미있었다. 사법 제도 편은 단순이 일본의 수탈을 목적으로 한 식민지 사관뿐만 아니라 일제 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한 부작용이 지금에 사법 시스템에까지 이어져 우리의 삶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지까지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미디어, 신문과 라디오라는 언론 매체의 이야기는 어떤 면에서 안타까운 감정을 느끼게 해 주었다. 지배의 도구로 사용하려던 목적 때문에 억압받고 왜곡될 수밖에 없었던 언론의 역사가 오늘날에도 재현되고 있는 듯 하니 안타깝기도 하고 답답하기도 한 느낌이랄까.

 

기본적으로 TV 프로그램으로 제작되어서 였는지 풍부한 사진 자료와 함께 시각적인 즐거움이 있는 반면 아무래도 차근차근 순서대로 문제를 짚어나가고 서술해 나가는 느낌보다는 핵심만 요약해서 이야기하는 느낌이라 다소 아쉬웠는데 각 챕터 말미에 '역사토크 만약에'를 통해 문답형식으로 여러 가지 역사적 가정을 통해 이러한 부분들이 보완된 느낌이었다.

 

'비용'을 이야기할 때는 '이익'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 분명 일제 강점기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비용에 이익이 따라가듯 일제의 근대화에 대한 공을 이야기 할 때는 우리가 지불한 '비용'또한 함께 이야기 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역사에서 배우는 것은 아직도 우리가 배우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뿐이다." 책의 서두에 실린 말이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배우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매우 '느리게' 배우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 우리가 좀 더 '빨리' 배우고 역사를 통해 미래를 바라보기 위해 [이토록 아찔한 경성]같은 책과 [세상을 움직이는 역사]와 같은 다양한 관점의 역사 프로그램들이 많이 만들어 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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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탐정의 규칙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혁재 옮김 / 재인 / 201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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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연구하고 더 고민해서 쓰면 안 될까?"

 

[명탐정의 규칙]을 읽는 내내 킥킥거리며 새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게 추리소설이 맞기는 맞는데 뭐랄까 추리 소설을 비판하는 추리소설이랄까, 그것도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형사와 탐정이 죽이 맞아 낄낄대며 비판한다. 등장인물이 자신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독자에게 혹은 다른 등장인물에게 이야기 하는 방식이 ‘코믹’ 코드의 작품에서 결코 신선하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명탐정의 규칙]에서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이 소설에서 잠깐씩 벗어나 혹은 낄낄거리며 혹은 투덜거리며 자신들이 등장하는 소설에 대해 이야기 하는 것이 천박하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하는 말에 공감이 가기 때문이며 그 안에 담겨있는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에 대한 깊은 이해와 애정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첫 번째 이야기 ‘밀실 선언’부터 마지막 ‘명탐정의 최후’까지 프롤로그와 에필로그를 제외한 총 13개의 단편을 통해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전형적인 트릭과 안일한 구성의 한심한 추리 소설에 대해 냉소를 던지고 있다. 매 편마다 한가지씩의 트릭을 소재로 이야기를 진행해 나감과 동시에 트릭에 대한 분석과 비판을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이 나이에 밀실, 밀실 하며 떠들어 대는 것도 민망해. 자네에게 맡기지. 어차피 마지막엔 자네가 해결할 것 아닌가.”
“별 수 없지요. 결국은 제가 해결해야 할 일이니까요. 하지만 그때까지는 분위기를 띄워 주셔야 하는 것 아닙니까? 경감님이 이렇게 나오면 저도 힘들어져요.”
“그 마음이야 알지. 하지만 요즘 세상에 밀실로 소설의 분위기를 띄우라는 건 한심한 요구야.”
“불평도 많으시네. 고생은 제가 제일 많이 하잖아요.”
“그렇게 힘들어?”
당연하지요. 밀실의 수수께끼를 푼다는 건, 정말이지 내키지 않는 일이에요. 또 미스터리 마니아와 평론가들에게 바보 취급당하겠네.”
덴카이치가 훌쩍거리며 울기 시작했다.
“이봐, 울지 마. 알았어, 알았다니깐. 에이 자네 말대로 하지.”
나는 자세를 바로잡고 말투를 바꿨다.
“음, 물론 밀실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생각해 볼 작정이야. 하여간, 뭐랄까. 밀실은 엄청난 수수께끼 덩어리지.”
너무나 쑥스러워서 온몸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그렇습니다. 엄청난 수수께끼 입니다.”
  ……

 

이런 식이다. 결국 참다못한 ‘덴카이치’는 “트릭 따위로 독자의 관심을 끌겠다는 생각 자체가 시대착오 적이에요. 밀실의 비밀? 흥, 너무 진부해서 웃음도 안 나오네.”라며 불평을 터뜨린다.

 

[명탐정의 규칙]이 그저 농담이나 저급한 냉소나 쏟아놓는 코믹 소설이 아닌 추리 소설이라고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웃음’ 뒤에 있는 작가의 이해와 애정에 더해 매 편마다 준비되어 있는 작은 반전 때문일 것이다. 물론 우리들의 유쾌한 두 주인공 ‘오가와라 반조’ 형사와 ‘덴카이치 다이고로’ 탐정의 공도 빼 놓을 수는 없으겠지만...ㅎㅎ

 

[명탐정의 규칙]을 읽으면서 느꼈던 또 하나의 감정은 ‘향수’다. 작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매 편의 이야기마다 한가지씩의 전형적인 트릭을 소개하는데, 전형적이라는 것은 바꿔 말하면 전통적 이라고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언젠가 한번쯤은 본 듯한 트릭을 만날 때마다 필자가 좋아하는 ‘셜록 홈즈’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들, 그 고전 추리 소설. 전통 추리 소설들이 떠오르는 것이다. 작가는 ‘흉기 이야기 - 살인의 도구’편에서 이런 이야기를 한다.

 

“명탐정이 수수께끼를 풀어 가는 장면 따위는 앞으로 점점 줄어들 거예요. 뭐, 어쨌건 우리 같은 사람들은 소설의 재미를 유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수밖에 없겠지요.”

 

과학 기술이 발달하고 수사 기법과 환경이 전문화 되면서 명탐정이 활약할 여지가 줄어든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명탐정의 규칙]에서도 몇 번이나 ‘오가와라’ 형사가 이야기 하지만 현실 세계에서 경찰이 탐정에게 시시콜콜 사건 정황을 이야기하고 공유하는 일 따위는 없는 것이다. 현실에서는 이제 ‘셜록 홈즈’나 ‘에르큘 포와로’같은 명탐정을 만날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렇다는 것은 현대 소설에서 또한 그들을 만나기는 힘들다는 이야기가 되리라. 명탐정의 시대는 아련한 추억으로만 남게 된다는 것이다. [밀레니엄], [쓰리 세컨즈] 같은 극 사실주의 미스터리를 불과 얼마 전에 신나게 읽은 주제에 고전 ‘명탐정’에 대한 ‘향수’를 이야기하기에 다소 민망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그리움은 그리움이고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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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12-05-09 19: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일본에서 히가시노 게이고가 명탐정의 규칙을 쓴 가장 큰 이유는 기본적으로 서구에서 발달된 본격 추리 소설에 사용된 트릭이 고갈되었기 때문이죠.서구의 경우 30~40년대의 본격 추리소설의 황금시기를 보내면서 트릭이 고갈된 측면과 그에 대한 반동으로 하드보일드 소설이 성행하게 됩니다.일본의 경우도 서구의 수많은 본격추리 소설이 거의 번역되고 일본 작가들역시 본격 추리 소설을 쓰면서 트릭이 고갈되죠.그러한 과정에서 명탐정의 규칙이 나오게 된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국내의 경우는 이른바 본격 추리 소설이 도일과 크리스티,퀸및 체스터턴의 몇 작품을 제외하고는 거의 소개되지 않고 부웅 떠서 일본의 추리 소설및 현대 영미 사실주의 미스터리로 넘어가 경향이 있습니다.그래선지 미스터리 트릭의 고갈 운운하는 것이 가슴에 와닿진 않지요.황금시대의 본격추리소설이 다 번역되고 그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 정말 소원입니다ㅜ.ㅜ

휘오름 2012-05-09 20:15   좋아요 0 | URL
음..그런 사정이 있었군요. 트릭의 고갈이라.. 어찌보면 행복한 일이군요. 그정도로 하나의 장르가 활성화 됐다는 것은 그만큼 팬에게는 즐거운 일일테니 말입니다. 국내 추리소설 시장이 그렇게 활발한 편은 아니라고 느껴왔지만요.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저같이 소프트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황금시대의 작품들이 출간되어 나오는데로 고민없이 구해 봐도 항상 신선한 작품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지 않을까요...물론 좀 억지일지도 모르겠지만요..ㅎㅎ
아무튼 저는 이렇게 새로운 작가와 작품을 만날 수 있어 즐겁군요.
 
쓰리 세컨즈 1 - 생과 사를 결정짓는 마지막 3초 그렌스 형사 시리즈
안데슈 루슬룬드.버리에 헬스트럼 지음, 이승재 옮김 / 검은숲 / 201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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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얼리즘! [밀레니엄] 시리즈부터 이 [쓰리 세컨즈]까지, 필자에게는 느닷없이 팝! 하고 튀어나온 것처럼 느껴지는 스웨덴 미스테리 문단의 기조가 이 리얼리즘이 아닐까 생각된다. [밀레니엄]을 읽기까지 스웨덴이라는 나라가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몰랐던 주제에 그것도 고작 두 편의 작품만으로 거창하게 문단의 기조를 이야기하기에는 성급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만큼 [밀레니엄]과 [쓰리 세컨즈] 두 미스테리에서 신선하고 강렬한 인상을 받은 것 또한 사실이다.

 

필자가 [쓰리 세컨즈]를 만나게 된 것은 예스 24의 이벤트를 통해서이다. 영화 [무간도]의 이야기부터 여러 미스테리 문학상 수상 내역 등 작품에 대한 온갖 찬사와 치장의 말들 가운데 필자의 눈길을 끈 것은 ‘스티그 라르손'의 뒤를 이을 작가라는 문구였다. 신간 소개야 워낙에 칭찬 일색인데다가 조그만 것도 마구 부풀리는 과장이 일반적 이다보니 기본적으로 소개 글은 무시하는 편이지만 [밀레니엄]을 워낙 재미있고 인상 깊게 읽었던지라 관심이 끌리지 않을 수 없었는데 결국 4회 연속 이벤트의 맨 꼬다리에서 간신히 당첨되어 책을 받아보게 되었다.

 

책은 뭔가 비밀이 숨겨져 있는듯한 음산한 분위기의 교도소 복도를 배경으로 하는 표지 디자인의 소프트 커버에, 종이 질이나 내부 편집도 괜찮고 가독성도 좋은 편이다. 일단 이렇게 외관에는 높은 점수를 줄 만 한데, 가장 중요한 내용은 어떨까?

 

아마 [무간도]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대충 눈치 채셨겠지만 [쓰리 세컨즈]는 경찰 정보원의 이야기 이다. 처음에는 다소 지루한 느낌이었다. 스웨덴 이라는 필자에게는 낯선 나라의 생소한 지명과 이름들이 계속 새로 등장 하는데다 이걸 또 시시콜콜할 정도로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어 적응하기가 결코 쉽지 않았다. 등장인물들의 심리까지 너무 늘어놓는게 아닌가 싶은데 이렇게 주저리주저리 늘어놓은 이야기들이 페이지를 넘어갈수록 마치 직소 퍼즐처럼 하나씩 하나씩 짜 맞추어져 커다란 그림을 완성해 나간다. 튼튼한 건물을 짓기 위해 기초를 깊고 단단하게 다지는 느낌이랄까. 이런 느낌은 중후반으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초반의 낯선, 그래서 다소 지루했던 배경에 일단 적응하고 나면 이야기의 조각이 하나씩 맞춰질수록 기어도 한단씩 올라가듯 점점 속도를 더해가다 클라이맥스에 이르러 전체의 그림이 완성되는 순간 꽝! 하고 폭발하는 느낌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듯 흩어져 있던 이야기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점을 향해 자석처럼 달라붙어 빨려 들어가는 이 느낌, 이 흥분되는 느낌이 [밀레니엄]에서 느꼈던 바로 그 느낌이다. 이러한 이야기의 흡인력, 그리고 폭발력은 이 리얼리티, 극도의 사실성에 있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가끔 지나치다 싶을 정도의 세밀한 묘사와 설명으로 보여지는 현실감, 실제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은 절대 알 수 없을 그 사실성이 기반이 되어 전체 작품에서 독자를 사로잡는 힘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이다. 작가는 민간 정보원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와 경찰의 정의에 대해 진지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이러한 진한 문제의식 또한 더해져 작품의 완성도를 높여주고 있다.

 

이러한 사실성과 치밀한 구성 그리고 진지한 사회 인식까지, 왜 [쓰리 세컨즈]의 작가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가 ‘스티그 라르손'에 비견되는지 알 수 있는 장면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리스베트 살란데르'가 있는 이상 [밀레니엄]의 아성이 쉽게 무너질 리는 없겠지만 ‘살란데르'같은 매력적인 캐릭터가 아무렇게나 쉽게 나올 수 있는 캐릭터가 아닌 만큼 이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쓰리 세컨즈]에는 억울한 일이 되리라. 이야기가 나온 김에 얘기 하자면 [쓰리 세컨즈]의 캐릭터도 매우 좋다고 생각한다. 각각 개성도 있고 역할도 있다. 불필요하게 등장해서 뻘쭘하게 서있는 캐릭터는 없다. 무엇보다 생동감이 있다. 고집 세고 까칠한 노형사 ‘에베트 그랜스', 필요하다면 살인도 주저하지 않을, 하지만 아내와 아이들을 너무 사랑하는 냉혹하고 냉정하면서도 인간적인 정보원 ‘피에트 호프만', 노형사의 변덕을 익숙하게 받아주며 그의 손발이 되어주는 유능한 형사 ‘스벤'과 ‘마리안나' 등등……. 누구 하나 꼭두각시처럼 작가의 손끝에 조종되고 있다는 느낌을 주지 않는다. 문장부호와 행간을 호흡하고 그 순환계에는 잉크가 흐르는 생명체인 것이다.

 

‘스티그 라르손'이 작고하여 더 이상 [밀레니엄]의 이야기를 만날 수 없는 아쉬움을 달랠 길 없던 필자에게 [쓰리 세컨즈]는 가뭄에 단비 같은 작품이 아닐 수 없었다. ‘엘러리 퀸'처럼 ‘안데슈 루슬룬드'와 ‘브리에 헬스트럼'의 콤비도 부디 오래오래 살아남아 앞사람을 뛰어넘는 좋은 작품을 많이 남겨주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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