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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지 않으면 버려라 - 인생이 빛나는 곤마리 정리법
곤도 마리에 지음, 홍성민 옮김 / 더난출판사 / 2016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더이상 넓은 집이 필요없게 되었다.
전처럼 찾아올 손님도 친척도 없을 뿐만 아니라 끼고살것만 같던 내 피붙이 애들마저도 군으로 학교 기숙사로 떠났지 않았는가? 혼자서 감당하기에 너무 큰 집이었다. 나는 혼자서 눈 뜨고 혼자서 밥을 먹었다. 생명체라곤 나와 내 그림자밖에 없었다. 내 그림자는 살아있고 나는 유령일지도 모른다는 착각이 들 정도로 나와 내 그림자에겐 공허하기 짝이 없는 휑뎅그런 공간이었다. 이 기막힌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서 어떤 날은 눈이 떠져도 일어날 엄두를 못 내고 이부자리에 파묻혀 있었다. 아침 햇살에 이리저리 부유하는 먼지톨을 눈길로 쫒다가 마침내 나는 작은 집으로 옮겨 가기로 마음먹었다.
이사를 결심하고 꼬박 2년 6개월간 내 살림살이를 정리하였다. 못해도 하루에 하나씩은 버리기로 마음 먹고 '365개 버리기 프로젝트'라는 거창한 이름까지 지어붙였다. 혹시나 오해할까봐 미리 말하겠는데, 정리하기와 버리기를 혼돈해서는 안 된다. 세간에 미니멀 라이프가 유행하면서 아낌없이 다 버리는 걸 종종 본다. 막 버리는 것은 정리하기가 아니다. 다 버릴 것 같으면 48평 세간살이 정도는 하루 아침에 싹 쓸어버릴 수도 있다. 우리 집에 있는 물건들은 살아가는데 각기 필요한 기능과 역활이 있어서 들인 것들이기 때문에 내가 죽으러 가지 않는 한 계속 필요할 것이다. 노동의 댓가를 지불하고 집에 들인 내 재화들을 일순간 쓰레기 취급을 하는 것은 옳지 못하다. 언제라도 요긴하게 쓰일 물건이 있고, 또 어떤 건 추억이 깃들어 있다. 그래서 버리기는 쉬워도 정리는 결코 쉽지 않다.
그 시절 나는 도서관에서 정리 기술에 관련된 책들을 빌려보았다. 깨끗하게 단장한 작고 예쁜 집 화보집도 많이 보았다. 정리는 손으로 하는 게 아니고 정신으로 하는 것, '정리는 마인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책을 읽으면서 내가 원하는 미래의 집 모습을 그려도 보고 의지도 다지게 되었다. 다니던 시립 도서관의 서가에서 정리관련 도서를 남김없이 다 읽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중에 가장 도움을 받았던 책이 '설레지 않으면 버려라'이다. 사실 책 전체 내용보다 책 제목 저 한 마디에 전율했다는 것이 맞겠다. 설레는 감정을 여기까지 적용시키리라곤 생각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책 내용은 제목을 길게 설명해 놓은 정도이다. 제목의 이 한 마디 속에는 정리에 관한 고민과 갈등, 그리고 고난이도 기술이 굉장히 압축되어 있다.
설렘, 설렘이라.........나에게 아직도 설렐 일이 있을까, 어떤 물건들이 아직도 내 심장을 뛰게 할까, 반신반의하며 나는 저자가 시키는대로 눈을 감고 (버릴까말까 결정해야할 대상의)물건에 손을 얹었다. '설레지 않는다-그럼 그렇지, 살아도 산 것같지 않은 허깨비같은 내가 설레다니 말도 안 되지.' 하나 하나 정리해나가다가 어느 날엔가 내 심장이 반응하는 것이 나왔다. 믿어지지 않지만 나는 설레고 있었고, 눈을 떠보니 전자레인지가 묵묵하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래서 그 전자렌지는 글을 쓰고 있는 오늘로 19년째 나와 함께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냉장고가 그러했고, 아이들 성장 사진이 담겨있는 사집첩이며 자질구레한 물건들이 나를 설레게 했다. 그림자보다 더 죽어있던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순간이기도 했다. 설렘은 살아있기에 느끼는 감정이니까.
그 후로 8.5톤의 짐을 3.5톤을 줄여 작은 집으로 이사왔다. 나는 소박하고 아늑한 새 보금자리에서 조금씩 생기를 되찾게 되었다. 어쩌면 나의 리뷰는 얼토당토 않게 무거울지도 모르겠다. 객관적인 서평이 아니라서 페이퍼로 올리는게 더 옳았을지도. 책은 간결하고 밝다. 정리하다가 한번쯤은 봉착할 갈등의 단계에서 어떤 것을 버릴지에 관한 기술을 쉽게 설명해준다. 그러나 뭐 어떠랴, 어차피 전문적인 서평을 위해 쓰는 것도 아니고 보는 이들도 큰 기대를 하고 보는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책이 저자의 손에서 떠나면 어떻게 읽고 어떻게 받아들이냐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니...여튼 나에겐 이 책이 참 그랬다.
/20200314ㅇㅂㅊ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