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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색기행 - 나는 이런 여행을 해 왔다
다치바나 다카시 지음, 이규원 옮김 / 청어람미디어 / 2005년 4월
평점 :
절판
낯선 곳으로의 던져짐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저자의 모습에 경의를 표한다.
산이 저기 있기에 오른다고 하는 말이 있는데 그곳이 어디든 두 발로 갈 수 있다면
나는 가겠다는 자세가 이 책에서 나타난다.
유럽을 걸어 돌아다닌 반핵집회 참가기, 이스라엘의 초청을 받아 아예 팔레스타인까지
돌아 다니고 프랑스에서 와인 혹은 미식 찾아 다닌 여행 등 정말 다채롭게 살았다.
여행을 다니면서 느끼는 바는 역시 공간은 사람을 통해 열린다는 것이다.
아무리 봐도 잘 모르겠던 미술품을 현지 전문 안내인의 깔끔한 해설을 주어담으니
머리가 확 깬 경험도 있었다. 다음 부터는 미술관의 해설 시간을 놓쳐서는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그 때 가졌다.
저자가 밝히듯이 와인과 치즈에 대한 이해는 현지인 내지 동행한 일본인 전문가들에
의해 안목이 넓혀졌다고 한다. 저자 혼자 걸었다면 절대로 그 섬세한 미각을 느끼기도 어려웠을 것이고
포도주 한잔에 프랑스 곳곳이 담겨 있다는 깨달음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 같다.
요즘의 뉴욕의 거리는 아마 이 책에 나온 뉴욕이나 AIDS 이야기하고는 무척 거리감이 있었다.
작가가 다룬 시기는 정말 묘사된 대로 밤거리가 썰렁한 시기였고 지금은 막강한 단속력을
발휘한 뉴욕시장의 업적에 의해 제법 깔끔히 청소된(?) 상태다.
덕분에 시사성은 좀 떨어진다는 독자들의 불만도 수긍은 간다.
그럼에도 이 책의 매력은 다양한 분야에 대한 끊임없는 호기심이다.
어느 곳을 가던지 사람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을 결코 놓지 않는다.
2차대전 유일 피폭국으로서 느끼는 피해의식을 한 걸음 더 나아가 평화운동으로 발전시키는 운동가,
자신들의 사상운동을 확대해 전세계에서 가장 억울하게 생활하고 있는 팔레스타인의 해방운동에
목숨을 던지는 테러리스트, 포도주 한잔에 인생을 걸어 세계 소믈리에 대회에서 우승한 전문가 등
다양한 일본인들의 얼굴들이 나온다.
읽다가 상상력이 놀랍다고 느낀 대목이 또 있다. 9.11 테러의 주범들을 보면서 갑자기 2차대전의
가미가제 특공대원들을 떠올리며 비교하는 것이었다. 천황의 뜻을 받아 자신을 던지는 젊은이들의
죽음을 저자가 칭찬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심리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기장의 문구를 해석해내는
치열함은 새삼 놀라움을 주었다.
또 팔레스타인 문제에 대한 상당히 깊이 있는 이해 또한 도움이 많이 되었다.
아마 한국에서 이만큼 파고 들어간 사람들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중동 전문가라고 자처하지 않으면서도 이렇게 뛰어난 르뽀를 써내려가는 솜씨에 경탄을 안할 수 없었다.
아직 한국에서는 이런 여행기를 가지지 못했기에 때로는 부러움을 때로는 아쉬움을 느낀 독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