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집의 기호에 대해서 

조 말 선

 

건축가가 되자 그녀는 우선 집에 갇힌 그녀부터 구하기로 했다. 현관을 부수었다. 문을 두드리던 손님들이 양떼처럼 쏟아졌다 창문을 깨버렸다 과묵한 가구들이 쨍그랑쨍그랑 재잘거렸다 지붕 위에서는 한 장 한 장 기왓장이 내던져졌다 아직도 그녀가 집에 갇혀 있잖아! 언제나 친절하던 벽이 그녀를 떠받쳐 주었다 벽에 기대어 그녀는 곰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꼼짝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는 생각을 허물까 벽을 허물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친절한 벽을 오래오래 업어주고 싶었다 창조적인 생각으로 팔딱거리는 그녀의 유방이 점점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생각이 흰젖처럼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벽으로 된 집을 허공에 걸었다 기호만 남은 벽이 허공으로 실내장식을 했다 드디어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축가였다

 

 


 

 

 

 

 

 

 

 

 

 

 

 

Garry Moore - Empty Rooms

댓글(2)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로드무비 2004-10-30 1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완벽한 앙상블입니다.
님은 잡지를 하나 창간하셔도 될 듯.
게리 무어도 오랜만이고 몽환적인 그림도 좋아요.^^

에레혼 2004-10-30 23: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로드무비님, 칭찬과 추천, 둘 다 고마워요!
요즘 님의 이미지를 마주할 때마다 가슴속에 따뜻한 웃음 한 조각 빼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