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공에 거미줄처럼 걸려 있는 집의 기호에 대해서
조 말 선
건축가가 되자 그녀는 우선 집에 갇힌 그녀부터 구하기로 했다. 현관을 부수었다. 문을 두드리던 손님들이 양떼처럼 쏟아졌다 창문을 깨버렸다 과묵한 가구들이 쨍그랑쨍그랑 재잘거렸다 지붕 위에서는 한 장 한 장 기왓장이 내던져졌다 아직도 그녀가 집에 갇혀 있잖아! 언제나 친절하던 벽이 그녀를 떠받쳐 주었다 벽에 기대어 그녀는 곰곰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생각과 생각 사이에 꼼짝을 못하겠다고 아우성이었다 그녀는 생각을 허물까 벽을 허물까 망설이고 있었다 그녀는 지나치게 친절한 벽을 오래오래 업어주고 싶었다 창조적인 생각으로 팔딱거리는 그녀의 유방이 점점 크게 확장되고 있었다 생각이 흰젖처럼 줄줄 새어나오고 있었다 벽으로 된 집을 허공에 걸었다 기호만 남은 벽이 허공으로 실내장식을 했다 드디어 그녀는 세상에서 가장 매혹적인 건축가였다

Garry Moore - Empty Room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