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인 조르바
 
   내 삶에 가장 큰 은혜를 베푼 것은 여행과 꿈이었다. 죽었거나 살았거나 내 투쟁에 도움이 된 사람은 극히 드물다. 하지만 내 영혼에 가장 큰 자취를 남긴 사람들의 이름을 대라면 나는 아마 호메로스와 부처와 니체와 베르그송과 조르바를 꼽으리다. 첫번째 인물은 내가 생각하기에는 기운을 되찾게 하는 광채로 우주 전체를 비추고 태양처럼 평화롭고 찬란하게 빛나는 눈이었으며, 부처는 세상 사람들이 빠졌다가 구원을 받는 한없이 깊은 새까만 눈이었다. 베르그송은 젊은 시절에 해답을 못 얻어 나를 괴롭히던 철학의 온갖 문제들로부터 나를 해방시켜 주었으며, 니체는 새로운 고뇌로 나를 살찌게 했고 불운과 괴로움과 불확실성을 자부심으로 바꾸도록 가르쳤으며, 조르바는 삶을 사랑하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쳤다.
 
   힌두교에서는 구루라고 일컫고, 아토스 산의 수도승들이 <아버지>라고 부르는 삶의 길잡이를 선택하는 문제라면 나는 틀림없이 조르바를 택했을 것이다. 그 까닭은, 조르바는 글 쓰는 사람이 구원을 필요로 하는 바로 그것을, 화살처럼 창공에서 힘을 얻는 원시적인 관찰력과, 모든 것을 처음 보듯 대기와, 바다와, 불과, 여인과, 빵이라는 영구한 일상적 요소에 처녀성을 부여하며 아침마다 새로워지는 창조적 단순성과, 영혼보다 우월한 힘을 내면에 지닌 듯 자신의 영혼을 멋대로 조종하는 대담성과, 신선한 마음과, 분명한 행동력으로 마지막으로 초라한 한 조각의 삶을 안전하게 더듬거리며 살아가기 위해 하찮은 겁장이 인간이 주변에 세워 놓은 도덕이나 종교나 고행 따위 모든 울타리를 때려 부수었기 때문이었다. 조르바의 나이먹은 마음은 희생의 힘을 분출해야 하던 결정적 순간마다 인간의 뱃속보다 더 깊고깊은 샘에서 쏟아져 나오는 야수적인 웃음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굶주린 영혼을 만족시키기 위해 오랜 세월에 걸쳐 책과 선생들에게서 받아들인 영양분과, 겨우 몇 달 사이에 조르바에게서 얻은 꿋꿋하고 용맹스러운 두뇌를 돌이켜보면 나는 격분과 쓰라린 마음을 견디기 힘든다. 그가 나에게 한 말과 나를 위해 그가 추었던 춤과 갈탄을 찾는답시고 수많은 노무자들과 크레타 해안에서 여섯 달 동안 땅을 파며 지내던 무렵, 그가 나에게 한 말과 나를 위해 연주한 산투리를 회상하면서 어찌 가슴 벅찬 흥분을 느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우리들은 둘 다 그 현실적인 목표가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기 위해 먼지를 피우는 일임을 잘 알던 터였다..... 나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았다...... 나는 그의 이야기만 들었다. 그는 이야기만으로는 숨이 막히는 것 같으면 벌떡 일어나 바닷가의 울퉁불퉁한 자갈밭에서 춤을 추었다...... 사무실을 차리겠거니 해서 착하신 우리 삼촌이 나에게 준 돈을 나와 조르바는 별로 시간도 없애지 않고 없애 버렸다.(갈탄광의 실패로 하루 아침에 거덜이 난 다음) 우리는 인부들을 해고하고 양고기를 굽고 먹고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기분이 그렇게 좋았던 적이 없었다. 우리는 소리를 질렀다. [작고하신 우리 사업을 신께서는 용서하소서. 그래도 우리들은 만수무강하셔야지! 갈탄은 가셨도다! ]
 
 우리는 그 이튿날 새벽에 헤어졌다.  
 
 
 니코스 카잔차키스
 
 
 
 
* 나에게도 '랍비'라고 불리는 스승이 있다.
그분이 가장 좋아하는 소설 속 인물이 조르바이다.
언젠가 나의 랍비가 쓴 짧은 글 한 토막에서 조르바와 나를 만나게 해주셨다.
 
어제 밤, 랍비와 나는 술을 마셨다.
술을 따라 주는 랍비의 손이 눈에 띄게 떨리고 있었다. 
알콜의 힘으로, 문학의 힘으로, 연애의 힘으로, 절망의 힘으로 살아 온 시간들의 끝에 찾아온 수전증......
 
우리는 오랫동안 함께 술을 마셨다.
취기와 함께, 수전증과 함께, 미세한 떨림과 환멸과 함께, 시간의 매너리즘과 함께, 그저 캄캄한 바닷가의 춤이 되면 좋을 웅얼거림과 함께.....
그리고 우리는 그 이튿날 새벽에 헤어졌다.
 
 
Zorba's dance <Mikis Theodorak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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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lue 2004-09-21 14: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페이퍼는, 항상 집에 가서 다시 봐야 하네요. (회사 컴은 스피커를 빼버렸거든요. ㅠ.ㅠ)

에레혼 2004-09-21 14: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제가 님 사무실 컴에 대해 고마워해야 할까요
두 번씩 발걸음하게 만드는.....

미안하고, 고마워요

로드무비 2004-09-21 15: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전 아침에 <돌의 정원>을 잠깐 펼쳐서 읽었는데......
음악 잘 듣고 가요.^^
(퍼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