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이 방법에 기댈 때 나는 내용에 기댄다. 내용이라니!
아직도 거쳐가야 할 여분의 굴곡이 있는가? 방법을 곧 규범의 현실이라고 바꾸어 놓아도 나는 끝내 그 틀에 익숙해질 것 같지 않다. 어쩌지 못하는 내향성이 끝없이 나를 안으로 움츠리게 한다.
진액이 다 빠져나간 술지게미의 일상을 나는 살고 있지만, 한 지친 모험이 무릅쓰고 가려고 하는 미지가 어디엔가 꼭 있을 것만 같다.
저버리지 않는 믿음의 눈물겨움에 실려 나는 지금 풍경의 풍파 위에 이렇게 떠 흔들린다.
-- 김명인 시집 <길의 침묵>(문학과지성 시인선) 뒷표지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