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인생에 대해 환멸을 느껴 점점 더 고독해 갔다. "인간이란 것을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점점 더 동물을 사랑하게 되었어"하고 그는 말했는데, 물론 그리 진지한 말투는 아니었다.
사람들은 거리에서 지나가려는 사람들로부터는 비키라는 말을 듣고, 서 있으려는 사람들로부터는 밀침을 당했으며, 어디에나 사람들이 줄을 지어 늘어섰다..... 편안하게 되기 위해서는 불안했고, 그 불안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초조했다.
그리고 사람들의 모토는 "오늘은 아무것도 생각지 않겠다. 오늘은 그저 즐겁게 지내고 싶다."는 것이었다.
단순히 생존만을 위한 삶은 고문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머니는 죽음을 두려워했다.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이 이야기에는 가끔 나타난다. 그리고 그것은 어쩌면 '무엇이라 쓸 수 없는 것'인지도 모르는데, 난 그것이 대개는 나의 잘못된 표현 때문이라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의식이 경악하는 순간과 순간들을 취급하고 있다. 너무나 짧아서 언제나 말이 늦게 나오는 경악의 순간들. 너무나 무시무시해서 의식 속에 있는 벌레로서 사람이 생생하게 체험하는 꿈의 과정들. 숨이 막히고 몸이 굳어지고 '오싹하는 냉기가 등줄기를 타고 올라와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는' 그런 순간들, 그리고 수도꼭지가 저절로 열려 황급히 잠그는 유령 같은 순간, 또한 저녁이면 맥주병을 손에 들고 거리를 방황하는 유령의 상태, 그리고 이것은 결코 어떤 결말을 기대할 수도, 결말이 좋아지는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 페터 한트케, <소망 없는 불행>, <<왼손잡이 여인>>, 홍경호 옮김, 범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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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소망 없는 불행...
이 말은 너무 참혹하고 소름 끼칠 만큼 차갑다
우리는 명백하고 실제적인 불행 속에서라도
정체 없는 희망을, 보이지 않는 소망을 버리지 않도록 '양육'되었다
언젠가는 좋은 날이 오리라...
진정한 의지로 극복하지 못할 좌절과 고난은 없다...
그러나 흐릿한 너울 같은 환상을 걷고, 익숙해서 단단하게 굳은 감언이설을 머리에서 지워 내고 냉정하게 투명한 눈으로 바라보자
실제로 이 지상에 살았던 누군가의 삶,
아니 아직 살고 있으며 앞으로 살아가게 될 우리 모두의 삶이란 것의 정체는
어쩌면 '소망 없는 불행'이 아닌지
페터 한트케는 전후의 '소망 없이 불행한' 개인사를 헤쳐 온 한 여성, 자기 어머니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이런 제목을 붙였다
그의 어머니는 '아무것도 되지 못했고 또 그 이상이 될 수도 없었던' 삶을 살다가 자살로 자기 인생의 끝을 맺는다
소설가인 아들은 그 삶에 대해 '소망 없는 불행'이라고 쓴다
'무엇이라 이름 붙일 수 없는 것'이 있는 이야기.....
어쩌면 '무엇이라 쓸 수 없는 것'일지 모르는 이야기를.....
2.
아침 텔레비전 뉴스에서 김선일 씨의 마지막 삶의 한 장면을 보았다
우리는 언젠가부터 그러한 순간을, 부인할 수 없을 만큼 지독한 현장감을 지닌 '비현실적인' 순간을 안방에서 관람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그는 오렌지색 티셔츠 차림에 눈이 가리워진 채 무릎 끓여 앉혀 있었다
한 기자가 그 오렌지 색의 '의미와 상징'에 대해 알려주었다
그의 옆에 선 복면을 한 사내가 그들의 모국어로 적들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읽었다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와 함께 화면에는 친절하게 그 뜻을 옮긴 우리말 자막이 흐르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그들의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을 것이다
동시 통역사나 실시간으로 입혀지는 화면의 자막 따위는 없었을 테니까
그는 제 몸에 걸치게 한 오렌지 색 옷의 의미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의 피랍 사건이 갖는 정치 군사적인 협잡과 거래의 맥락을 이성적으로 파악하고 있지 못했을 테니까
"나는 살고 싶다, 내 목숨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외쳤던
그가 그 마지막 순간 온 몸의 세포로 느꼈을 경악과 공포에 대해서
우리가 무슨 말을 덧붙일 수 있을까
.............
'무엇이라 쓸 수 없는 것들'이 너무 많은 세상을, 우리는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