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케트 팸플릿을 열심히 보고 있는 선생 앞에서 다이스케는 다시 한번 그 종이 쪽지에 있는 문장을 읽고 "이거 제가 가져도 될까요?"라고 물었다.
"뭐하게?"
"그냥, 왠지 갖고 있으면 머리가 좋아질 것 같아서요."
다이스케는 진지한 얼굴로 그렇게 말하면서 "저, 선생님. 지적인 것에 발기하는 경우도 있을까요?"라고 물었다.
"지적인 것? 지성적인 여자를 말하는 건가?"
"아니요, 그게 아니라, 지성 그 자체랄까. 예를 들면 말이죠, 나는 이런 문장을 읽기만 해도 어쩐지 아랫도리 부근이 근질근질해지거든요. 조금 이상한가?"
"호오, 자네는 지성에 발기하나?"
"아니요, 하지 않아요. 그냥 근질근질할 뿐이지."
선생은 유화 그리는 것이 취미여서 다이스케도 선생 부탁으로 모델이 된 적이 한 번 있었다. 완성된 초상화 속의 그는 실물과는 전혀 닮지 않았을 만큼 고상한 얼굴이었다. "선생님, 제 별명이 감자라는 거 아세요?"라고 다이스케가 묻자 선생은 다시 한번 그림을 보고, "이거는 말이야, 천국에 있는 자네야"라고 했다. 다이스케는 그 비유가 마음에 들었다.
미쓰오의 이야기는 물론 거짓말일 것이 뻔하다. 뻔하기는 하지만, 만약 누구 한 사람이라도 그 얘기를 믿어준다면 그것이 사실이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다이스케는 생각했다. 지어낸 얘기가 사실이라는 건 모순이다. 그쯤은 다이스케도 안다. 다만 모순 따위는 소금 뿌려서 먹어치워 버려라, 하고 문득 생각할 때가 있다.
-- <열대어>
치사토의 바람을 용서하는 일은 매우 간단하게 느껴졌다. 나는 테이블 위에 놓인 빈 캔을 들고, '용서하지 않는다'라고 크게 써 보았다. 한참 그 빈 캔을 보고 있었다. 그것이 정말 정직한 내 마음인지 어떤지 몇 번이고 확인했다. 정말로 용서하지 않을 건가? 아니면 용서하지 않는 척하는 것뿐일까?
...... 그러나 그때 나는 갑자기 혼란스러워졌다. 용서하지 않겠다는 결론을 낸 것까지는 괜찮지만, 사람을 용서하지 않으려면 도대체 어떻게 하면 되는 것일까? 그 방법이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남을 용서하는 일이라면 지금까지 몇 번 해본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남을 용서하지 않겠다고 결정하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 <그린피스>
요시다 슈이치 소설집 <<열대어>>, 문학동네
--------------------------------------------
1.
감각적이고 자극적인 이 화려한 '영상'의 시대에
뜻없는 자음과 모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문자의 '의미'를 통해 '발기'가 되는 그 어떤 상태...
멋지다... 그리고 질투를 느낀다, 그런 지점에 가 닿아 있는 사람들에게
가끔은 느낀다
문자로 발화되는 이 언어의 세계가 얼마나 요염할 수 있는지,
얼마나 감각적으로 내 몸 안의 그 무엇을 건드리고 애무하는지
지금 나의 비애는
나 자신 애무를 받기보다 누군가에게 애무를 주고 싶다는 욕망,
'이런 문장을 읽기만 해도 어쩐지 아랫도리 부근이 근질근질해지'도록 만들고 싶다는 그런 욕망과,
상상력과 표현력의 '불감증'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나의 이 고여 있는 현재 사이의 그 아득한 거리에 있다!
2.
"누구 한 사람이라도 믿어준다면 그것은 사실이 되는 것"
........
"진정으로 거짓말을 잘하는 법은, 그 속에 진실을 조금씩 섞는 법이다."
<에덴의 동쪽>에 이런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자기만의 멋진 거짓말을 만들어 내는 법과
그 속에 진실을 어떤 비율로, 어떤 배합으로 섞어넣느냐 하는 기법......
거짓말과 진실의 칵테일 한 잔!
3.
창 밖이 어두워지고 있다
태풍이 올라오고 있다
이번 태풍의 이름은 ‘천둥과 번개를 관장하는 여신'이란 뜻을 가진 디앤무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