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들을 좋아했다. 그들의 친구들이 느꼈을 그런 유의 호감을 갖게 됐다. 단순히 그들이 모델로 적합하다면 채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이렇게 완벽한데도 어쩐지 미심쩍은 구석이 있었다. 결국 그들은 아마추어였고 내게는 아마추어 혐오증이 있었다. 또 내게는 다른 괴벽, 진짜보다는 재현된 주제를 더 좋아하는 타고난 괴벽이 있었다. 진짜의 결점은 너무 쉽게 재현의 걸림돌이 된다는 것이었다. 나는 진짜보다는 오히려 그럴싸해 보이는 게 좋았다. 그런 것에는 믿음이 갔다.
"아, 이 사람들은 안 되겠어!"
"새 모델을 쓰고 있어."
"그건 알겠어. 이 사람들은 안 되겠어."
"아무도 이 사람들에 대해 비판한 적이 없는데. <칩사이드> 쪽 사람들도 괜찮다고 하던데."
"모두 멍청이인 데다 <칩사이드> 쪽 사람이 정말 멍텅구리라서 그래. 자, 요즘 같은 세상에 대중이나 특히 출판사 편집장에 대해 환상을 가지고 있는 척하지 말게. '그런' 멍텅구리들을 위해 일하고 있는 건 아니잖아. 자네를 알아보는 사람들을 위해서잖아. '거장을 알아보는 사람'들 말일세. 자네 자신을 위해 일할 수 없다면 계속 날 위해서 그려주게나. 과거에 자네가 시도하던 것들 말일세-- 정말 아주 멋졌다네. 하지만 이 쓰레기는 그런 유가 아니야."
-- 헨리 제임스, "진짜" 중 (헨리 제임스 단편선 <밝은 모퉁이 집>, 조애리 옮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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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저녁 겸 술안주로 족발을 시켜놓고, 드라마 <결혼하고 싶은 여자>를 보고 있던 참이었다.
요즘 한창 '나이가 찬' 결혼 전의 여자들에게 전폭적인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다는 드라마...... 명세빈이 그 역할을 맡고 있는 '이신영 어록'까지 속속 만들어져 매니아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는 소문이다.
나는 오늘 처음으로 이 드라마를 온전히 한 자리에 앉아 보았는데, 왜 <결혼하고 싶은 여자>라는 드라마가 '아직 결혼하지 않은', 그래서 '결혼하고 싶어하는' 여자들의 지지와 공감을 얻고 있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오늘 그 여자들의 주제는 "내 인생에서 진정으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를 찾자!"였다.
결혼이냐, 일이냐/ 사랑이냐, 인생의 성취냐...... 젊은 여자들에게 던져지는 물음은 거의 언제나 명백한 이분법에 기초하고 있지만(문득 대학 졸업 즈음 치른 한 면접 시험에서 나 역시 이런 질문을 받았던 장면이 떠오른다. "당신은 사랑과 성공 중에 하나만 가지라고 한다면 어느 쪽을 선택하겠는가?"-- 내가 여자가 아니었다면, 결혼하지 않은 젊은 남자였더라도 내게 같은 질문이 주어졌을까... 물론 아닐 것이다!), 이미 결혼을 했든 하지 않았든, 여자이든 남자이든, 미성년이든 성년이든, 어쨌든 누구이건간에 그에게 가장 먼저 던져져야 할 물음은 바로 이것, "네가 네 인생에서 정말 하고 싶은 건 뭐지?"라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2.
한 후배가 '머리꼭지가 돌도록' 술을 마시고, 느긋하게 드라마를 보고 있는 내게 전화를 걸어왔다.
저나 나나 잘 아는 한 지인이 이번에 등단을 했다는 소식이다. 등단-- 세상이 공인하는 시인이 '된' 것이다.
대학 때부터 시를 써 온, 그리고 주변에서 "시를 잘 쓴다'는 평을 들어 온 후배는 지난 몇 년간 논술시장에 뛰어들어 제법 실속있게 돈을 모았다. 한국 사회의 사교육 시장은 아이엠에프 같은 위기상황에도 '불황'이 없었고, 후배는 주말과 휴일을 반납하면서까지 부지런히 '먹이 사냥'에 열중했다. 친구들로부터 '처녀 재벌'이라는 농담을 들을 만큼 적금 통장에 기입되는 숫자가 늘어나는 동안 후배는 시를 잃어버렸다. 아니, 그 자신의 표현을 빌자면 뜨거운 자기 욕망을 숨기고 비겁하게 도망쳐 있었다. '정말 사랑하는 것으로부터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나는 비겁해. 너무 비겁해. 그 동안 남 모르게 시를 써 온 것도 아니거든. 단 한 줄도 쓰지 않았으면서, 줄곧 사랑하지도 않았는데 배신당한 것 같은 이 기분은 뭘까."
"그의 등단작을 읽어봤는데, 그렇게 썩 좋지도 않더라구. 진짜 그에게서 나온 게 아니라 어떤 기준에 맞춰 만들어 낸 것 같은 그런 느낌. 질시의 감정 때문일까. 그게 정말 그의 진짜일까. 세상은 그런 걸 진짜로 받아들일까......"
후배는 술기운에, 뒤통수를 맞은 것 같은 씁쓸함과 자괴감에 울고 있었다.
나는 묵묵히 후배의 넋두리를 들어주었다.
나는 이미 알고 있다.
며칠쯤 그런 씁쓸함에 잠겨 지내다 보면 얼마 안가 곧 등단을 한 누군가에게 향해졌던 시선이 다시 자기 자신에게로 돌아올 것이라는 걸.
결국 중요한 건 누가 나보다 먼저 '내가 하고 싶었던' 그 무엇을 했느냐가 아니라(그건 그의 인생의 대가이자 몫일 뿐!),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느냐', 그리고 앞으로도 그 사랑의 대답이 쉽게 들려오지 않는다 해도 변함없이 사랑하며 그 길을 갈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라는 걸!
3.
헨리 제임스는 <진짜>에서 예술과 현실의 관계에 대해 묻고 있다.
헌데, 나는 아직 잘 모르겠다.
진짜를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진짜를 어디서 버려야 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