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당신에게 이렇게 속마음을 털어놓는다는 게 무슨 뜻인지 모르세요?"
"무슨 뜻입니까?"
"난 그동안 죽 그런 끔찍한 느낌을 갖고 살아 온 생활이 피곤해졌어요. 나는 당신이 내 고통을 덜어주기를 바라고 있어요. 뭔가 올바른 말을 해주길 원해요. 뭔가 치료 방법을 좀 알려주세요."
그는 빨간색 체크 무늬 스커트에 딸기 티셔츠를 입고 있는 그 여인을 쳐다보았다. 아직 서른이 되지 않았지만, 남편도 아이도 사랑하지 않고 이미 인생에 진력이 나 버린 그 여인을. 그녀의 고백은 그를 우울하게 했다.
.......
이미 그녀 자신이 말했듯이, 정직하게 털어놓는 것은 그녀의 기분을 한결 낫게 해줄 것이었다.
어쩌면 그가 중재인으로 나서서 부부의 인생 상담을 거들어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가장 본질적인 질문으로 문제의 핵심을 찌르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이렇게 물었다.
"다스 부인, 당신이 느끼는 것이 정말로 아픔입니까, 아니면 죄의식입니까?"
그녀는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보았다. 그녀는 뭔가 말을 하려고 입을 벌렸다. 그러나 카파시 씨를 노려보는 그 순간, 어떤 깨달음이 그녀의 눈앞을 스쳐 지나갔고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그것은 그를 아프게 했다.
-- 줌파 라이히, "질병의 통역사" 중 (<축복받은 집>, 이종인 옮김, 동아일보사)

----------------------------------------------------------------------------
며칠 동안 책이 손에 잡히질 않았다. 별다른 탈출구를 알지 못한 탓에 짐짓 자신의 기미를 모른 체하며 책을 펼쳐도 마음은 자꾸 다른 곳을 서성이고 있었다.
책을 읽는 것이 조금도 위안이나 즐거움이 되지 못할 때, 나는 어디로 도망쳐야 했을까.......
아침에 빨래를 널다가,
문득 아주 오래 전 막연히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던 그 아득한 마음이 떠올랐다.
아주 오래 전부터, 나는 왜, 무엇을 쓰고 싶어했던 걸까.
그건 어쩌면 이 행성에서의 내 삶이, 내 존재가 너무도 분명하게 유한한 것이어서 언젠가 내가 깨끗이 여기서 '사라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몸으로' 느낀 최초의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일지도 모른다.
열 살 무렵이었던가, 내가 죽고 난 뒤에도 아무 상관없이 우주는 여전히 '존재'할 것이라는 생각과 내가 죽고 나면 나는 '아무 것도' 느낄 수도, 생각할 수도 없을 거라는 무섭도록 선명한 자각이 들기 시작한 어느 밤 이후부터, 나는 무언가를 끄적이기 시작했던 것 같다.
언젠가 소멸되고 말 나를 영영 '사라지기 전에' 좀더 잘 알고 싶다는 마음,
사라짐을 운명으로 하는 이 존재의 아픔과 슬픔을 '얘기하고 싶다'는 마음,
삶 전체에 대해서는 비관적이면서도 삶의 순간 순간에는 낙관과 희망을 버리지 못하는 나라는 창을 통해 세계를 이해하려는 자세
줌파 라이히는 <질병의 통역사>에서 그렇게 묻고 있다.
"당신이 느끼는 것이 정말로 아픔입니까, 아니면 죄의식입니까?"
몇 년 전, 이 소설집을 읽었을 때는 별 감흥 없이 지나쳤었나보다.
오래 전 읽었던 책을 다시 펼쳐들었을 때, 지금의 마음의 움직임이 예전에 그어놓은 밑줄 부분과 미묘하게 어긋나는 걸 느낄 때가 있다.
내 눈이 좀더 깊어졌든가, 아니면 나이가 들었다는 의미이겠지.......
인도 벵갈 출신의 부모에게서 태어나 런던과 뉴욕에서 자란 줌파 라이히는 자신의 성장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변방의 삶' '경계의 삶'을 이해하는 눈을 가질 수 있었던 것 같다.
여성, 이방인, 이민자, 해외 체류자의 삶을 절묘하게 포착하면서, 섬세하고 미묘한 삶의 한 단면을 날렵하게 포착하는 솜씨를 지니고 있다.
그녀의 첫번째 소설집인 <축복 받은 집>을 몇 년 만에 다시 읽으면서, 이제 나는 회복된 느낌이다.
그래, 소설의 힘이 이런 거지.
자신의 '질병의 통역사'가 되는 것.......
언젠가 막연하면서도 간절하게 '무언가 쓰고 싶다'고 느꼈던 그 마음을 회복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