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마치 어느 날 아침 문득 입안에 맴돌기 시작한 멜로디를, 별뜻 없이, 아니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보이지 않게 감겨져 있던 태엽이 자동적으로 풀리기라도 하듯, 하루 종일 웅얼거리게 되는 날이 있는 것처럼,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띄게 된 작가를 며칠째 계속 마주치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더이상 그를 피해 갈 수는 없는 것이다. 막다른 골목길에서 마주친 신비하고 기묘한 그림자(아직 정확한 실체를 알 수 없는)의 압도적인 존재감!

이번에는 윌리엄 포크너이다.
결국 그의 책들(우리말로 옮겨진...)을 거의 다 구하고야 말았다.
<8월의 빛>, <곰>, <압살롬, 압살롬>, <음향과 분노> <내가 죽어 누워 있을 때> 그리고 단편집 <에밀리에게 장미를>까지.......

언젠가 들춰봤던 책에서, 나는 포크너가 말한 이 구절,
"같은 시대나 앞의 시대 사람들보다 훌륭해지겠다는 생각 따위는 집어치워야 합니다. 자기 자신보다 훌륭해지려고 애를 써야 해요. 예술가는 악마들에게 쫓기는 짐승입니다. 그는 왜 악마에게 선택되어 쫓기는지를 모르고 너무 바빠서 그런 걱정을 할 여유조차 없습니다. 그는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누구에게나 아무에게서나 빼앗고 빌어오고 구걸하고 훔친다는 점에서 완전히 도덕을 초월한 셈이죠."에 밑줄을 그었다.

 


아침 나절에 투표를 하고 나서,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광합성'을 하리라 마음 먹었었다.
투표소에서 마주친 사람들 거개가 등산복이나 나들이 차림을 하고 있었던 데 자극을 받은 것인지, 아니면 이즈음 방안에 갇혀 지내다 보니 현저히 느끼게 되는 산소 부족과 일조량 결여 증세 때문이었는지, 어쨌든 나로서는 다소 비장한 결심을 했던 셈이다.
햇빛이 다 스러지기 전, 오후 다섯 시 즈음, 집 가까이에 있는 숲을 찾아가 한 시간쯤 나무 아래 앉아 나뭇잎을 통과해서 내려오는 햇빛과 바람을 쐬고 왔다.
저녁 때는 친구들과 한 지인의 카페에 둘러앉아 개표 방송을 보며 맥주를 한잔 마셨다.
세상이 더 좋아지려는지,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사실 거기에 마음의 촛점이, 내 안의 시선이 가 닿아 있는 것도 아니다.
다만 혼자 속으로 중얼거리고 있을 뿐이다.
나는 더 좋아지고 있는가, 나는 어떤 식으로든 변화하고 있는가....... 나, 끝까지 자신에게 지치지 않고 갈 수 있을 것인가......
나 자신보다 훌륭해지려는 욕망과 조바심과 거기에서 오는 현실과의 이 몽롱한 괴리감

독백이 아니라, 멋부린 중얼거림이나 하룻밤 정도의 효력을 지닌 자위가 아니라, 아주 작은 원 안에서나마 진정한 소통을, '공감'을 갖고 싶다!
찰나 같은 순간일지라도, '한 사람이 일생을 두고 누릴 만큼의 위로'가 되는 그런 전류의 무엇을!


그런데, 지금 이렇게 호기롭게 바닥에 드러누워 중얼거릴 게 아니라 염결한 침묵과 엄정한 관조 속에 '글'을 써야 하는데......
마라톤 경주 나서기 전 뜬금없이 한밤에 맨손체조 하는 셈! 치자고 생각하면서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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