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라리스 그리폰 북스 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강수백 옮김 / 시공사 / 1996년 6월
평점 :
절판


<솔라리스>

(스타니스와프 렘 원작, 강수백 옮김, 시공사 그리폰 북스 007)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

 


그럴 때가 있다. 내가 지금 여기 이렇게 '분명하게' 존재하고 있는데도, 이렇게 무언가를 먹고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잠자고 사람들과 얘기하고 있는 이 순간이 비현실이고, 진짜 나 자신은 어딘가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여기 있는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거나, 그런 나를 기억하는 또 다른 내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들 때.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확실하고 유일한 하나의 삶 속에서만 살고 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고. 두 겹, 세 겹, 때로는 몇 겹의 삶을 동시에 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고. 우리는 일상이라는 분명해 보이는 현실을 살면서, 기억이라는 이름의 길을 따라 하염없이 걷기도 하고, 아직 살아 보지 않은 시간을 마치 '산 것처럼' 살고 있기도 하다. 거기에는 내가 아는 나와 내가 아직 발견하지 못한 나와 내가 잊고 싶어하는 나와 언젠가 한번은 만나 보기를 꿈꾸는 나가 함께 살고 있다.
SF란 장르는 바로 이런 데서 출발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 겹의 삶이 동시에 가능하다는 생각, 우리가 '현실'이라고 부르는 꼭 지금 여기만이 아닌 다른 세계가 동시에 가능하리라는 상상과 믿음에서...... 그리고, 어쩌면 세계란, 우주란 실은 우리 자신도 이해하지 못한 채 우리가 기억하고 상상하는 바로 그런 모습일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의 기억이 만들어 내는 세계... 내가 알고 있는 것이 시작이자 끝인 세계...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한 소통도, 현존도 없는 세계... 그러나 '이해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결국은 본질적으로 '이해한다'는 것이 부질없는 허공의 개념인 그런 세계. 
   
스타니스와프 렘의 원작 소설을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가 영화로 만든 <솔라리스>는 바로 그런 세계의 밑그림에서 탄생한 우주의 한 공간이다.
붉은 태양과 푸른 태양, 두 개의 태양 주위를 복잡한 궤도를 그리며 돌고 있는, 바다로 뒤덮인 행성 솔라리스. 조사 결과 그 바다는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가진 자율적인 세계인 것으로 판명된다. '생각하는 바다' '현자의 바다' 또는 '자폐증적 바다'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바다에 둘러싸인 행성 솔라리스의 신비를 캐기 위해 지구에서 파견된 우주 심리학자 크리스 켈빈.
솔라리스에 도착한 켈빈은 여기에 먼저 와 있던 두 과학자를 만난다. 스나토우와 사르토리우스 두 사람이며, 물리학자 기바리안은 이미 자살한 후였다. 도착한 직후부터 이상한 일들을 겪으면서 켈빈은 행성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에 대해서 체험하게 된다. 솔라리스의 바다는 인간 의식의 가장 깊숙한 내면에 감추어진 기억을 읽어내고, 그 이미지를 구체화해서 다시 그 기억의 주체에게로 되돌려 보낸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켈빈이 만나게 된 것은 10년 전에 세상을 떠난 자신의 아내 레야(타르코프스키의 영화에서는 '하리'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 켈빈의 기억에서 재생된 아내 레야는 아련한 추억의 입자처럼 허망하면서도 꿈결처럼 아름답다. 실제로 그녀는 말 그대로 켈빈의 꿈이기도 하다. 솔라리스의 '생각하는 바다'가 자료로 삼은 건 바로 켈빈의 기억과 욕망과 죄의식이었으니까. 10년 전, 레야는 켈빈과 한바탕 다툼 끝에 그만 홧김에 그가 실험하려고 냉장고에 넣어 두었던 약품을 먹고 자살해 버렸다.

"그녀는 내가 마지막으로 보았던 모습 그대로였다. 그때는 열 아홉 살의 소녀였다. 살아 있다면 지금은 스물 아홉 살이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도 변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이지만 죽은 자는 영원한 젊음을 유지하는 것이다."( 76쪽)

지금 켈빈 앞에 나타난 이 여자는 진짜 레야가 아니라 레야의 복제물이다. 그것도 레야의 기억이 아니라 켈빈의 기억이 만들어 낸..... 자신의 기억이 만들어 낸 존재와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랑은 실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기억의 복제물에게 느끼는 사랑은 예전에 실존했던 인물, 과거에 자신이 사랑했던 '진짜 그 사람'에 대한 배반이자 불륜은 아닐까.

"이게...... 나일까요?"
내 입술이 그녀의 이름을 소리 없이 불렀고, 그녀는 나를 대신해서 질문했다.
"레야라고요? 하지만...... 난 레야가 아니에요. 그럼 난 누구죠? 그리고 당신, 당신은 누구예요?"
...................
"당신은 여기 있어. 당신은 존재하고 있어. 내겐 그것만으로도 충분해."
긴 침묵이 흘렀다. 그는 고개를 떨구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당신은 나를 레야라고 부르지만...... 나는 내가 당신이 예전에 사랑했던 여자가 아니라는 걸 알아요." (201- 203쪽)

솔라리스의 레야는 진짜 레야의 복제물이 아니라 켈빈이 '기억하고 있는' 레야를 재구성한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기억을 갖고 있지 않은'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마치 뭔가를 잊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들어요. 기억나는 건 당신일 뿐이고 그 외에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아요."(83쪽)


내가 나인 것은 '나의 기억' 때문일까. 내가 나라고 알고 있고, 그렇게 받아들이고 있는 기억이 나라는 존재를 만드는 것일까. 나의 육체가 소멸해도 나의 기억을 다른 육체에 옮겨 놓으면 내 정체성은 유지되는 것일까. 켈빈의 기억을 통해 다시 물질화된 레야처럼......

이런 '기억과 존재'의 상관 관계에 대한 질문과 함께 <솔라리스>는 우리와 다른 세계에 대한 '이해와 소통'이란 주제에 대해서도 질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에게 다른 세계란 무엇일까.

"그건 마치 해독 불가능한 언어로 씌어진 책으로 꽉 찬 도서관 안에서 헤매는 것과 마찬가지야.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고 기껏해야 책표지 색깔이나 바라보는 주제에!" (226쪽)

"우리는 모든 별과 행성에 이름을 붙였지만, 그러나 그 모두가 처음부터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것, 그리고 이 행성의 바다는 "우리와는 다른 방법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서로의 존재를 보는 것처럼 우리를 지각하고 있는 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게 된 것이다. (251쪽)

이처럼 원작 소설 <솔라리스>는 인간과 미지의 외계 존재와의 커뮤니케이션의 단절에 대해서 얘기하고 있다. 이 우주에는 인간이 아무리 애써 봐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존재가 있을 수 있고, 그러한 현실은 이 광막한 우주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고 미약한 존재인가를 깨닫게 해줄 것이라는 얘기다. 렘은 소설에서 묻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우주의 척도로 볼 때 단지 고독한 군중의 일부인 것은 아닐까?"라고.
이런 소설의 시각을 타르코프스키는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펼쳐 보여준다. 영화는 완전한 이해와 소통이 불가능한 단절을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을 상실한 데 대한 아픔으로 승화시켰다. 인간에게 가장 소중한 것, 바로 사랑을 얘기하고 있는 것이다. 켈빈을 비롯한 솔라리스의 우주인들은 지구를 멀리 떠나 온 광막한 우주에서 비로소 잊고 지냈던 양심과 죄의식과 수치심을 되찾게 된다. 켈빈은 양심의 고통을 통해 인간의 영혼을 살리는 가장 중요한 힘인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고 새롭게 태어나 지구로 돌아온다.
 
"우리가 원하는 건 인간 이외의 그 어느 것도 아니야. 지구 이외의 다른 세계 같은 건 필요 없어. 다만 우리를 비출 거울이 필요한 것뿐이야. 다른 세계 같은 건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도 모르고 있어. 우리에겐 지구 하나만으로도 충분하니까. 그렇지만 그 지구만으로는 뭔가 불충분한 것같이 느끼지. 그래서 우주에서 이상향을 찾아보려고 하는 거야. 우리는 지구 문명보다 더 완전하고 우수한 문명을 가진 세계를 찾아 우주로 나가지만, 실제로는 우리의 미개했던 과거의 연장선상에 있는 존재를 찾아 헤매고 있는 거야." (105쪽)

영화는 처음으로 다시 돌아온다. 켈빈은 집을 향해 걸어간다.
그리고 창문 너머로 안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아버지가 보인다. 두 사람은 서로 창문 사이로 마주 본다. 집에서 천천히 나온 아버지 앞에 켈빈은 무릎을 꿇고 앉아 아버지를 감싸 안는다. 그때 카메라는 빠르게 하늘로 날아오르고, 두 사람은 하나의 작은 점이 되고, 이제 지구는 우주의 광활한 바다에 떠 있는 작은 섬, 하나의 작은 행성일 뿐이다.
 
 SF는 은유와 상징의 언어이다. 알 수 없는 거대한 우주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현실'을 말하고 있다. 솔라리스를 방문해 자신의 기억과 잠재 의식의 상처와 싸우고 돌아오는 크리스 켈빈의 존재는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매순간 타자와 관계 맺으며 살아가는 인간의 존재 조건을 보여주는. 자신의 궤도를 돌다 가끔씩 같은 궤도를 지나는 또 다른 행성과 조우하는 밤하늘의 별들처럼, 불확실하고 막막한 '타자'라는 거대한 우주에 몸을 던질 수밖에 없는 운명을 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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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리즈 2004-11-15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원작인 소설은 읽지 않았지만, 타르코프스키의 영화 "솔라리스"는 혼란과 매혹을 동시에 전해줬던 작품이었습니다. 대학 때 영문 자막이 달린 비디오로 본 후 DVD를 통해 제대로 영화를 본 것도 불과 1, 2년 전이네요.

영화와 소설을 동시에 들여다보는 일.. 참 재미있는 일이지만, 수고도 만만찮을 것 같습니다. 저같이 게으른 사람에겐 말이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