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 동안 많은 일을 겪었다. 세상이 녹록지 않음을 온 몸으로 체감하고선 마음을 다지고 정신을 벼리던 시간이었다. 마음으로 아끼던 동기는 회사를 떠났고 난 말도 못한 채 그저 외로웠다. 외롭다고 누가 알아주지도 않으니 마음은 더 야위어 가고 신경만 예민해졌다.

 주어진 시간이 얼마 없는지라 음악도 영화도 내겐 다 사치였다. 단지 밥 먹고 일하는 게 오롯이 나를 나이게 하였다. 지난 한달 동안 많은 생각이 오가고 그 생각의 끝을 잡고선 머릿속에 아로새겼지만 시간은 기억을 무참히 흩뜨려버렸다. 일주일 정도 있으면 다시 시간이 날 듯 하니 그땐 더 괜찮은 사람이 될 수 있을 듯하다.

 할 말은 하고 살아야 된다는 거. 나는 나를 사랑해야 한다는 거. 지난 한 달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아포리즘. 잗다란 걱정에 마음을 쓰지 말라는 건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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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0-04-25 17: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에 글을 쓰셨네요. 저는 오랜만에 댓글을 남깁니다.

'외로움이란 그림자'를 누구나 달고 있다고 생각하면 위안이 됩니다. 외로울 땐 이런 생각을 하는 게 필요해요. 외로우니깐 사람이다.ㅋ - 어디서 많이 본 듯한 글이죠?

이곳에 들어오면, 마치 아름다운 선율의 클래식이 흐르고 있는 듯한 착각을 합니다. 그런 착각을 즐기기 위해 들어오곤 합니다.


파이팅!!!!!!!!!!!!!!!

바밤바 2010-04-28 13:30   좋아요 0 | URL
글 좋은데요^^. 요즘 음악을 많이 못들었기에 길을 걷다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음악에도 걸음이 늦어지곤 한답니다.

다음 주 되면 다시 책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쓸 것 같네요~ 좋은 하루 되세요 ㅎ

Forgettable. 2010-04-25 20: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밤바님! 오랜만이에요.
역시 사회생활은 녹록치않은가요. 특히 계신 곳이 더 힘든 곳이라 짐작해봅니다.

사소한 일에 크게 마음쓰지 마시고, 덤덤하게 잘 넘기시며 지내시길 바래요.
얼마쯤은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괜찮아요.

저도 화이팅!!

바밤바 2010-04-28 13:30   좋아요 0 | URL
'얼마쯤 괜찮은 사람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말. 좋네요^^
조금은 덤덤하지만 약간씩 다른 나를 발견해가는 근자입니다~ㅎ

여울 2010-04-25 22: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밤바님, 많이 힘드시겠지만 잘 견디고 단단해지길 바래요. 이렇게 응원합니다. 잘 해내실거예요. 힘들면 구원요청도 하시구요. ㅎㅎ.

바밤바 2010-04-28 13:31   좋아요 0 | URL
ㅎ 힘들지 않아도 구원요청 할께요~ 오늘 비도 오니까 촉촉한 하루 되십시오~ㅎ
 

 

 삶이 더디게 흐른다. 그 무딤이 견딜만하다. 때론 무참하지만 실로 마음만은 가볍다.

 즐길 법도 한데 여의치 않다. 계절은 봄에도 눈을 뿌리고 난 옷을 여투어 다닐 뿐이다. 무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명료한 건 육신이다. 멍하다.

 영화도 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다. 지인들을 종종 만나긴 하나 그들의 술값과 밥값을 대기에 벅차다.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갖고프다. 대길이도 가고 빵꾸똥꾸도 가버린 시절에 자잘한 음악으로 나를 다독이고 싶다.

 가끔은 연애도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돈이 생기면 여친에게 써버리고선 밥을 내게서 빌어먹는 지인이 있다. 예전부터 그런 인간들은 주위에 꼭 있어왔다. 종종 사람 좋다는 이유로 난 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곤 했다. 이젠 그들의 두터운 낯을 멀리 하련다. 내 사람에게 신경 쓰련다. 껄껄.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울린다. 이전에 익은 멜로디가 상상 속에서 연주되는 거다. 스스로 복기해 낸 음악에 마음을 기울인다.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다.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음색만으로 가슴에 여울지는 스타일. 아리아가 또렷이 울린다. 첫 번째 변주곡 또한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 피아노 소리가 잇따른다. 두 번째 변주곡부터 어렴풋하다. 29번 째 변주곡과 마지막 아리아가 울리며 혼자만의 명상이 그친다. 정신이 맑아진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나를 잊지 말아달란 어느 여인네의 말처럼, 겨울이 우리에게 고백하는 나직한 붙잡음이다. 추억보다 쉬이 녹아내릴 저 싸락눈 사이에서 무뎌진 나를 보고 의미 없는 시간을 목도한다. 나또한 그 때 당신을 붙잡았다면 오늘의 눈은 내리지 않았을까. 시간만큼 부질없는 공상(空想)만 너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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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가 듣고 싶으신가봐요? 아님 음반과는 관련없는 페이퍼일까요.. ^^

잠시 멈춤이지만, 종종 들릴게요 바밤바님 ㅎ

바밤바 2010-03-29 17:43   좋아요 0 | URL
어디로 가시는군요. 어딜 가시든 마음만은 가벼우시길^^
 

 

  용산으로 가는 버스에서였다. 웬 아주머니가 배낭을 메고선 몸을 실었다. 사람이 많았던지라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줌마는 문간의 짐 싣는 곳에 다가가더니 그 곳에 앉겠다며 용을 썼다. 젊은이들도 몸을 올리기 힘든 자리였다.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한 20대 여인네가 제 자리를 내주었다. 아줌마는 냉큼 앉았다. 50대 후반 정도 되는 듯했다.

 아줌마는 이렇듯 자리를 강탈했다. 젊은이는 고맙다는 말은 듣기는커녕 왜 빨리 자리를 내주지 않았냐는 눈흘김마저 당했다. 다들 자지레한 분노를 느꼈겠지만 아줌마가 다 그렇지 하며 자리를 지키고 서있을 따름이었다. 젊은 여인네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애써 마음을 눅이는 듯 했다. 기실 노인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욕먹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왔기에 그런 온당치 못한 처사가 심히 거슬렸다.

 이렇듯 젊은이는 기성세대에게 자리를 내준다. 강제된 폭력 탓인지 미풍양속의 결과물인진 모호하다. 헌데 기성세대는 제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회사에서든 버스에서든 그들은 제 자리를 발품의 당연한 대가라 여기며 앉아있을 따름이다. 다만 그 방식이 버스에서 본 아줌마처럼 저열하다. 특히 밥벌이와 관련해선 그 정도가 심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잡 셰어링’을 한다고 해놓고선 젊은이들의 임금만 깎았다. 기성세대는 임금 동결로 실질적 감봉을 당했다며 울상이지만 가진 자의 푸념이다. 젊은이들의 연봉은 20%정도 삭감됐다. 다들 신입사원이다. 기실 못가진자에겐 세금도 덜 떼는 법이다. 헌데 가난한자의 몫을 빼앗아 가진 자의 자리를 보전해줬다. 억울하면 먼저 들어오고 더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렇듯 명징하다. 몇몇은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제 밥그릇 탄탄한 자들의 ‘구별짓기’용 레토릭에 가깝다. 

 이뿐만 아니다. 임금피크제라며 기성세대의 잔존 수명마저 늘었다. 늘어난 수명은 젊은이의 몫을 빼앗은 결과물이다. 청년이 제 아무리 능력을 쌓아봤자 어른들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길이 없다. 젊은이들의 취업보다 제 노후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보일 뿐이다.

 기성세대도 할 말이 많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거다. 애들 등록금도 내야하고 노후 자금도 모아야하니 어쩔 수 없다며 제 선택을 옹호할 테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니 어쩔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겠다.

 그렇다. 그러면 최소한 어른 대접 받으려고 하진 말자. 노인네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버스 안 젊은이에게 나무람을 하기 보단 그네의 어깨라도 주물러 주란 말이다. 어른이 어른 대접을 받았던 과거엔 노인네들이 가진 ‘암묵지’ 형태의 지식을 구술(口述)로 전수해주던 문화가 있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그에 온당한 대접을 받았을 뿐이다. 지금처럼 어른 노릇 못하는 시절엔 그 우러름을 바라는 마음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제 자리를 보존하려면 그 뻔뻔함을 경시하는 눈빛 정도는 견뎌야함이 밥벌이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 대한 예의다. 

 어차피 각 경제주체는 제 효용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젊은이들을 쥐어짜는 것 또한 이해할만 하다. 그렇다고 동의해 줄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란 말은 아니다. 최소한 그대들이 쌓은 부(副)가 오롯이 그대의 노력 탓이 아닌 시절을 잘 만난 덕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으면 한다. 그리고선 젊은이에게 조금은 가여운 시선으로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버스 좌석에서도 밀리고 일자리에서도 밀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 모른다. 아니면 우석훈의 말처럼 그네들은 짱돌을 들고 일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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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0-03-2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각자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밤바 2010-03-25 17:53   좋아요 0 | URL
연수받고 있다가 그냥 적은 글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 ^^

다만 조금 내지른 경향이 있는 글이니 이해해 주시길~ㅎ

반딧불이 2010-03-2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을 위한 나라도,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는 이 나라는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일까라는 질문앞에서 막막해집니다.

바밤바 2010-03-26 10:08   좋아요 0 | URL
각개약진 공화국이지요.^^;;

gimssim 2010-03-2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들고 벌써고 싶은 심정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함을 많이 갖고 있어요.
길에서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이 그럽니다.
저 얘들이 나중에 우리 먹여 살려야 한다구요.
그전에 한 결심 한가지...
최소한 젊은이들 앞에서 자리 비켜내라고 눈총주지는 말자.
그 지경이 되면 대문밖 출입을 말자.

바밤바 2010-03-27 13:35   좋아요 0 | URL
뭐 그렇게 할 것 까지야.^^;;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있어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쓴 글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ㅎ
 

과거는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고 현재는 생각보다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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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3-16 12: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진심인 듯도 하고 현재를 견디려는 말씀같기도 하고...전자이길 바랍니다.

바밤바님 기뻐해주세요. 물어보셨던 그림이요. Frederik Leigton의 1877년 작으로 제목이 '독서대'였네요.

바밤바 2010-03-19 19:04   좋아요 0 | URL
출장 갔다가 오늘 와서 답글이 늦었습니다~ ㅎ

윗글 진심이에요. 그냥 그런 생각이 들어 간결하게 읊어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림 제목이 독서대였군요. 작은 그림에선 여전히 실 짓는 아라크네가 보이는 걸로 보아 첫인상이 무서운 듯~ㅎ 감사합니다^^

2010-03-18 14:0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19 19:05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0-03-19 2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과거 속의 이야기는 지나간 시간이 마술을 부려 아릅답게 채색되기도 합니다. 추억은 아름답다, 또는 옛날은 행복했다,가 될 수 있지요. 하지만 현재엔 행복이 없습니다. 잡히지 않기 때문이죠.

"행복이란 멀리서 보는 숲처럼 아름다운 것" - 쇼펜하우어.

숲에 직접 가 보면 벌레와 쓰레기로 지저분할지 모릅니다. 멀리 봐야 아름답죠(공간적). 그처럼 행복도 멀리(시간적으로) 봐야 느껴진다는 것.

그러니 과거는 생각만큼 아름답지 않을 수 있겠네요. 우리의 착각이 아름다운 과거로 생각할 뿐...

어렵네요. ^^

바밤바 2010-03-21 14:56   좋아요 0 | URL
기억을 믿기보단 제 자신을 믿는 게 중요한 듯.
지난한 삶을 이겨내기 위해선 행복하단 자기 암시만큼 비루하지만 적절한 처방이 없을 듯 하네요.^^
 

 

 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겨울보다 시린 계절에,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울 때. 그 땐 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마음을 할퀴었을 때, 어떤 이의 말이 끊임없이 신경 쓰여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제에도 마찬가지다. 여린 마음을 감당치 못해 피안(彼岸)의 세계로 도피한다. 이 곡은 나를 안식으로 이끌어 줄 정녕 훌륭한 길잡이다. 
  

 

지금 듣는 곡은 안드라스 쉬프의 곡이다. 1953년에 태어난 헝가리 출신의 쉬프는 매우 감성적인 골드베르크를 들려준다. 라이브 녹음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한 맛도 있다. 음을 조탁하듯 다듬은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레 흘려보낸다. 그런 향이 좋다. 마음이 편하다. 시냇물처럼 ‘졸졸’ 거린다.

 

 

 

  몇 년 전엔 빌헤름 켐프의 연주도 많이 들었다. 1895년에 태어났으니 1,2차 대전을 다 겪었을 그네다. 세상의 무참함을 알기에 오히려 덤덤하다. 그의 골드베르크는 편하다. 쉽다. 사람냄새 나는 연주자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훌륭한 연주는 아니나 좋은 연주임에는 틀림없다. 뛰어난 기교가 반드시 좋은 연주를 만들어내진 않는다. 폴리니의 야상곡을 봐도 알 수 있다.  

  

 

 

 

 

 

 

 

 

 

 제일 처음 접했던 음반은 글렌 굴드의 연주다. 독보적이다. 중간 중간 그의 콧노래도 들어가 있다. 피아노 ‘소리’ 자체에 집착을 했던 그네인 터라 하나하나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기인으로도 알려진 굴드지만 그는 이 곡으로 제 연주를 열고 또 닫았다. 그의 첫 녹음과 끝 녹음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사실은 바흐와 굴드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나타낸다. 종종 골드베르크를 ‘굴드베르크’라 부르는 사람이 많을 만큼 유명한 연주다. 워낙 자주 들어서인지 내겐 이 연주가 표준이다.

 

  
 
피에르 앙타이는 좋은 음색을 들려준다. 피아노의 예전 형태인 쳄발로로 연주한 앙타이의 골드베르크는 단조롭지만 정직하다. 29번 째 변주곡에서 보이는 그 쾌할한 질주감은 파격이라기 보단 적당한 기교의 과시다. 워낙 정직한 느낌이라 쳄발로가 주는 묘한 울림에 귀를 더 기울인다. 이렇듯 현악기와 건반악기의 경계선에 쳄발로가 있다. 피에르 앙타이가 연주한 77분짜리 음반이 자리한다.

 

  

 

 

 

 

 

 

 

  

현악 삼중주 편곡반도 좋다. 골드베르크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조금 다른 연주가 귀에 맺히곤 한다. 이 음반이 그렇다. 이 연주를 듣고선 내가 가진 골드베르크 음반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곤 한다. 연주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주식 대신 먹는 불량식품 정도다.

 

 

 한 곡을 다채로이 연주한 각기 다른 음반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거울을 들이대고선 마음을 살포시 가라앉힌다. 잗다란 일에 마음을 쓰고선 스스로의 미욱함을 탓하진 않았는지. 옳지 못함을 지적하기는커녕 나약한 이처럼 스스로를 다독이지는 않았는지. 가진 바를 감사히 여기지 못하여 갖지 못한 것을 탐하며 끌탕 중은 아니었는지. 나를 내세운다는 이유로 그대들의 아픈 마음에 소금은 뿌리지 않았는지. 잡다한 세상사가 심약한 자아를 초라하게 만들 때엔 그대들의 연주로 쉴 곳을 찾는다. 바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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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3-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한 곡을 이렇게 다양한 연주로 들으시는군요. 저같은 경우는 씨디 달랑 한개로 그것도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 듣는데 말이죠. 바밤바님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엉뚱한 생각만 하다 갑니다.

바밤바 2010-03-15 00:18   좋아요 0 | URL
ㅎ 제 생각을 헤아리는 일은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런 엉뚱한 생각이 더 좋아 보입니다^^ㅋ

비로그인 2010-03-1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이런글을 남기셨군요 ^^ 즐거이 잘 보고 갑니다. ㅋ

바밤바 2010-03-15 00:19   좋아요 0 | URL
고클에 어느 분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뷰를 해 놓았길래 그저 흉내내는 정도로 글 한번 써보았습니다. 잘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