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이 번잡스러울 때, 겨울보다 시린 계절에, 누군가가 간절히 그리울 때. 그 땐 난 바흐의 골드베르크 변주곡을 듣는다. 의도치 않게 누군가의 마음을 할퀴었을 때, 어떤 이의 말이 끊임없이 신경 쓰여 일상을 영위하기 어려울 제에도 마찬가지다. 여린 마음을 감당치 못해 피안(彼岸)의 세계로 도피한다. 이 곡은 나를 안식으로 이끌어 줄 정녕 훌륭한 길잡이다. 
  

 

지금 듣는 곡은 안드라스 쉬프의 곡이다. 1953년에 태어난 헝가리 출신의 쉬프는 매우 감성적인 골드베르크를 들려준다. 라이브 녹음이라 그런지 시원시원한 맛도 있다. 음을 조탁하듯 다듬은 게 아니라 그저 자연스레 흘려보낸다. 그런 향이 좋다. 마음이 편하다. 시냇물처럼 ‘졸졸’ 거린다.

 

 

 

  몇 년 전엔 빌헤름 켐프의 연주도 많이 들었다. 1895년에 태어났으니 1,2차 대전을 다 겪었을 그네다. 세상의 무참함을 알기에 오히려 덤덤하다. 그의 골드베르크는 편하다. 쉽다. 사람냄새 나는 연주자란 칭호가 어색하지 않다. 훌륭한 연주는 아니나 좋은 연주임에는 틀림없다. 뛰어난 기교가 반드시 좋은 연주를 만들어내진 않는다. 폴리니의 야상곡을 봐도 알 수 있다.  

  

 

 

 

 

 

 

 

 

 

 제일 처음 접했던 음반은 글렌 굴드의 연주다. 독보적이다. 중간 중간 그의 콧노래도 들어가 있다. 피아노 ‘소리’ 자체에 집착을 했던 그네인 터라 하나하나의 울림이 예사롭지 않다. 기인으로도 알려진 굴드지만 그는 이 곡으로 제 연주를 열고 또 닫았다. 그의 첫 녹음과 끝 녹음이 골드베르크 변주곡이란 사실은 바흐와 굴드의 범상치 않은 인연을 나타낸다. 종종 골드베르크를 ‘굴드베르크’라 부르는 사람이 많을 만큼 유명한 연주다. 워낙 자주 들어서인지 내겐 이 연주가 표준이다.

 

  
 
피에르 앙타이는 좋은 음색을 들려준다. 피아노의 예전 형태인 쳄발로로 연주한 앙타이의 골드베르크는 단조롭지만 정직하다. 29번 째 변주곡에서 보이는 그 쾌할한 질주감은 파격이라기 보단 적당한 기교의 과시다. 워낙 정직한 느낌이라 쳄발로가 주는 묘한 울림에 귀를 더 기울인다. 이렇듯 현악기와 건반악기의 경계선에 쳄발로가 있다. 피에르 앙타이가 연주한 77분짜리 음반이 자리한다.

 

  

 

 

 

 

 

 

 

  

현악 삼중주 편곡반도 좋다. 골드베르크에 익숙해져 있다 보면 조금 다른 연주가 귀에 맺히곤 한다. 이 음반이 그렇다. 이 연주를 듣고선 내가 가진 골드베르크 음반에 대한 애착이 강해지곤 한다. 연주가 나쁘다는 건 아니다. 그저 주식 대신 먹는 불량식품 정도다.

 

 

 한 곡을 다채로이 연주한 각기 다른 음반에서 ‘내 마음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거울을 들이대고선 마음을 살포시 가라앉힌다. 잗다란 일에 마음을 쓰고선 스스로의 미욱함을 탓하진 않았는지. 옳지 못함을 지적하기는커녕 나약한 이처럼 스스로를 다독이지는 않았는지. 가진 바를 감사히 여기지 못하여 갖지 못한 것을 탐하며 끌탕 중은 아니었는지. 나를 내세운다는 이유로 그대들의 아픈 마음에 소금은 뿌리지 않았는지. 잡다한 세상사가 심약한 자아를 초라하게 만들 때엔 그대들의 연주로 쉴 곳을 찾는다. 바흐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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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딧불이 2010-03-14 13: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음..한 곡을 이렇게 다양한 연주로 들으시는군요. 저같은 경우는 씨디 달랑 한개로 그것도 좋아하는 부분만 골라 듣는데 말이죠. 바밤바님의 마음을 헤아릴 생각은 않고 엉뚱한 생각만 하다 갑니다.

바밤바 2010-03-15 00:18   좋아요 0 | URL
ㅎ 제 생각을 헤아리는 일은 중요한 게 아니죠~ 그런 엉뚱한 생각이 더 좋아 보입니다^^ㅋ

비로그인 2010-03-14 2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에 이런글을 남기셨군요 ^^ 즐거이 잘 보고 갑니다. ㅋ

바밤바 2010-03-15 00:19   좋아요 0 | URL
고클에 어느 분이 골드베르크 변주곡 리뷰를 해 놓았길래 그저 흉내내는 정도로 글 한번 써보았습니다. 잘지내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