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으로 가는 버스에서였다. 웬 아주머니가 배낭을 메고선 몸을 실었다. 사람이 많았던지라 자리가 있을 리 만무했다. 아줌마는 문간의 짐 싣는 곳에 다가가더니 그 곳에 앉겠다며 용을 썼다. 젊은이들도 몸을 올리기 힘든 자리였다. 불편했다. 그 불편함을 견디지 못한 한 20대 여인네가 제 자리를 내주었다. 아줌마는 냉큼 앉았다. 50대 후반 정도 되는 듯했다.

 아줌마는 이렇듯 자리를 강탈했다. 젊은이는 고맙다는 말은 듣기는커녕 왜 빨리 자리를 내주지 않았냐는 눈흘김마저 당했다. 다들 자지레한 분노를 느꼈겠지만 아줌마가 다 그렇지 하며 자리를 지키고 서있을 따름이었다. 젊은 여인네는 다소 상기된 얼굴로 애써 마음을 눅이는 듯 했다. 기실 노인네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미덕이지만 그렇지 않다고 욕먹는 것은 부당하다고 여겨왔기에 그런 온당치 못한 처사가 심히 거슬렸다.

 이렇듯 젊은이는 기성세대에게 자리를 내준다. 강제된 폭력 탓인지 미풍양속의 결과물인진 모호하다. 헌데 기성세대는 제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회사에서든 버스에서든 그들은 제 자리를 발품의 당연한 대가라 여기며 앉아있을 따름이다. 다만 그 방식이 버스에서 본 아줌마처럼 저열하다. 특히 밥벌이와 관련해선 그 정도가 심하다.

 일자리를 늘리겠다며 ‘잡 셰어링’을 한다고 해놓고선 젊은이들의 임금만 깎았다. 기성세대는 임금 동결로 실질적 감봉을 당했다며 울상이지만 가진 자의 푸념이다. 젊은이들의 연봉은 20%정도 삭감됐다. 다들 신입사원이다. 기실 못가진자에겐 세금도 덜 떼는 법이다. 헌데 가난한자의 몫을 빼앗아 가진 자의 자리를 보전해줬다. 억울하면 먼저 들어오고 더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이렇듯 명징하다. 몇몇은 문제점을 지적하지만 제 밥그릇 탄탄한 자들의 ‘구별짓기’용 레토릭에 가깝다. 

 이뿐만 아니다. 임금피크제라며 기성세대의 잔존 수명마저 늘었다. 늘어난 수명은 젊은이의 몫을 빼앗은 결과물이다. 청년이 제 아무리 능력을 쌓아봤자 어른들이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는 한 길이 없다. 젊은이들의 취업보다 제 노후에 대한 불안이 더 크게 보일 뿐이다.

 기성세대도 할 말이 많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는 거다. 애들 등록금도 내야하고 노후 자금도 모아야하니 어쩔 수 없다며 제 선택을 옹호할 테다. 세상이 이렇게 각박하니 어쩔 수 없다며 볼멘소리를 할 수 있겠다.

 그렇다. 그러면 최소한 어른 대접 받으려고 하진 말자. 노인네 앞에 두고 꾸벅꾸벅 졸고 있는 버스 안 젊은이에게 나무람을 하기 보단 그네의 어깨라도 주물러 주란 말이다. 어른이 어른 대접을 받았던 과거엔 노인네들이 가진 ‘암묵지’ 형태의 지식을 구술(口述)로 전수해주던 문화가 있었다. 어른은 어른으로서 제 역할을 하고 그에 온당한 대접을 받았을 뿐이다. 지금처럼 어른 노릇 못하는 시절엔 그 우러름을 바라는 마음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 제 자리를 보존하려면 그 뻔뻔함을 경시하는 눈빛 정도는 견뎌야함이 밥벌이에 허덕이는 젊은이들에 대한 예의다. 

 어차피 각 경제주체는 제 효용 극대화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면 젊은이들을 쥐어짜는 것 또한 이해할만 하다. 그렇다고 동의해 줄 수는 없다. 세상을 바꾸란 말은 아니다. 최소한 그대들이 쌓은 부(副)가 오롯이 그대의 노력 탓이 아닌 시절을 잘 만난 덕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으면 한다. 그리고선 젊은이에게 조금은 가여운 시선으로 양보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그렇지 않다면 버스 좌석에서도 밀리고 일자리에서도 밀리는 한국의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위한 나라는 없을지’ 모른다. 아니면 우석훈의 말처럼 그네들은 짱돌을 들고 일어나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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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3-25 13:2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5 15: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페크pek0501 2010-03-25 16: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우리가 각자 어떤 태도로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뒤돌아보게 하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바밤바 2010-03-25 17:53   좋아요 0 | URL
연수받고 있다가 그냥 적은 글인데 잘 봐주셔서 감사. ^^

다만 조금 내지른 경향이 있는 글이니 이해해 주시길~ㅎ

반딧불이 2010-03-26 01: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인을 위한 나라도, 젊은이를 위한 나라도 없는 이 나라는 대체 누구를 위한 나라일까라는 질문앞에서 막막해집니다.

바밤바 2010-03-26 10:08   좋아요 0 | URL
각개약진 공화국이지요.^^;;

gimssim 2010-03-26 20:5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손들고 벌써고 싶은 심정입니다.
젊은이들에게 미안함을 많이 갖고 있어요.
길에서 어린아이들을 보면서 남편이 그럽니다.
저 얘들이 나중에 우리 먹여 살려야 한다구요.
그전에 한 결심 한가지...
최소한 젊은이들 앞에서 자리 비켜내라고 눈총주지는 말자.
그 지경이 되면 대문밖 출입을 말자.

바밤바 2010-03-27 13:35   좋아요 0 | URL
뭐 그렇게 할 것 까지야.^^;;
그저 자신의 삶에 대한 자기객관화가 있어야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쓴 글입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