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 더디게 흐른다. 그 무딤이 견딜만하다. 때론 무참하지만 실로 마음만은 가볍다.

 즐길 법도 한데 여의치 않다. 계절은 봄에도 눈을 뿌리고 난 옷을 여투어 다닐 뿐이다. 무디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명료한 건 육신이다. 멍하다.

 영화도 보고 싶고 음악도 듣고 싶다. 지인들을 종종 만나긴 하나 그들의 술값과 밥값을 대기에 벅차다. 오롯이 혼자의 시간을 갖고프다. 대길이도 가고 빵꾸똥꾸도 가버린 시절에 자잘한 음악으로 나를 다독이고 싶다.

 가끔은 연애도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돈이 생기면 여친에게 써버리고선 밥을 내게서 빌어먹는 지인이 있다. 예전부터 그런 인간들은 주위에 꼭 있어왔다. 종종 사람 좋다는 이유로 난 이들의 뒷바라지를 하곤 했다. 이젠 그들의 두터운 낯을 멀리 하련다. 내 사람에게 신경 쓰련다. 껄껄.

 골든베르크 변주곡이 울린다. 이전에 익은 멜로디가 상상 속에서 연주되는 거다. 스스로 복기해 낸 음악에 마음을 기울인다. 안드라스 쉬프의 연주다. 가장 좋아하는 스타일이다. 음색만으로 가슴에 여울지는 스타일. 아리아가 또렷이 울린다. 첫 번째 변주곡 또한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다. 피아노 소리가 잇따른다. 두 번째 변주곡부터 어렴풋하다. 29번 째 변주곡과 마지막 아리아가 울리며 혼자만의 명상이 그친다. 정신이 맑아진다.

 창밖을 보니 눈이 내린다. 나를 잊지 말아달란 어느 여인네의 말처럼, 겨울이 우리에게 고백하는 나직한 붙잡음이다. 추억보다 쉬이 녹아내릴 저 싸락눈 사이에서 무뎌진 나를 보고 의미 없는 시간을 목도한다. 나또한 그 때 당신을 붙잡았다면 오늘의 눈은 내리지 않았을까. 시간만큼 부질없는 공상(空想)만 너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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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3-28 00:1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바흐가 듣고 싶으신가봐요? 아님 음반과는 관련없는 페이퍼일까요.. ^^

잠시 멈춤이지만, 종종 들릴게요 바밤바님 ㅎ

바밤바 2010-03-29 17:43   좋아요 0 | URL
어디로 가시는군요. 어딜 가시든 마음만은 가벼우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