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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받지 않을 권리 - 욕망에 흔들리는 삶을 위한 인문학적 보고서
강신주 지음 / 프로네시스(웅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날이 차다. 싸락눈은 손끝마저 시리게 한다. 다들 연휴라 먼데로 갔나보다. 간만에 주위에 아무도 없다. 독서로 소일하는 일도 지겨워 쇼핑을 가려 했으나 눈이 길을 막는다. 뽀드득 소리가 싫지는 않으나 살에 부딪히는 새알 같은 눈은 옷을 여미게 한다. 남쪽에선 겨울이 싫지 않았다. 그리 춥지도 않고 집은 언제나 따뜻했기 때문이다. 서울의 겨울은 유달리 춥다. 방한이 잘 되지 않는 방에, 가끔 내리는 눈 때문일 테다.
강신주 씨의 책을 읽었다. 제목은 연서(戀書)마냥 낯간지럽다. 다만 사랑이 아닌 자본에 상처 받지 않을 권리를 말한다. 자본주의의 도저한 폭력을 직시하고 제 자신의 욕망에 충실하라 한다. 라캉의 말처럼 우리의 욕망은 타인의 욕망에 불과한 것이니 중심을 찾으란 말이다. 많은 사회학자와 철학자 그리고 시인이 나온다. 타자화된 욕망의 실체를 알기 위해선 이렇게 많은 담론이 필요하다.
이상의 이야기로 글을 풀어낸다. 김연수는 ‘여행할 권리’와 ‘꾿빠이 이상’에서 김해경의 삶을 뒤쫓는다. 강신주의 글도 그와 비슷하다. 동경이란 제국의 수도 앞에서, 초라해지는 자신을 추스르는 이상의 모습이 나온다. 허장성세를 부리는 이상의 모습에서 자본주의에 대한 열패감과 동경을 느끼긴 어렵지 않다. 나스메 소세키의 작품 ‘소시로’에서처럼 이상은 자본주의에서 초탈하려는 원심력과 자본주의의 추종자가 되려는 구심력 사이에서 자아를 잃어간다. 27세에 요절했던 이유엔 이러한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 허약한 정신이 작용했을지 모른다. 강신주는 짐멜을 끌어들여 이야기를 계속 전개하지만 자본주의에 대해 한번쯤 고민을 해봤던 이라면 새로운 내용은 없다. 4악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서두는 매우 쉽다.
2악장엔 보들레르와 벤야민이 나온다. 보들레르의 ‘악의 꽃’을 바탕으로 환락의 도시가 전해주는 자본의 폭력을 말한다. 이 폭력을 수용하는 이들이 워낙 자발적이라 속에만 멍을 들이지 외상을 입히진 않는다. 벤야민에 관한 이야기는 다소 혼란스럽다. 그래도 얼마 전 읽은 황석영의 ‘심청’이란 작품과 매춘의 메커니즘을 연계시켜 이해하였더니 그리 어렵진 않았다. 다만 발터 벤야민의 이야기는 고담준론(高談峻論)과 같은 허황됨이 느껴졌다. 자본주의와 20세기를 비판하는 날이 무뎌서가 아니라 칼질이 너무 빈번하고 명쾌하지 않아서일 테다.
3악장은 투르니에와 부르디외다. 3악장은 전체 악장 중 가장 통일성이 있으며 이야기도 단단하다. 투르니에는 이 책에서 처음 알게 된 사람이다. 그는 로빈슨 크루소를 패러디한 ‘방드리드, 태평양의 끝’이란 작품을 썼다. 그러면서 피에르 부르디외가 이야기한 ‘아비투스’에 대한 개념이 나온다. 로빈슨 크루소는 자본주의적이며 프로테스탄트 윤리에 충실한 아비투스를 갖고 있다. 그렇기에 무인도에서 만난 ‘방드리드(금요일)’에게 자신의 윤리를 강요한다. 허나 화재로 인해 ‘구별짓기’가 훼손당하고 로빈슨은 자신의 아비투스를 버리고 새로운 아비투스를 세운다. 니코스 카잔차키스의 ‘그리스인 조르바’도 떠올리게 하는 이러한 변용은 베르그송이 이야기한 ‘체험된 시간’의 개념을 차용하여 로빈슨에게 새로운 눈을 뜨게 한다. 칸트의 ’실천이성비판‘에 대한 부수적 언급으로 ’구조화된 구조이면서 구조화하는 구조‘인 아비투스를 비판하고 존재의 심연에 다가서려 한다. 밀도 높은 이야기다 보니 정리가 명징치 못하다.
종결악장은 유하와 보드리야르다. 영화 감독으로도 유명한 유하는 자신의 시를 통해 자본주의가 강요하는 욕망과 개인의 주체성 상실을 노래했다. 보드리야르는 그의 스승격인 바타유의 ‘과잉 에너지’개념을 도입하여 과소비를 부추기는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유하의 시가 부분적으로 등장하여 서울이란 공간과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고찰한다. 미래의 목적을 위해 현재의 삶을 수단으로 전락시키는 자본주의 비판을 위해 니체의 영원회귀설도 나온다.
이외에도 가라타니 고진과 좀바르트, 라파르그, 예링, 마사치, 사르트르, 리오타르의 이야기가 쉴 새 없이 이어진다. 책이 이야기하는 바가 단순하지만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 있는 부분이다. 다소 연성화된 사유도 보이지만 개인의 욕망을 찾아주기 위한 저자의 노력은 이런 지난한 과정 끝에 완성된다. 이야기는 3악장에서 정점을 이루며 뒤로 갈수록 다소 난해한 모습을 띈다. 하지만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많은 이라면 쉽게 읽을 수 있다. 주석 없이 언급되는 인물들에 대한 공부만 병행된다면 좋은 기억으로 남을 책이다.
글을 쓰는데도 손이 시리다. 난방이 잘되는 곳으로 이사하고 싶다. 겨울은 가난한 이에게 더 잔인한 듯하다. 밀실에 갇혀 있으려 해도 찬 공기는 몸의 표면적을 최대한 줄이라 강요한다. 세밑에 불어 닥친 한파 덕에 책은 많이 읽겠다. 나름 진지한 사유의 끝이 겨울바람 속에서도 따스한 봄노래를 가져다주길 바란다. 헌데 멘델스존의 ‘무언가’ 앨범은 없고 쇼팽의 에뛰드 앨범만 있으니 마음을 더 추슬러야겠다. 내일은 영하 10도란다. 낼부터 약속이 하나씩 줄을 잇는데 머플러를 둘러야겠다. 내게 머플러를 직접 짜준 그 아이도 겨울을 따뜻하게 보냈으면 한다. 괜히 미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