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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만치 않은 축의금을 내고, 딱 그 축의금만큼의 축하를 보내주고 나서는 서둘러 식권을 받아 들고 식당으로 향한다. 얼마나 먹어줘야 본전을 뽑을 것인가에 대한 계산은 이미 선 상태.
아무리 먹어준다손 쳐도 갈비탕 한 그릇으로는 성이 차지 않고, 피로연까지 따라가 술이라도 실컷 마셔줘야 하는 것은 기본이다. 필자가 결혼할 당시 보통 결혼식장의 갈비탕보다 단가가 좀더 높은 꼬리곰탕을 큰맘 먹고 메뉴로 준비했다. 그러나 나중에 쉬쉬하며 돌아온 얘기는 별로 맛없었다는 이야기뿐.
내심 '결혼식에 와서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해줘야지 무슨 밥 얘기야'라며 투덜거렸지만, 지금은 나 자신도 역시나 '무슨 뷔페가 먹을 게 없냐?'를 다른 결혼식장에 가서 중얼거리는 것을 보면 사람은 다 똑같다. 결혼이나 잔치는 말할 나위도 없고 심지어 초상집에 가서도 잘 차려 대접해야 칭찬을 받으니, 사람이 다 먹으려고 사는 것인지….
브뤼겔의 그림 <농부들의 결혼식>을 보면 예전의 유럽에서도 역시 풍성한 음식을 대접하는 것이 결혼의 미덕이었던 것 같다. 제목은 <농부들의 결혼식>이지만 결혼식 후 피로연 장면을 그린 것으로보인다. 아무리 농부들의 결혼식이라 해도 짚을 널어놓은 헛간 같은 후미진 곳에서 결혼식을 올리지는 않았을 테니.

이 그림을 보면 도대체 누가 신부고 누가 신랑인지 잘 알 수가 없다. 아마도 푸른 천 앞에 앉아 있는 여인이 오늘의 주인공인 신부인 듯한데, 그리 기쁜 얼굴은 아닌 듯하다. 다소곳이 두 손을 모으고 약간은 멍청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그녀를 제외하고는 모두들 맛난 음식을 즐거운 듯 게걸스럽게 먹거나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열심히 맥주를 따르고 수레에 음식접시를 실어 나르는 동네 사람들은 역시나 마음속으로 '일년에 몇 번 없는 기회니 열심히 먹자'를 되뇌고 있는 듯하다. 그림의 맨 앞에 앉아 커다란 모자를 쓰고 접시째 핥아 먹느라 여념이 없는 어린아이와, 보기에도 무거워 보이는 악기를 들고 배고픈 표정으로 음식 먹는 사람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기만 하는 악사의 표정도 익살스럽게 대비된다.

자리에 앉아 음식을 먹는 사람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 헛간 입구에서 꾸역꾸역 들어오고 있는 사람들. 이렇게 많은 등장인물이 한꺼번에 들어찬 그림임에도 그림 전체가 번잡스럽게 느껴지지 않는 이유는 각각의 사람들이 저마다 맡은 바 임무(?)를 제대로 하게끔 적절하게 배치해낸 브뤼겔의 재치때문인 듯하다. 역시 풍속화의 제왕이라는 이름이 허명은 아닌 듯 마치 현장에서 찍어놓은 필름을 보듯 생동감 넘치는 화면이 새롭다.
<두 얼굴의 신부>나 <에펠탑의 부부>처럼 결혼을 주제로 한 작품을 많이 그렸던 샤갈.
두 얼굴의 신부
에펠탑의 부부
샤갈은 그의 사랑하는 아내 벨라가 죽고 난 후 9개월간이나 그림을 그리지 못했고, 집안의 모든 그림들을 벽을 향해 돌려놓은 채 지냈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처음 그렸다는 <화촉>과 <그녀의 주변> 연작은 결혼을 주제로 한 샤갈의 모든 작품 중에서도 가장 걸작이라고 평가받는다.
그녀의 주변
La Mariee
시집 가는 신부를 중앙에 놓고 주변으로 여러 형상과 인물을 배치해놓은 샤갈 특유의 기법과 구도가 그대로 살아 있는 <화촉>. 제목처럼 커다란 화촉이 불을 밝히는 가운데 나팔을 부는 딸 이다의 모습도 보이고, 에펠탑의 부부에 등장한 닭과 신랑 신부도 등장하는 신비로운 세계.
화촉
아내가 죽고 나서 아마도 샤갈은 매일 밤 아내가 나오는 꿈을 꾸었던가보다. 그 잊을 수 없는 아내를 추모하며 온 정성을 기울인 샤갈의 사랑이 슬프도록 은은한 푸른빛을 타고 그림 전체를 돌아다니다 보는 이에게 자연스럽게 전해져오는 듯하다.
벨라와 결혼하기 6년 전 샤갈이 그린 <검은 장갑을 낀 피앙세>에는 살아있을 당시의 도도하고 매력적인 벨라의 모습이 보인다.

화촉에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을 아주 조금 남아있을 뿐이고 이승에서 점점 멀어져가는 평온한 영혼으로 그려낸 벨라를 보면서, 그녀에 대한 샤갈의 깊은 애정을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다.
렘브란트의 <삼손의 결혼식>이나 라파엘로의 <마리아의 결혼>처럼 신화적 사건을 그린 결혼식 그림이나, 혹은 르느아르의 <시슬리 부부>와 같이 친한 친구의 부부를 위해 그림을 그려주는 것은 종종 볼 수 있어도, 자신의 결혼식을 그린 그림은 그리 많지 않다.
 삼손의 결혼식
 마리아의 결혼
시슬리 부부
위에서 보았던 샤갈의 경우와는 달리, 자신의 결혼식을 마치 결혼식 후 찍는 가족 사진처럼 그려낸 루소의 <시골 결혼식>은 그런 면에서 매우 특이한 그림이라 할 수 있다.
루소는 워낙 옛날 사진들을 보고 가족들의 모습을 그려내길 좋아했다고 한다.
이 그림 역시 이제는 모두 세상을 떠난 자신의 가족을 등장시키고 있는데, 그림의 가운데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루소의 첫째 부인 크레망스, 그녀의 오른쪽 뒤에 서 있는 사람이 바로 본인인 루소, 그리고 특이하게도 루소 옆에 서 있는 여인이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조세핀이라고 알려져 있다.
이 그림을 그린 때가 둘째 부인 조세핀도 죽은 지 2년 후라고 하니 다행이지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 '왜 나는 웨딩드레스를 안 입혀줬냐?'며 싸웠을지도 모를 일.
시골 결혼식이라는 그림의 제목처럼 소박한 가족의 모습은 너무 너무 차분한데, 엉뚱하게 맨 앞에 앉아 늠름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검은 개 한 마리가 그림 전체를 유쾌하게 해준다.
이제는 홀로 남은 루소가 하나 둘씩 자신과 멀어져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그림을 채워나가는 모습을 상상해보면 뭔가 가슴이 뭉클해지는 슬픈 그림으로 다가온다.

결혼은 특히나 가난한 화가들에게는 여러모로 좋은 일이었던 듯하다. 쉽게 말해 모델비를 아끼는 지름길이 될 수 있었을 테니까. 결혼 특집으로 화가들의 아내를 그린 초상화를 쭈르륵 소개한다.
고갱의 아내 매트 고갱.

렘브란트가 정말로 많이 그린 그의 아내 사스키아.

렘브란트 못지않게 많이 그린 세잔의 부인.

루벤스의 첫 번째 부인 이사벨라 브란트,

루벤스의 두 번째 부인 헬레네 푸르망.

모딜리아니의 부인 쟌느.

피카소의 부인 올가.

누가 제일 미인인가 뽑자는 것은 아니지만 아무래도 제일 미인은 올가, 제일 육감적인 몸매는 헬레네 푸르망이라는데 이견은 없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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