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문의 사명'이라 하였지만 진정 인문학은 무엇을 한단 말인가?
대답이 궁색한 것이 나의 부족함 때문인가?
필요로 모든 것을 측량하는 이 곳에선 인문학이 나아갈 길이 너무 좁다.
어려움이다.
사유화된 유토피아.
유토피아는 사유화될 필요도 있을테다.
하지만 그것이 배타적으로 소유될 때는 지금과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이 책에서 말하는 방안은 '연대'이다.
프랑스적 맥락의 연대가 잘 잡히지 않는다.
그게 불만이다.
하지만 이 책을 본래 발간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가 한국어판을 발행하는 것을 보면 무언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좋은 현상이다.
이 자리를 떠나고 싶다는 마음이 간절했다.
갇혀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데 고개를 돌리니 온통 나 뿐이다.
이 안에 갇힌다면 어디서고 자유로울 수 없다.
선생은 철옥에 갇혔으나 자아에 갇히지 않았다.
장점이 많은 글이다.
실제 대했던 설교 만큼이나 강한 반응을 일으킨다.
반응의 지속성 말이다.
그게 문제라 생각되기도 하지만 말이다.
저자가 지닌 기자로서의 소명은 높이 사둘만 하다.
그것은 진실과 문자문화를 수호한다는 자부심 때문일 것이다.
이것이 이후 그를 작가의 세계로 데려간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