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서는 가오싱젠의 실험이 구체적으로 어떠한 변화의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지 잘 알지 못하겠다.
허나 그의 방향 감각은 넉넉히 믿음이 간다.
그는 '연극'이란 말의 본뜻을 잘 알고 있는 듯 하다.
<영산(靈山)>보다 훨씬 낫다.
회화가 그의 장기임이리라.
高行健(1940-)
<한겨레>, 특히 <한겨레21>을 볼 때 더러 숨이 막힌다는 느낌도 갖는다.
결론은 늘 같다라는 생각 때문이다.
조중동이 엘리트 기자를 뽑는다고 자랑할 때 <한겨레>는 무엇이 다른지 의문이다.
고액연봉을 받는 <아사히신문> 기자에게 일본의 민중들이 냉소를 보내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한겨레>는 기자들에게 고액 연봉은 못 준다고 자위할 일도 아니다.
2007년에 출간된 책이다.
2년 사이 우리가 민주주의에 대해 이토록 고민하고 괴로워할 줄은 몰랐다.
상식과 무지가 뒤바뀌고 도덕과 야만이 전도되고 있다.
희망을 말하는 책말미가 슬프게 다가온다.
'더 많은 민주주의를 원'하기에 앞서 더 많은 절망을 겪어야 하기 때문이다.
다른 건 모두 제쳐두고 미국인 학생이 교과서에 실린 이 소설을 어떻게 읽을까 궁금하다.
북한의 인민군은 악마와 같이 그려지고 38선 이남은 자유가 보장된다고 말한다.
그 자유는 미군정이 가져다준 것이겠다.
작가가 아무리 휴머니즘을 말해도 미국인에게 이 소설은 자신을 위로하는 정치적 소설로 읽힐 수 밖에 없다.
근대에 이르러 문명제국에서 국민국가로 변한 중국은 근래 국민국가에서 제국으로 변하려 한다.
문명이란 말을 뺀 것은 그들의 행동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말이기 때문이다.
동남아와 아프리카를 다독이다가도 티벳과 위구르는 철퇴로 내려친다.
문명이기를 바라는 게 과욕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