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저자의 또 다른 저서인 <고쳐 쓴 한국근대사>를 읽지 못해 단정하긴 어렵지만 대체로 우리의 자생적 근대화를 부정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물론 '식민지 근대화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겠지만 말이다.
뭔가 다른 시각이 필요하리라는 생각을 갖는다.
그러기 위해선 미명이나마 우리의 근대를 밝혔던 선구자들에게 관심을 가져야 한다.
배수아의 소설은 화려하고 아름다운 배경과는 달리 그 안에서는 기괴하고 추한 그 무엇이 묻어나곤 한다.
그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 아닐까?
'바람'과 '인형'은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여성들의 일로만 한정하기엔 그의 소설은 꽤 넓은 공감을 자아낸다.
이 책을 읽다보니 소장하고 있던 <인물 현대사>(한국방송 제작)가 무척이나 보고 싶어졌다.
<인물 현대사>를 부교재 삼아 이 특강에 참여한 셈이다.
한국방송에서 이런 프로그램을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잠깐 생각하기도 했다.
저들의 육체와 정신 위에 우리가 서 있는 것이다.
허투루 살 삶이 아닌 것이다.
인류의 반사회성 즉 전쟁을 매개로 한 칸트의 인류평화 실현은 너무 이상적이다.
실제로 인류 역사에서 그러한 일을 겪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그가 살았던 18세기는 도저한 변화의 물결로 들끓던 시대이다.
그는 거기에서 인류의 이상을 투시하였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광기를 회상하기도 한다.
Immanuel Kant(1724–1804)
이 소설을 두고 김우창은 분명 '농촌 소설'이라고 말했다.
화자의 모습이 드러나지 않으니 농촌 소설일 수 밖에.
이제야 작가의 또 다른 소설인 <관촌수필>에 왜 '수필'이 붙는지 이해가 간다.
농민 문학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김종광의 장난기 어린 소재 따위는 분명 아닐텐데 말이다.
전성태가 분발할 수 밖에 없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