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문학계에 남아 쓴소리를 해주어 고맙다.
최원식, 윤지관, 황지우가 각기 딴 곳에 눈 팔 때 이드거니 비평을 손에 쥐고 있다.
전신하는 작가와 비평가를 보는 것이 어느샌가 아무렇지 않게 되었다.
그만큼 지쳐간다는 거다.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의 단초가 되는 시도 보인다.
영화 속의 짙은 허무가 시에서도 잡힌다.
허무 또한 시간을 견뎌낸 이에게만 주어지는 것이기에 하나대로부터 시까지를 견뎌낸 그는 허무를 말할만 하다.
그런데 그 두께가 아쉬운 것이다.
영화도 시도 '두꺼운 삶'이 잡히지 않는다.
스노의 죽음 이후 미국이 한 짓을 이 책은 전혀 예상하지 못하고 있다.
그의 생전 원폭과 한반도 분단만 하더라도 그는 미국의 책임을 말하지 않는다.
원폭 이후 일본은 독일과는 달리 철저히 반성했다니 기가 막히다.
여기서 원폭이 합리화 되는 것이겠다.
Edgar Snow(1905-1972)
문인들을 사랑하는 저자의 마음이 곳곳에서 끈끈히 배어 나온다.
누가 뭐라건 우리 문인들은 지금까지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삶을 꾸려왔다.
그 고민들과 삶이 지난하였지만 제 것 마냥 붙들고 살아온 것이다.
그들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진정 예술가는 저주 받은 방랑자인가?
작품에서 스티븐 디덜러스는 그 이름의 결합이 의미하는 대로 방랑자로 살고 있다.
순교하는 자와 갇혀 있는 자.
결국 다이달로스는 미로에서 벗어나지만 그 과정이 너무 힘겨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