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력적인 소재이다.
짧은 호흡의 문장과도 잘 어울린다.
생각해보니 스포츠를 소재로 한 작품을 대한 적이 있나 의문이다.
그것은 스포츠가 대중문화에 갇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가 어디를 중심으로 삼는지는 모르겠다.
이 작가는 계속해서 만나보고 싶다.
실종 삼부작의 마지막 편이다.
실험을 거듭하게 되니 요설에 가까운 말들이 거침 없다.
도시 전입민들의 실향의식으로 실종을 풀어낼 수도 있겠지만 소유의 문제가 좀 더 근원적이다.
근대란 가질 수 있는 것이 없다는 걸 깨닫는 데서 오는 섬뜩함.
安部公房(1924-1993)
전쟁이 끝나고 팔레스타인에 가려는 엘라난은 여러가지 고민에 빠진다.
하지만 그 고민 어디에도 2000년 간 살던 곳에서 쫓겨날 팔레스타인 사람들에 대한 걱정은 없다.
그의 아들 말키엘이 아랍 여자와 잠시 연애했다고 아버지보다 낫다고 말할 수 없다.
Elie Wiesel(1928-)
근대화의 매개로서 중요한 것이 교육이다.
아이는 원한만큼 배우지 못해 운다.
배운 것을 제 곳에 쓰지 못해 운다.
교육만큼 개인과 사회의 유기적 활동이 필요한 데가 없다.
이것이 깨져 있다.
앞서 출간된 두 권의 단편집(<첫 번 째 향로>,<경성지련>)은 중국과 홍콩에서 창작된 것 같은데 맞나 모르겠다.
내 문학적 관심은 두 권에 떠 쏠린다.
인간의 본성, 특히 여성의 그것이 사회와 어떤 모습으로 충둘하고 거짓으로 화해하는 지 소설은 보여준다.
탕웨이에게 중국이 하는 짓은 그 때에 비할 때 나아진 게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