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찮은 인간 호모라피엔스>를 읽고 리뷰를 남겨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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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
존 그레이 지음, 김승진 옮김 / 이후 / 2010년 8월
평점 :
절판
존 그레이라는 철학자는 처음 접한다. 책을 읽어가며 이 사람이 철학의 지형도에서 어디쯤 자리잡고 있을까 궁금했다. 반(反)휴머니즘의 입장에 선다는데 니체와 쇼펜하우어를 자주 인용하는 걸 보니 지형도가 대충 그려지는 듯 하다. 눈길이 더 갔던 건 저자가 지적 친밀도를 과시하는 제임스 러브록이란 사람이다. 책의 뒷 면을 보니 러브록은 이 책의 서평을 쓰기도 했다. 받아 적어 본다. "조지 오웰의 <동물 농장>이 계몽된 휴머니즘이라는 꿈을 꾸고 있는 우리를 깊은 잠에서 깨웠다면 존 그레이의 <하찮은 인간, 호모 라피엔스>는 우리로 하여금 거울을 보고 스스로를 직시하게 한다."
일종의 상찬인데, 러브록은 '가이아 이론'을 주창한 과학자이자 생태학자이다. 한국에선 <녹색평론>이 공들여 소개하는 사람이다. 나도 평소 좋아하는 <녹색평론>을 통해서 러브록의 생각을 접했다. 참고로 <녹색평론선집1>에는 러브록의 '가이아를 위하여'를 비롯해 '가이아의 경제학' 등 가이아와 관련한 글들이 실려있다.
러브록의 가이아 이론이 내게는 에콜로지를 거쳐 다가와 거부감이 덜했다면 직설적인 그레이의 주장은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예컨대 이런 대목이다. "기독교는 역사란 죄와 구원의 드라마라고 파악했다. 휴머니즘은 구원에 대한 이 기독교 교리를 보편적 인간 해방이라는 기획으로 바꾼 것이다. 진보라는 개념은 신의 섭리에 대한 기독교적 믿음의 세속 버전인 셈이다. 고대의 다신교 철학자들 사이에 진보라는 개념이 존재하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 진보에 대한 믿음에는 또 다른 원천이 있다. 과학은 인간의 힘을 증대시키면서, 인간 본성이 가진 결점들도 확대시킨다."(11면) 그레이는 기독교, 휴머니즘, 진보주의, 과학을 싸잡아 비판한다.
비판의 틀거리는 인간중심주의이다. 이 정도의 주장은 러브록의 사상이 서 있는 에콜로지와 별 다르지 않은데, 내게 반감을 갖게 했던 건 기독교에 대한 피상적 이해 때문이다. 또 기독교에 대한 반감을 동양 종교에 대한 편애로 대체하는데 그가 도교를 이해하는 정도도 깊지는 않은 듯 하다. 참고로 이 책의 원제는 <Straw Dogs(짚으로 만든 개)>인데, 이 단어는 <도덕경> 영문판에 등장한다.
노자에게 덧씌어진 자연주의와 신비주의에 대해선 강신주가 비판한 적도 있다. 노자 역시 여느 유가와 다르지 않게 국가라는 시스템 속에서 사유한 철학자라는 게 강신주의 주장일텐데 이 주장에 동의하는 나로선 그레이가 갖는 도교에 대한 생각에 수긍하기가 힘들다. 또한 기독교가 인류-저자는 인류란 말도 잘못되었다고 주장하지만- 역사를 망쳐놓은 주범이라 주장하는 저자의 생각에도 동의하기 힘들다. 기독교의 죄악사에 대해선 그레이를 통하지 않고서도 배울 수 있고, 배웠던 자리가 많은데 성긴 주장으로 과한 비판을 하는 저자의 주장은 자꾸 거부감을 불러일으킨다.
저자의 책 번역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로 아는데, 또 만남을 갖는다면 좀 더 의미있는 책읽기가 되리라는 생각을 해 본다. 그게 언제가 될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John N. Gray(19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