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즘 정전 읽기 1 - 근대소설편, 페미니즘 총서 3
송명희.안숙원.이태숙 엮음 / 푸른사상 / 2002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김말봉(金末峰)의 소설(<망명녀>)은 매춘녀를 소재로 하고 있다. 염상섭이 <삼대(三代)>(1931)에서 여급 홍경애를 그리고는 있으나 그녀가 소설의 중심적 역할을 하진 않는다. 이 시대에 매춘녀를 주인공으로 삼는 소설이 양산된 건 꽤 이채롭다.

  최순애는 기구한 이유로 여자로선 나락까지 떨어졌다. 허윤숙의 도움으로 탈출은 하나 이미 어둠에 젖어버린 생활은 쉽게 끊을 수 없다. 담배와 모르핀을 끊기란 쉽지 않다. 윤숙이 강요하는 종교적 생활도 그녀를 바꾸지 못한다. 허나 사회주의자인 윤창섭은 그녀에게 각별한 의미를 던져주고 있다. 연모의 감정을 품던 그녀는 사랑을 고백하고, 윤창섭과 결혼을 약속한다.

  최순애를 격동시키는 데 윤창섭의 면모 역시 적지 않은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사회주의적 이상이 큰 역할을 한 것이리라. 소설의 낙관적 색채가 이 때문인 것은 물론이다. 허나 사회주의가 여성의 현실을 타개할 수 있는 구체적 대책은 소설 속에 보이지 않는다. 최순애는 격동적인 삶을 원하는데 종교와 같은 안으로의 침잠은 싫은 것이다. 사회주의가 딱히 자신을 비롯한 여성을 구제하리라는 기대는 없는 듯 하다. 매춘녀가 사회주의 운동의 지도자로 전신(轉身)한다는 소재는 극적이나 그 과정에 비약이 너무 많다. 지나칠 수 없는 흠이다.  

      김말봉(1901-1962)


댓글(7)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반딧불이 2010-04-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각각의 소설들은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시 보고 있는 건가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21 09:39   좋아요 0 | URL
한국 근대 여성작가들의 단편 모음집인데요. 나혜석처럼 유명한 분들의 작품도 있고 김명순, 이선희, 김말봉처럼 알려지지 않은 작가들의 작품도 있네요.
책의 제목이 문제가 있는 게 이 소설들을 아무리 생각해봐도 페미니즘의 정전으로 볼 수 있을지 의문이에요. 말씀하신대로 페미니즘 시각으로 다시 들여다봐야 무언가를 겨우 얻을 수 있을 듯 하구요.
희귀한 소설들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다이조부 2010-04-22 0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안 읽은 책을 말하는게 조심스럽긴 하지만,

아마 당시 시대의 제약을 고려한 책제목이 아닐까 싶네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25 11:30   좋아요 0 | URL
오랜만에 뵙네요^^
작가별로 여성으로서 갖는 자의식이 다를텐데, 뭉뚱그려 페미니즘의 정전이라 말하는 건 과하다 싶어서요. 사실 여성 작가가 지금은 꽤 많지만 저 시대엔 드물었죠. 그들의 작품을 정리하는 것에 의미를 갖는 책이지 싶네요.

노이에자이트 2010-04-25 21: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김말봉의 작품은 페미니즘이라고 하기엔 좀 더 통속적이죠.그만큼 인기도 있었고...저는 <찔레꽃>을 읽었는데 지금은 기억이 가물가물...어떤 책에선가 김말봉을 페미니즘과 상반되는 소설가라고 평하더군요.보통 여자들의 심리에 영합하는...

파고세운닥나무 2010-04-25 22:42   좋아요 0 | URL
위 소설도 충분히 세속적으로 읽어낼 수 있죠. 여자들의 심리 뿐 아니라 남자들의 마음에도 부합하는 소설로도 읽을 수 있구요.

노이에자이트 2010-04-25 23:0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 김말봉 소설이 재미있어서 일제시대 땐 조선일보와 동아일보가 서로 자기네 신문에 연재해달라고 부탁하면서 대단했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