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경감 듀 동서 미스터리 북스 80
피터 러브제이 지음, 강영길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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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교적 최근에 쓰이기 시작한 "웰 메이드 영화"라는 말이 있다. 장르의 관습, 스타 시스템 등을 활용하되 감독의 개성적인 스타일과 문제의식을 겸비함으로써 대중의 호응까지 얻어낸 잘 만들어진 상업영화라는 의미라고 한다. 작년에 개봉했던 한국영화 중에 <살인의 추억>이나 <올드 보이>가 이러한 호칭을 부여 받았다. 개인적으로도 이 두편의 영화는 "야 참 영화 잘 만들었네"라는 감탄을 하면서 봤던 것 같다.

미스테리에도 "웰 메이드"라는 딱지를 붙여주는 것이 가능하다면 <가짜 경감 듀>야 말로 "웰 메이드 미스테리"가 아닐까. 작가는 치밀한 구성과 플롯으로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끌고 가면서도 긴장감과 경쾌함을 잃지 않고, 인물들의 개성은 살아서 생생하게 다가온다. 독자의 궁금증을 끝까지 유지시키면서(설혹 살인범의 정체를 일찍 눈치챈다 할지라도 말이다.) 막판에 무릎을 치게 만드는 반전까지 준비되어 있다. - 반전의 내용은 영악한 독자들이라면 어느 정도 알아챌 수 있겠지만, 소설의 구성상 작가가 미리 제공한 복선까지는 쉽게 알 수 없었으리라 - 그리고 DMB 시리즈 중에서 가장 많은 판매량과 독자 리뷰를 기록한 상업적인 성공까지.. 그야말로 "웰 메이드 미스테리"라는 찬사에 이보다 어울리는 작품이 있을까?

1920년대 대서양 횡단 호화 여객선이라는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배경과 당시 시대 상황의 실감나는 묘사가 어울려 잘 만들어진 한편의 영화를 본 듯 주인공들의 모습과 그들이 겪었던 사건이 눈 앞에 생생하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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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살인사건 동서 미스터리 북스 139
S.S. 반 다인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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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정벌레 살인사건>은 반 다인의 전반기 6편의 장편중 다섯번째에 해당한다. "추리 소설은 장편이어야 하고, 살인 사건을 다뤄야 하며, 한 작가는 6편의 작품을 쓰는게 한계이다"라는 반 다인의 지론은 세번째 언급한 작품수 한계설에 있어서는 본인 조차 지켜내지 못했지만 후반기 6작품의 수준이 떨어진다는 평단과 독자들의 의견으로 미루어 일견 일리가 있는 말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볼 때 6편중 다섯번째라면, '원숙기의 절정' 정도로 받아 들일 수 있지 않을까?

반 다인의 작품은 이상하게 나에게는 궁합이 잘 맞는 편이다. 많은 사람들이 질려하는 각주와 주석들은 물론 보기 편한건 아니지만, 그리고, 파이로 번스의 잘난체와 너무나 무기력한 매컴과 히스 형사부장의 모습은 눈에 거슬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다인의 소설은 잘 읽힌다. 그렇지 않은 사람도 많은 걸 보면 '궁합문제'라고 생각할 수 밖에.

<딱정벌레 살인사건>은 사건의 전개가 워낙에 기존의 반 다인과 비교해서도 스피드하기 때문에 더욱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추리소설에 닳고 닳은 독자들이라면 범인의 정체는 어렵지 않게 간파할 수 있겠지만, 범인과 번스가 벌이는 치열한 심리전의 한판 승부가 속도감 있게 펼쳐지는 대가의 원숙미 넘치는 작품이다.

경찰을 완전히 무시하고 제쳐놓은 채 관련인들을 심문하고 취조하는 번스의 월권행위와 번스를 그저 바라만 보고 있는 옆집의 푸들만도 못한 경찰들의 능력은 허무맹랑을 넘어서 기가 차고, 역시나 번스다운 사건의 마무리와 범인 처리도 찝찝하고 탐탁치 않다. 갖은 불평이 많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 다인의 추리 소설은 계속 찾아 읽게 되는, 읽으면서 흥미진진해 하는 불가해한 매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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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16 12:0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요. 시리즈 중독자라서... 12권 다 출판만 된다면 바랄 것이 없을 겁니다...

oldhand 2004-07-16 1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해문에서 그래도 새로운 번역을 해줘서.. 반다인은 12권 전권 출판이 점점 가시화 되고 있네요. 독자들이 팍팍 밀어줘야 하는데 말이죠. 이제 3권만 더 나오면 되는거죠? 윈터까지는 해문에서 내준다는것 같던데..

물만두 2004-07-16 12: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팔리는 거 봐서 내겠다고 협박했습니다. 번역은 해놨다면서요. 잘 팔려야 하는데 걱정입니다...

oldhand 2004-07-16 13: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리소설 나오는 속도가 제가 책 읽는 속도보다 빠른 요사이는 그래도 행복한 것 같습니다.

비연 2004-08-03 21:2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마니마니 행복합니다..^^ 개인적으로 반다인을 좋아하는데 딱정벌레 살인사건은 범작에 속했던 것 같슴다...반다인 12권 전권출판 협박(!)에 저도 한 표!! ^o^

oldhand 2004-08-04 09: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반 다인 좋아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것 같아요. 호오가 극도로 갈리는 작가이기도 하구요. 아울러 추리 소설 좋아하시는 분들이 알라딘에 많이들 계신것 같아서 기분 좋습니다!

비츠로 2005-02-18 20: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요즘 해문 분위기로 봐서는 3권으로 끝인 것 같습니다.

oldhand 2005-02-21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러게요. T_T 그런데, 정말 최악의 판매고인것 같긴 합니다. 돈 버는 방법 같은 책들 살 돈으로 추리소설도 좀 사주고 그럼 좋으련만.
 
제제벨의 죽음 동서 미스터리 북스 81
크리스티나 브랜드 지음, 신상웅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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뛰어난 추리 소설의 미덕은 무엇일까.

사건의 불가해성과 트릭의 독창성, 논리적인 쾌감 등 추리 소설만의 독창적 요소에 높은 점수를 주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등장 인물의 개성과 심리 묘사, 매끄러운 문장 등 일반 문학에도 공통되는 기준을 제시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두가지가 잘 조화를 이룰 때 그 작품은 비로소 명작의 반열에 올라가는 것이 아닐까.

크리스티나 브랜드의 <제제벨의 죽음>은 감탄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작품이었다.

번역상의 문제일는지도 모르지만, 문장이 유난히 뻑뻑하고, 머릿속에 잘 들어오지 않아서, 사실 스토리를 쫓아 다니는게 좀 버거웠다. '작가가 자신이 고안한 플롯과 트릭의 뛰어남에 너무 고조되어서 다소 오버하지 않았나?'라는 억측도 해 보게 된다. (물론 내가 문학적으로 문외한이기 때문에 나만의 느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등장인물들은 내내 과잉 감정 상태인듯 하고, 탐정의 사건 추적은 개연성이 좀 부족한 듯 하다.

그러나, 추리 소설만의 독창적인 요소로만 본다면, 이 작품은 걸작의 풍모를 갖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불가해한 상황과 연극적 요소,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는 후반부와 흔한 듯 하지만 마지막 부분 이전까지는 결코 상상하기 힘들었던 트릭과 그것을 감추는 작가의 능수능란한 미스디렉션 등.

크리스티와 딕슨 카를 혼합한 듯한 우리나라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작가의 귀한 작품으로, 해설에 언급된 동 작가의 다른 많은 작품들도 읽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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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하건데 나, 사실 어렸을 때 좀 이상한 놈이었다. -_-;

가끔 별 시답잖은 것들에 과도한 집착과 투자를 했는데, 이를 테면 신약 성경 맨 앞에 나오는 마태복음 1장 '예수의 족보'를 외운다든가 한반도에서 가장 높은 산들의 순위를 정리해서 외운다든가 하는 것들이었다.

왜 그런짓을? 이라고 묻는다면, 그 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할 말이 없다. 별다른 이유없는 편집증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 때는 그게 재밌었다니깐. (좀 이상한 놈이었다고 했잖나. -_-;)

그 중 하나가 내가 산 책들의 페이지 수를 외우는 것이었다. 계림 출판사에서 나왔던 단편 셜록 홈즈 시리즈가 그 주 대상이었는데, 죽음의 상자(원제 : 빈사의 탐정)는 80페이지, 공포의 금고실(원제 : 퇴직한 물감장수)는 94페이지... 이런 식이다. 20년이 훨씬 넘었지만 어렸을 때 외워둔 것들은 좀처럼 잊혀지지도 않는다. -_-;; (지금 생각해봐도 별로다.) 흔히 이런 양태를 띄는 아이들답게 친구도 없었냐하면 그건 아니다. 그래서 다행스럽게도 지금은 많이 정상적인 사람이 되었다. 음. -_-;

근데 그 시절에 체득한 별난 습관 중 아직도 남아 있는게 하나 있다.
책을 사면 한 페이지에 몇 줄이 인쇄되어 있는지 체크하는 습관이 바로 그것이다. (e.g. 해문 출판사의 애거서 크리스티 시리즈는 원래 초창기엔 모든 시리즈가 페이지당 25줄이었으나, 지금은 분량에 따라 달라졌다. 동서 추리 문고는 페이지당 26줄이다.)

그리고, 이 습관은 내게 책을 사는데 중요한 판별 기준이 된다. 즉, 나는 한 페이지에 보기 불편하지 않는 한 많은 줄 수가 인쇄되어 있는 책을 좋아한다. 줄간격이 빽빽한 것은 보기 좋지 않으니 그런 경우 차라리 글자 크기가 작은 것이 좋다. 당연히 이런 책들은 내용의 분량에 비해 값도 저렴한 편이다. 큰 글씨로 듬성 듬성 인쇄되어 있는, 예쁘게만 만들려고 한 요즘의 팬시 상품 냄새 술술 풍기는 책들은 나에겐 '비토'의 대상인 것이다. 게다가 쓸데없는 하드커버 책들은 왜 그리 많아졌는지. (물론 하드커버가 더 책의 보존성이나 품위를 살려주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 나라의 독서 풍토가 지나치게 실용성 위주인데다가(개인적으론 이것도 탐탁치 않다), 그렇지 않은 종류의 책들은 그저 팬시 상품류로 분류되기를 희망하는 듯 하다. 그래야 잘 팔리나 보다. 가격도 더 비싸게 받을수 있겠지. 표지는 온통 파스텔 톤 은은한 그림에 한 페이지에 20줄도 채 안되는 책들이 부지기수이다. 80년대만 해도 아동 문고를 제외한 대부분의 책들이 페이지당 30줄을 훌쩍 넘었었는데...

눈이 좀 아프더라도 작고 빽빽한 글자들이 촘촘히 박혀 있는 '실(實)한' 책들이 나는 좋다. 표지는 촌스럽고, 재질도 볼품 없지만 빛 바랜 옛날 책들이 내게는 훨씬 사랑스럽다.

내가 유별나고 괴팍스러운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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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anda78 2004-08-02 00: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팬시 상품같은 책들 싫어요- 솔직히 본전 생각 납니다. ㅡ..ㅡ;;
(마태님 서재에 댓글 다신 것 보고 왔습니다. <(_ _)>)

oldhand 2004-08-02 10:2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오.. 판다님 반갑습니다. 볼건 없지만, 가끔 놀러 오세요.

하이드 2004-11-05 14: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특히나 일본작가들의 하드커버로 된 책들이 줄줄이 나오는 것을 보면, 정말 옥석을 가리기 힘들지요. 책값은 더 올라도 된다고 생각하지만, 종이질, 표지, 디자인등보다는 다른 곳에 더 반영되었으면 좋겠네요.

oldhand 2004-11-05 15: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사실 추리 소설은 페이퍼 백이나 문고판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반 독자들이 고급스러운 장정을 선호하는 경향이 많은 모양이에요. 홈즈도 하드커버판으로 나와서 크게 성공했다는 것이 "출판계의 정설"입니다. (유비통신이지요 크하하)
 

탐정소설의 기원은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産婆術)

딕슨 카가 <모자수집광사건>에서 해드리 런던경시청 경감의 입을 빌어 말함

"… 탐정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라는 자들은 박사님(펠 박사) 말씀과 같은 일을 해내고 있더군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희랍의 철학자와 똑같은 일을 말입니다 ---
우선 맨 처음 희랍의 청년이 두 사람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같이 철학자를 방문하여 [안녕하세요, 철학자님.] --- 아테네에서는 봉 주르라고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철학자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 [안녕들 한가, 젊은이들이여, 오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물론 그 젊은이들에게 급한 일이 있을리 없지요. 희랍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요. 젊은이들까지도 철학자와 토론하는 것이 하루하루의 일과와 같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럼 거기에 걸터앉게. 대화를 나누어야지.] 이윽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문제를 제출하여 해결을 구하도록 합니다. 문제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하나도 없지요.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어떻고 금년의 아테네 대 스파르타의 대항 경기의 예상은 어떻고 하는 데에 대해서 물을리는 없지요. 오로지 인간 정신에 관한 고상한 논의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하면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을 합니다. 이 문답이 9페이지를 계속되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틀렸네]라고 한 마디 단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청년과 교대하여 여기서 또 16페이지에 걸쳐서 문답이 행해집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말지요 …
언제까지 있어도 결론 같은 것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책을 읽고 있으면 저 같은 사람은 조마조마해져 몽둥이로 소크라테스의 머리통을 갈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든답니다. 그러나 희랍의 젊은이들은 결코 그런 버릇없는 흉내를 내지 않지요. 결국 이것이 탐정소설의 기원입니다. 펠 박사님, 박사님의 말씀도 어느 정도에서 딱 잘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딕슨카, <모자수집광사건>, 김우종 역, 동서문화사, 1978, 257~259쪽 (구판))

딕슨 카는 정말 재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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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독살을 당한 것이 아닐까요??? 하도 너 자신을 알라하며 틀렸다 하니 누군가 님처럼 생각했을수도...

oldhand 2004-07-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개의 관>에서의 밀실 강의도 그랬듯이, 딕슨 카는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자신의 추리소설에 대한 생각들을 설파하는 일이 종종 있는 듯 합니다. 탐정의 횡포를 비판하는 독자 입장의 해드리와 이 부분의 뒤에 등장하는 펠 박사의 탐정(혹은 탐정소설의 작가)들을 위한 변론이 인상적이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