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정소설의 기원은 → 소크라테스의 산파술(産婆術)

딕슨 카가 <모자수집광사건>에서 해드리 런던경시청 경감의 입을 빌어 말함

"… 탐정소설에 나오는 탐정이라는 자들은 박사님(펠 박사) 말씀과 같은 일을 해내고 있더군요. 플라톤의 <대화편>에 나오는 희랍의 철학자와 똑같은 일을 말입니다 ---
우선 맨 처음 희랍의 청년이 두 사람 등장합니다. 두 사람이 같이 철학자를 방문하여 [안녕하세요, 철학자님.] --- 아테네에서는 봉 주르라고 하지 않을 지도 모르지만, 철학자도 이렇게 대답합니다 --- [안녕들 한가, 젊은이들이여, 오늘은 무슨 급한 일이라도 있나?] 물론 그 젊은이들에게 급한 일이 있을리 없지요. 희랍에서는 일을 하지 않아도 충분히 먹고 살 수 있었으니까요. 젊은이들까지도 철학자와 토론하는 것이 하루하루의 일과와 같았으니까 말입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그럼 거기에 걸터앉게. 대화를 나누어야지.] 이윽고 그는 젊은이들에게 문제를 제출하여 해결을 구하도록 합니다. 문제라고는 하지만 현실적인 것은 하나도 없지요. 아일랜드 문제에 관한 해결책은 어떻고 금년의 아테네 대 스파르타의 대항 경기의 예상은 어떻고 하는 데에 대해서 물을리는 없지요. 오로지 인간 정신에 관한 고상한 논의뿐입니다.
소크라테스가 질문을 하면 청년 가운데 한 사람이 대답을 합니다. 이 문답이 9페이지를 계속되는 거지요. 그리고 나서 소크라테스는 천천히 고개를 저으면서 [틀렸네]라고 한 마디 단정을 내립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의 청년과 교대하여 여기서 또 16페이지에 걸쳐서 문답이 행해집니다. 그러는 동안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말지요 …
언제까지 있어도 결론 같은 것은 나오지를 않습니다. 그 책을 읽고 있으면 저 같은 사람은 조마조마해져 몽둥이로 소크라테스의 머리통을 갈겨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가끔 든답니다. 그러나 희랍의 젊은이들은 결코 그런 버릇없는 흉내를 내지 않지요. 결국 이것이 탐정소설의 기원입니다. 펠 박사님, 박사님의 말씀도 어느 정도에서 딱 잘라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딕슨카, <모자수집광사건>, 김우종 역, 동서문화사, 1978, 257~259쪽 (구판))

딕슨 카는 정말 재담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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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두 2004-07-08 11:4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흠, 그래서 소크라테스가 독살을 당한 것이 아닐까요??? 하도 너 자신을 알라하며 틀렸다 하니 누군가 님처럼 생각했을수도...

oldhand 2004-07-08 11: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개의 관>에서의 밀실 강의도 그랬듯이, 딕슨 카는 자신의 작품 속 등장인물의 입을 빌어 자신의 추리소설에 대한 생각들을 설파하는 일이 종종 있는 듯 합니다. 탐정의 횡포를 비판하는 독자 입장의 해드리와 이 부분의 뒤에 등장하는 펠 박사의 탐정(혹은 탐정소설의 작가)들을 위한 변론이 인상적이었죠.